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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맞으며 수술하고 과로로 숨지고…‘하얀거탑’에 쓰러진 젊은 의사들

등록 2019-06-18 16:49수정 2019-06-18 20:38

상급자 폭력·장시간 노동에 무방비로 노출된 대형병원 전공의들

“수술 중 불려 나가 맞기도…‘4년간 버티자’며 참아”
“주 52시간 근로는 꿈같은 이야기”
지난 2월엔 가천대 전공의가 36시간을 근무하다 숨진 채 발견된 뒤 전공의들이 추모 배지를 붙인 모습.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지난 2월엔 가천대 전공의가 36시간을 근무하다 숨진 채 발견된 뒤 전공의들이 추모 배지를 붙인 모습.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지난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12명이 수년간 교수로부터 폭행·폭언에 시달렸다며 대학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2월엔 가천대 전공의가 36시간을 근무하다 숨진 채 발견됐다. ‘돈 잘 버는 의사’라는 사회적 인식과 달리 대형병원 전공의들은 상급자의 폭력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한겨레>가 만난 전공의 4명은 “폭행과 장시간 노동은 일부 교수의 일탈이 아닌 대형병원의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의사 대비 환자 수’를 낮추는 것이 해답이라고 입을 모았다.

■ 욕설은 일상…수술 중 밖으로 불러내 폭행

“(교수가 전공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하고 화내는 건 많이 봤어요. 수술실 들어갈 때 장갑을 2~3개 끼고 들어가는 교수가 있다는 말도 있어요. 전공의 때리고 오염된 장갑 하나 벗은 뒤 속장갑으로 수술하는 거죠.” (경기도 대학병원 전공의 ㄱ씨)

지난 15일 <한겨레>가 만난 전공의들은 수술실을 비롯해 의국에서 겪은 다양한 폭행과 폭언을 고백했다. 전공의들은 수술실의 ‘예민한 분위기’ 탓에 조그만 실수도 폭행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았던 ㄴ씨는 “조금만 실수해도 전공의가 모든 욕을 듣고 그는 결국 울면서 뛰쳐나간다”며 “교수가 전공의를 수술실 밖으로 불러내 때리고 다시 수술실로 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당시 국소마취를 해 의식이 있었던 환자는 폭언·폭행 소리를 고스란히 다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폭력은 일상이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1768명 가운데 71.2%가 언어폭력을 당했고, 20.3%는 신체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 돈 잘 버는 의사? 실상은 최저임금 받으며 80시간 근무

폭행만큼이나 전공의들을 힘들게 하는 건 장시간 근로였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전공의인 ㄷ씨는 주 90~100시간 근무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ㄷ씨는 “점심시간 1시간이 규정이지만 그 시간을 메워줄 사람이 없다”며 “식사는 5분 안에 해결하고 야간 업무가 있는 날은 1초도 쉴 수 없다”고 토로했다.

36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ㄹ씨는 “쪽잠을 자라고 하는데,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 상태니 그럴 수도 없다”고 고백했다. 주 90~100시간 일하고 이들이 받는 돈은 월 300만원 남짓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7조는 ‘수련병원 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4주 기간을 평균해 1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해 수련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법은 현실을 제어할 수 없다.

장시간 노동 탓에 전공의들은 늘 피로감을 느낀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전공의 업무 강도 및 휴게시간 보장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국 90여개 병원 660명의 전공의 가운데 81.1%가 ‘평소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92.9%가 정신적 피로감을, 94.7%가 육체적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새벽까지 일한다”거나 “환자를 착각해 다른 환자에게 검사하거나 투약할 뻔한 적이 있다”는 전공의들도 있었다.

■ ‘4년만 버티면 해방’…전공의들이 참는 이유

살인적 근무와 일상적인 폭력에도 도제식 교육 과정에서 굳어진 수직적 위계관계 탓에 쉽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ㄹ씨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형병원 산부인과는 ‘교수 스케줄에 맞춰 애 낳는 시간이 정해진다’는 말이 있다. 순종적으로 복종하는 문화가 그 정도”라고 말했다. ㄴ씨 역시 “밥 시간이 되면 1년차 레지던트가 교수들 방 문을 두드리며 식사시간을 알리고, 가장 직급이 높은 교수는 밥을 직접 떠다 줬다. 전공의와 교수 간 위계를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24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고 ‘4년만 참으면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도 전공의들을 침묵하게 한다. ㄷ씨는 “교수와 의국에 있는 동안 몇십시간을 함께 있어야 하는데,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한다”며 “전공의 기간 4년(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만 참으면 되니 ‘더러워서 피한다’는 심정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부조리한 관행에 대한 침묵이, 폭력의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전공의에 대한 부당한 처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형병원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폭행과 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교수도 장시간 근무를 하고 작은 실수는 환자 생명과 직결된다.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다 보니 엄격한 관계가 형성되며 그 속에서 폭언·폭행 문제가 터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 정책실장은 이어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대형종합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며 “전공의법이 통과되고 주당 80시간 이내로 일을 시키라고 규정하지만 인력 충원은 안 이뤄지고 있다.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공의들이 법을 지켜가면서 일하기 어려워지거나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고강도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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