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기소된 한진그룹 고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왼쪽)와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한 뒤 각각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불법으로 고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이명희(70)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조현아(45)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나란히 법정에 출석했다. 두 모녀는 같은 재판부에서 따로 재판을 받게 돼 이 전 이사장이 먼저 피고인석에 오른 뒤 조 전 부사장이 출석해 변론을 마쳤다.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안재천 판사는 필리핀 여성을 대한항공 직원인 것처럼 위장입국 시켜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된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검찰은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에 각각 벌금 1500만원, 3000만원을 구형했다.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필리핀 여성들을 대한항공 직원인 것처럼 위장입국 시킨 뒤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를 받는다. 대한항공은 이들의 지시로 필리핀 지점을 통해 가사도우미를 선발했다. 그 뒤 대한항공 필리핀 지점 우수직원인 것처럼 속여 본사 연수를 위해 초청한다는 명목으로 허위 서류를 만들어 비자를 발급받도록 했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과 이 전 이사장이 대한항공 임직원들과 공모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사도우미를 허위 초청한다는 것을 알고도 연수생 사증 및 대한항공 재직증명서 발급해주는 방식으로 일반 연수생 비자(D-4)를 받아 입국시켰다는 것이다. 입국 후 체류기간이 만료된 가사도우미들에 대해서는 일반연수생용 체류 연장 서류를 꾸며 연장허가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런 방법으로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은 각각 6명, 5명의 필리핀인을 불법 고용했다.
이 전 이사장은 “가사도우미 고용을 부탁만 했을 뿐 채용 과정에 관여하진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재벌가 사모님이 모든 것을 지시, 총괄했다 생각할 수 있으나 부탁만 하면 밑(대한항공)에서 가사도우미 허위 초청과 체류 연장을 알아서 해 준 것”이라 밝혔다. 대한항공쪽에서 체류기간이 임박한 가사도우미가 있다는 것을 전했을 때에도 “알겠다”라고만 했을 뿐 이후 체류 연장 조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 전 부사장은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이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임을 강조하며 선처를 구했다. 재판 말미에 조 전 부사장은 최후 진술로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출산해 회사 업무를 병행하려다 편의를 위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했다. 법적인 부분을 숙지하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른 점 반성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땅콩 회항’ 사건과 현재 진행 중인 이혼 소송도 언급됐다. 회항 사건 이후 구속이 되면서 “어머니(이명희)에게 아이들을 맡겨야 해 따라간 도우미도 있다. 어머니까지 기소돼 너무 죄송하다”며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 뒤 남편이 제기한 이혼 소송에 더해 이 전 이사장까지 재판을 받고 있어 “육아에 큰 어려움이 있다”고도 했다.
대한항공도 위법행위에 관여한 점을 인정하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법을 준수하는 정도경영을 철저히 하는 회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전 이사장은 이 사건 외에도 2011년 1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운전기사와 자택 경비원 등 9명에게 22회에 걸쳐 폭언을 일삼고 손찌검을 해 상해를 입힌 혐의로 지난해 12월 추가기소됐다. 2014년 인천 하얏트호텔 공사 현장에서 조경 설계업자를 폭행하고 공사 진행을 방해한 혐의는 범죄 사실에서 제외됐다.
이날 재판을 마치고 방청석에 있던 이 전 이사장은 조 전 부사장을 껴안으며 “엄마가 미안해. 수고했다”고 말한 뒤 조 전 부사장을 먼저 내보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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