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이 한정후견을 받은 정신 장애인에게 평일 대면 금융거래만 허용하는 등 금융서비스 이용을 제한하는 조처는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13일 “후견 결정을 받은 정신 장애인이 금융기관을 이용할 때 후원 동행 요구를 받는 관행과 인터넷뱅킹, 스마트뱅킹, ‘에이티엠’(ATM) 등 비대면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건 장애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라며 “해당 금융기관과 금융감독원장에 개선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2급 정신장애를 가진 ㄱ씨의 후견 활동을 지원하는 진정인은 피해자가 한정후견을 받았음에도 시중 은행을 이용할 때 100만원 미만 거래일 경우 창구 거래만 허용하고, 100만원 이상을 거래할 때 반드시 후견인을 동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차별 행위라며 지난 2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 조사를 종합하면, ㄱ씨는 2018년 2월1일 가정법원에서 후견이 확정돼 한 사단법인을 한정 후견인으로 두게 됐다. 한정 후견인은 노령, 질병 등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법률 행위를 동의하거나 대리해주는 결정권을 갖는 사람으로, 법원에서는 피해자의 장애 정도에 따라 30일 안에 100만원 이상을 거래할 때 후견인의 동의를 받도록 조건을 제시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가 금전 대출, 신용카드 발급 등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하거나 배제, 분리,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7항‘은 정신질환자가 원칙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재산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지도록 명시돼 있다.
해당 은행은 “한정 후견인의 동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동행을 요구한 것”이라며 “장애인의 비대면 거래를 허용할 경우 금융사고 발생 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 피한정후견인의 비대면 거래를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해당 은행이 ‘30일 이내 100만원 이상 거래 시 후견인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법원의 결정보다 과도하게 장애인의 금융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봤다. 또한 장애인이 휴일 등 대면 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에이티엠 기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금융사고 발생 위험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인권위는 “이번 진정 사건은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진정을 각하하되 다른 금융기관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감독원장에게 의견을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5호는 ‘진정이 제기될 당시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에 관하여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재판, 수사기관의 수사 또는 그 밖의 법률에 따른 권리구제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경우 인권위는 그 진정을 각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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