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이자 웹툰 작가인 기안84(사진 왼쪽)와 청각장애인 등장인물의 생각마저 어눌한 발음으로 표현한 웹툰의 한 장면.
방송인이자 웹툰 작가인 기안84(본명 김희민·35)가 웹툰 ‘복학왕’에 청각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담아 연일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웹툰에 실린 비하나 혐오표현을 거르지 않고 무분별하게 연재하는 플랫폼 네이버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안84는 지난 7일 연재한 ‘복학왕 248화 세미나1’ 편에서 청각장애인을 말과 생각 모두 어눌하게 하는 존재로 묘사해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해당 회차를 보면, 청각장애인인 여성 등장인물 주시은이 닭꼬치를 사 먹으며 “닥꼬티 하나 얼마에오?”라고 묻고, ‘비싸네… 하나만 머거야디’, ‘마이 뿌뎌야디’, ‘딘따 먹고 는데’ 등과 같이 생각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청각장애인이 말뿐 아니라 생각까지 어눌하게 하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는 즉각 기안84에 사과를 요구했다. 전장연은 지난 10일 성명을 내고 “청각장애인을 지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희화화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의한 법률’에 해당하는 장애인 차별행위”라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트위터에 “내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데 학교에서 나를 무시하는 이들이 기안84 웹툰을 보고 ‘쟤도 저러냐’며 비하하고 무시했다. 심지어 저 장면의 대사를 따라 해 보라고 했다”(@emsd****), “친언니가 지체장애 1급이다. 언니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어엉, 엉’ 하는 언어를 쓴다. 그렇다고 언니가 생각을 ‘엉엉’ 하면서 하는 게 아니잖아”(@stella****)라고 꼬집었다.
기안84는 같은날 사과문을 내고 “작품을 재밌게 만들려고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문제 장면은 현재 수정된 상태다.
수정된 복학왕 248화 세미나1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갈무리.
기안84의 웹툰이 이전에도 여성 혐오나 지방대 비하 논란 등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던 터라 일각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기안84는 지난해 ‘복학왕 141화 전설의 디자이너’ 편에서 또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서른살 여성 ‘노안숙’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명품으로 꾸며보지만 보세로 꾸민 신입생이 훨씬 예쁘다”, “누나는 늙어서 맛없어”라는 여성 혐오적 표현을 썼다. “누나는 늙어서 맛없어”라는 대사는 지적을 받고 곧 삭제됐다. 이 밖에도 해당 웹툰에는 지방대 졸업생이 중국집 배달원이 되는 설정이 나오고 지방대를 수준 낮은 대학으로 그리는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해 “지방대생을 비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복학왕 141화 전설의 디자이너’ 편에 나온 여성혐오 표현.
최근 네이버 웹툰 플랫폼에 문제 작품들이 잇따라 실리면서 네이버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일 연재를 시작한 네이버 웹툰 ‘틴맘’은 10대 임신을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그리고 임신한 청소년을 ‘성애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네이버는 누리꾼들의 항의를 받아들여 뒤늦게 문제 장면을 삭제했지만 에스앤에스(SNS) 등에서는 ‘틴맘’ 퇴출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네이버 웹툰 ‘외모지상주의’는 여성을 폭행하는 장면이나 학교 폭력을 미화할 소지가 있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해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이뤄진 바 있는데도 연령 제한이나 로그인 없이 누구나 손쉽게 해당 장면을 볼 수 있는 상태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씨는 “지금의 포털 웹툰은 과거 만화 잡지보다 강력한 지위를 가진 창구로 기능한다”며 “단순히 작가에게 콘텐츠를 게시할 공간만 중개해주는 게 아니라, 콘텐츠가 사회적으로 유해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게이트키핑 할 권리도 생기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네이버가) 임무를 방기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어 “독점적 지위를 가진 포털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라면 더 많은 독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부당한 조롱을 당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건강성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도 지닌다”고 덧붙였다.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도 “지금까진 독자들의 문제 제기가 이뤄지면 사후에 네이버가 나서 조처하는 식인데 이런 대처로는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며 “소비자가 불매운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개선책이 없다는 건 사실상 대책이 없다는 걸 뜻한다. 네이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이런 지적에 대해 “작가들과 적절한 선에서 표현 방식에 대해 신중하고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서도 “그렇다고 ‘네이버가 관리해야 한다’고 가게 되면 표현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 게이트키핑까지 하며 작가에게 일정한 방식을 강제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작가마다 다른 표현의 방식과 창작의 자유가 있는데, 그걸 네이버가 침해하면 네이버 웹툰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다양성과 재미까지 침해받을 수 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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