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누리꾼들 “이희호 이사장을 ‘김대중 대통령의 여사’로 가두지 말자”

등록 2019-06-11 16:57수정 2019-06-11 21:07

20대에선 “생소했지만 별세 계기로 제대로 알게 됐다” 반응도
1982년 8월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와이더블유시에이(YWCA)전국대회에서 실행위원이었던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제공
1982년 8월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와이더블유시에이(YWCA)전국대회에서 실행위원이었던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제공
10일 밤 별세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1세대 여성 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로 꼽힌다. 운동가로 주로 활동한 시기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여서, 그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에게 다소 생소한 인물이다.

2015년 이화여대를 졸업했다는 회사원 박선영(28)씨는 “사실 우리 나잇대 친구들에게 이희호 여사는 그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학교의 훌륭한 선배로만 아는 인물”이라며 “하지만 이번에 별세 소식을 접한 뒤 여성 인권이 존중받지 못했던 시대에 여성운동에 앞장선 구체적인 내용을 접하고 새삼 ‘페미니스트 이희호’의 업적에 대해 알게 됐다. 빈소에 조문을 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민아무개(25)씨는 “이희호 여사님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거 말고는 아는 게 없었는데, 티브이를 보다가 속보가 떠서 별세 소식을 알게 됐다”며 “함께 소식을 접한 여자친구가 자서전을 읽었다며 ‘안타깝다’고 하고, 별세 이틀째인 오늘까지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올라와 있는 걸 보고 제가 아는 것보다 더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아무개(25)씨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데 큰 기여를 하신 분인데, 그런 분이 세상을 떠나셔서 가슴이 아프다”며 “이희호 여사는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대통령 부인이다. 영부인은 많았지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인물은 이희호 여사가 처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활동가 김창용(26)씨는 “이희호 여사에 대해 잘 몰랐는데, 시민운동 단체에 들어와 ‘운동하는 사람들은 현안 대응 외에도 문제 발굴을 해내고 불편함을 느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 여사에 대해 알게 됐다”며 “혼인신고 운동 등으로 여성들이 겪은 일상적인 불편함을 발굴해내고 이를 운동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여사가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이 이사장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여사’로 가두지 말고, 민주화 운동가이자 여성 운동가이며 사회 운동가인 동시에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초창기 정치사의 산증인으로 추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eun_****는 “이희호 여사는 1922년생. 박정희보다 5살 적고 김종필보다는 4살, 김영삼보다는 5살 위.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초창기 정치사의 산증인이자 버팀목께서 떠나셨다”고 했다. @C_F_diab*****는 “여성 운동가 이희호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분의 삶을 ‘여사’로 가두어서는 안 될 겁니다. 기록하고 기억하며 행동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아이디 @miesta*****도 “민주화 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이희호님이라고 따로 호칭했으면 한다. 김대중도 이희호님이 ‘여사’로 남게 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디 @sun****는 “1998년쯤이었나. 영부인이신 이희호 여사님을 여성의 날 행사 때 뵌 적이 있다. 영부인이 여성의 날 행사에 직접 오시다니, 낯설지만 여사님의 행보에 관심이 갔다. 그분께서 살아오신 시간에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명복을 빕니다”라고 했고, @widerst******는 “이희호 선생님께서 별세하셨군요. 여성 운동가였고, 평화의 사도였고, 한반도 현대사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분. 큰 어른의 가시는 길이 부디 따뜻하길 바랍니다”고 썼다. 아이디 @onthetim******는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을 한 번 더 새기며. 이 말이 또한 이희호 선생님의 말이기도 함을 새로이 새기며. 조금이라도 더 충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라고 했다.

이주빈 김민제 오연서 기자 ye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