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내 해고당한 버스기사 정신질환 ‘업무상 재해’ 인정
근로자가 자신의 잘못으로 회사에서 징계해고 등을 당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얻었다면, 징계 자체가 적법했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김병훈 판사는 한 시내버스 회사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 승인 처분 등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 회사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던 A씨는 2016년 10월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치는 사고를 냈다가 회사로부터 징계해고를 당했다. 회사는 A씨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도 냈다.
A씨는 징계의 부당성과 손해배상 책임을 두고 회사와 다투는 과정에서 불안장애와 우울장애 등이 발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적응 장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A씨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회사가 불복해 소송을 냈다.
회사 측은 "중과실 사고를 낸 A씨를 징계해고하고 구상금 청구 소송을 낸 것은 규정에 따른 정당한 것으로, 이로 인해 적응 장애가 왔더라도 업무상 재해라는 인과관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일련의 사건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는 점을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며 "이는 모두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것이므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A씨에 대한 회사의 징계해고와 소송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해서 이를 다르게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회사는 "적응 장애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A씨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므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규정은 범죄가 직접적인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며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의 질환은 교통사고를 이유로 한 징계해고와 소송이 직접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라며 "A씨가 저지른 죄는 발병의 간접 원인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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