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인 2017년 7월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앰네스티가 연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로 처벌을 받았거나 재판중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거리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여호와의 증인 신도 김아무개(26)씨는 지난해 6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았다. 2012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병역법의 위헌성에 관해 헌재 판단을 구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지 5년여 만에 얻은 결실이었다. 그해 11월 대법원은 다른 신도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김씨는 1심 선고를 한달 앞둔 이달 오랜 기간 미뤄뒀던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최고 법원인 헌재와 대법원의 판단은 ‘공항 출국장’을 넘어서지 못했다.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미리 항공권을 끊어놨는데, 병무청이 ‘병역기피자의 해외여행은 금지돼 있다’는 취지로 출국을 불허한 것이다. 지난달 법원으로부터 여행 허가까지 받았지만 병무청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김씨는 어쩔 수 없이 위약금을 물고 항공권과 숙박 예약 등을 취소해야 했다.
병무청은 입영 소집 통지에 응하지 않는 이들을 병역 기피자로 보고 출국을 불허해왔다. 병역법(70조·국외여행의 허가 및 취소)에 따르면, 병역을 마치지 않은 경우 해외 여행을 하려면 병무청장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기피하는 사람들은 국외 여행을 불허할 수 있게 돼있다. 그러나 김씨 사례처럼 대법원 판단에 따라 무죄 선고가 예상되고, 해당 법원도 선고 전 출국을 허가한 경우까지 과거 잣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과 제도는 변했는데 이를 운용하는 기관은 아직까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여호와의 증인인 여아무개(27)씨도 올해 8월 폴란드에서 열리는 종교 행사에 온 가족이 참석하기로 했다가 어쩔 수 없이 출국을 포기해야 했다. 여씨 사건은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돼 수원지법에서 최종 무죄 판단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다. 백종건 변호사(법무법인 위)는 “병무청은 병역거부 자체가 범죄로 받아들여졌을 때 기준으로 여전히 해외 여행을 제한하고 있다. 사법부가 법 해석을 바꾼 상황에서도 기계적으로 과거 조치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병무청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은 합헌 판단을 받았다. 병무청 행정조치는 사법 판단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는 이상 여행 불허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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