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서부지법 형사2부(재판장 최규현)은 병역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오경택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평화적 신념에 의해 병역 거부를 하고 있는 오경택씨가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2심 판결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오씨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고 즉시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비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에 법원이 또 한 번 유죄 판단을 내렸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에 이어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게 됐다.
16일 서울서부지법 형사2부(재판장 최규현)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오경택(31)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다만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지난해 대법원 판단이 있은 뒤 비종교적 사유에 따른 현역 입영 거부자에 대한 첫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오씨가 말하는 양심이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말하는 양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심은 깊고 확실하며 진실해야 한다.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이어선 안 되고 상황에 따라 타협하거나 전략적이어선 안 된다. 하지만 피고인은 모든 물리력 행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상황, 조건에 따라 물리력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이는 검찰쪽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평화적 신념에 의해 병역 거부를 하고 있는 오경택씨가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2심 판결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검찰은 지난달 2일 오씨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한 바 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든 것은 폭력행위라고 생각합니까”, “일본군이 쳐들어왔을 때 대항해 집총하는 것은 양심에 반합니까” 등 ‘가정적 상황’을 들어 오씨의 양심을 검증하려 했다. 일본 막부가 천주교 신자를 가려내기 위해 ‘십자가 밟기’(후미에)를 강요한 것과 비슷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검찰은 “피고인이 병역거부를 함으로써 그가 속해있는 집단에서 정치적으로 공고한 위치를 가졌을 것이 예상된다”,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예비군 훈련도 면제받으므로 병역을 거부해 불이익을 감수했다고도 볼 수 없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도 했다.
오씨는 이날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즉각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씨는 “법원이 비종교적 병역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대로 드러난 판결이다. 폭력과 비폭력을 가르는 자의적인 프레임 안에서 유·무죄를 재단했다”고 비판했다. 오씨를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대법원과 헌재가 병역거부를 기본권 행사라고 봤음에도 일선 법원에선 그 취지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인 지난해 2월 “전쟁과 폭력에 반대한다”는 신념으로 형사 처벌을 각오하며 현역 입대를 거부했다.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그해 7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대한 무죄 판단이 잇따르고 있지만 ‘평화적 신념’에 따른 현역 입대 거부자를 인정한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난 2월 수원지법이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무죄 판단을 내렸지만, 이는 현역복무를 마친 뒤 예비군 훈련을 10차례 거부한 병역 거부자에 대한 판단이었다.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그해 11월 대법원 또한 종교적 신념과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병역거부자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바 있다. 헌재와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 평화적 신념에 따라 감옥 갈 각오로 입대를 거부해 현재까지 재판을 받는 이들은 알려진 것만 9명(예비군 거부 포함)이다. 글·사진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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