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그것은 교권이 아니다’ 토크 콘서트에서 나윤 청소년페미니즘모임 활동가가 ‘당신의 농담은 교권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수능 교재가 무거워서 선생님용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이유로 교복 치마를 입고 있던 학생들을 엎드려 뻗치게 하고 위에서 웃던 선생님. 하나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남학생은 다 함께 운동하며 집단생활에 필요한 협동심을 길러야 하고, 여학생은 대화를 나누며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 선생님. 하나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여자랑 스치기만 해도 성희롱 교사가 된다. 참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지’라고 말한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단 하루도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 ‘스승의 날’을 나흘 앞두고 ‘선생님에게 감사할 수 없다’는 청소년과 청년 5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행사는 학교 성폭력 근절 운동을 벌이고 있는 ‘청소년페미니즘모임’(청페모)이 개최한 ‘그것은 교권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토크 콘서트다. 청페모는 이날 토크 콘서트를 연 이유에 대해 “성폭력과 성차별은 교권이 아니다. 더 이상 폭력과 혐오를 휘두르는 스승은 존경할 수 없다. 이제는 페미니즘 학교를 고민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 참가자들은 ‘( )은 교권이 아니다’라는 주제문을 두고 각자의 경험으로 괄호 안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발언을 이어갔다. 청페모 활동가 화현은 “‘사랑이라고 포장된 이름의 공동체’는 교권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완성하면서 그 자신이 속한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을 털어놨다.
“우리 학교는 징계 조처가 없어서 문제가 발생하면 ‘둘러앉기’라고 불렀던 공동체 회의를 했습니다. ‘둘러앉기’의 문제는 ‘공론화’라 기보다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가볍게 끝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의 자치로 해결하고, 대화로 풀자는 분위기 속에서 내가 불편한 것, 상처받은 것들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그것이 마치 사랑이라는 듯이, 공동체라는 듯이 얘기했지만 그곳에 나의 생각과 감정과 언어는 없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성폭력 가해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청페모는 지난달 24일부터 인터넷을 통해 공모한 편지 24통을 이날 토크 콘서트 현장에 전시했다. 청페모는 이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스승은 더는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편지쓰기 캠페인을 벌였다”고 밝혔다. 공개된 편지에는 공공연하게 성폭력적인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교사들의 행태가 낱낱이 공개됐다.
“쌤 집에 데려다준다고 차 태워준 건 고마운데 거기서 제 허벅지를 만진 건 하나도 안 고마워요. 당신이 교사라서 제가 참 걱정이 많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그러면 안 됐습니다. ‘코만 좀 올리면 예쁘겠다’를 칭찬으로 쓰면 안 됐습니다. 남학생들을 폭행하면서 여학생들에게는 ‘예쁘고 연약하니까 때리지 않는다’는 프레임으로 대했으면 안 됐습니다. ‘여성이 뭐가 사회적 약쟈냐’라고 했으면 안 됐습니다. 대놓고 수업시간 중에 ‘너는 정치하지 마’라고 말하면 안 됐습니다. 수업 중에 학생을 폭행하며 교육한 것을 ‘사람 만들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면 안 됐습니다.”
“여자애들은 꼭 사무직 자격증을 따라고 하고 , 체육대회 응원을 여학생들만 나가지 못하게 하고 , 여자 축구후보들은 본 적이 없다고 하고 , 요즘 여자들 무섭다 여자 조심해라 여인천하다 라는 성차별적 발언을 하고, 수업에 상관없는 말로 학생들을 무시한 선생님의 수업은 앞으로도 계속 되겠죠 . 그런 말을 남학생들과 주고 받으며 재미있으셨나요 ? 그렇게 계속 살아오셨다고 얘기하셨죠 .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습니다 , 빨리 퇴직하세요 .”
“남고를 다녔던 학생으로서 참 많은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 몸상태가 심하게 좋지 않았음에도 남자가 약한 척 한다며 수업에 강제로 참여하기로 한 적도 있고 , 야간 자율학습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맞거나 성기를 만지는 등의 여러 처벌을 경험하였으며 , 여성과 여교사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일상이었습니다 .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여러 문제를 가진 교사들과 함께 지내왔네요 . 행복하지 마세요 , 선생님들 .”
“안녕하세요 , 이○오 선생님 . 스승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 기억하시나요 ? 빼빼로데이가 얼마 남지않은 날 , 학생에게 빼빼로를 뺏다시피 선물 받으셨나 봅니다 . 청소하는 저를 불러서 뒤돌아서자 선물 받은 빼빼로를 입에 물고 빼빼로 게임 할래 ? 라고 물으시던 선생님을 , 저는 평생토록 그날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셨겠지만 , 저는 이후 일주일을 충격에 제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
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열린 ‘그것은 교권이 아니다’ 토크 콘서트에서 성폭력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전시돼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청소년과 교사가 교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오예진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 대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교권’이라는 말이 많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며 “학생 인권과 교권은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서로를 갉아먹는 것처럼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중학교 교사 이용석(49)씨는 “진짜 교권이 있다면, 그건 교장이 페미니즘 수업에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할 때 반발할 수 있는 게 교권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실제로 교사가 갖고 있는 건 그냥 인권이다. 교권이라는 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스쿨미투가 침해할 게 없다. 그런데도 스쿨미투가 교권을 침해했다고 말하는 건 스쿨미투가 싫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학교 교사 ㄱ씨도 “일반적으로 교권이라는 말은 수직선을 그어놓고 위에 있는 교사를 아래에 있는 학생들이 침해했다고 할 때 쓰인다. 하지만 교권과 같은 단어는 다른 직업군에서는 없는 말이다. 교권은 없고 다만 인권, 교육권, 노동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인간이고, 노동자이고, 교육을 하기 때문에 이런 차원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여 ‘스쿨미투’에 불을 붙인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스쿨미투 1년을 되짚어보는 발언도 나왔다. 청페모는 “(스쿨미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스쿨미투 고발을 교권침해로 고소하는 교사, 교원평가에 스쿨미투를 적지 말라고 지시하는 학교, 폭력을 교권으로 오인하는 사회까지. 여전히 학교는, 교육은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양지혜 청페모 대표는 “스쿨미투 이후에 오히려 학교가 더 조용해졌다. 문제를 제기하면 ‘너도 미투할 거냐’라고 말한다”며 “학내 성폭력이 몇몇 가해자들의 문제로 치환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사람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간다. 학교가 성폭력을 특수한 일로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최근 주춤해진 스쿨미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쥬리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교사로부터 성추행, 성희롱을 당한 학생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했다. 뉴스가 나가자마자 재학생과 졸업생이 그 학생에게 ‘선생님을 명예훼손하지 마라’ ‘학교 이미지 망치지 마라’는 메시지를 수도 없이 보냈다고 한다”며 “스쿨미투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피해자들도 용기를 낼 수 있고, 더 지지받을 수 있다. 그래야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도 더 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도 교권을 위해서 오히려 스쿨미투가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사의 교육할 권리, 즉 교권을 지키려면 교실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성원들이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고, 평등에 기반한 풍부한 소통이 이뤄지는 교실이 완성되어야 진정한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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