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청년Y 하랑이 제작한 ‘오월의 기억’ 배지. 텀블벅 갈무리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끝까지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1980년 5월27일 새벽, 가두방송-
‘오월의 기억’이 굿즈(goods·파생 상품)로 돌아왔다. 5·18민주화운동 39돌을 맞아 대학생과 시민, 작가들이 ‘오월 광주’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기념배지와 에코백 등을 제작해 판매하고 나섰다. 5·18민주화운동을 엄숙하고 비극적인 역사로 회고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 정신을 기억하자는 인식이 반영된 변화다.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YWCA)의 청년 모임 ‘대학·청년Y 하랑’은 지난 7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오월의 기억’ 배지 제작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5일 만에 배지 제작에 필요한 금액 51만8000원을 돌파한 후원 프로젝트는 이달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오월의 기억’ 배지에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세워진 ‘5·18민중항쟁추모탑’과 ‘젊은 날의 슬픔’이라는 꽃말을 가진 ‘황화구륜초’(카우슬립 앵초)가 새겨져 있다. 황화구륜초는 5월의 탄생화이기도 하다. 배지 프로젝트를 기획한 ‘대학·청년Y 하랑’ 회원 신수진(23)씨는 “제주 4·3 사건은 ‘동백꽃’, 세월호 참사는 ‘노란리본’같은 상징물이 있는데, 사람들이 5·18민주화운동을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은 없는 것 같아 ‘오월의 기억’ 배지를 제작하게 됐다”며 “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의 모습이 너무 무겁고 슬픈 분위기로만 비치는 게 아쉬웠다. ‘오월의 기억’ 배지를 보며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5·18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배지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 전액(텀블벅 수수료 5% 제외)을 ‘5·18기념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한신대학교 신학대 학생회가 제작한 ’5·18 배지’와 모티브가 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장면. 한신대 신학대 학생회 페이스북 갈무리.
39년 전 시민군으로 희생된 학교 선배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배지 제작에 나선 학생들도 있다. 한신대학교 신학대 학생회는 1980년 5월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끝까지 맞서 싸우다 숨을 거둔 류동운(당시 신학과 2학년) 열사를 추모하는 교내 문화제를 앞두고 영화 <화려한 휴가>(2007)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삼은 배지를 만들었다.
1961년 경북에서 태어난 류 열사는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진보적 신학을 공부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한신대에 입학했던 그는 전두환 신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선포한 직후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왔다. 도청 앞 시위에 참여해 계엄군에 연행됐다가 이틀 만에 풀려난 그는 25일 다시 도청으로 향했고, 끝내 27일 숨진 채 발견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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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신학대 학생회 쪽은 “매년 류동운 열사를 추모하는 티셔츠 제작이나 연극 공연을 준비한다”며 “류 열사가 전남도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이 역사를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합니다’란 일기처럼 그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배지를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민중미술화가 이상호 작가의 그림을 주제로 서동환 디자이너가 제작한 ’광주정신 아트상품’. 은암미술관 제공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회화를 에코백, 텀블러 등으로 재탄생시킨 굿즈도 있다. <광주아트가이드> 발행인인 디자이너 서동환(49)씨는 조선대학교 미술패 선배인 작가 이상호씨의 그림 ‘오월전적지도’ 등을 활용한 상품을 기획했다. 지난 2월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이씨의 그림을 본 서씨는 광주를 찾은 관광객이나 외국인들에게 광주의 역사와 정신을 소개할 수 있는 기념품을 고민하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트상품을 고안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홍성담 작가의 오월판화 연작 중 ‘횃불행진’에 나오는 ‘주먹밥 어머니’를 형상화한 배지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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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는 “그림을 종이에 그대로 옮긴 포스터는 여행객들이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 디자인의 관점에서 에코백, 유에스비(USB), 텀블러 등을 제작하게 됐다”며 “그동안 미술계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작업은 민중화가들의 회화나 판화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내년이 5·18민주화운동 40돌인 만큼 디자인 분야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