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총장실에서 김영희 <한겨레> 논설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 사회가 ‘서울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최고의 지성과 권위를 인정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 사회 일그러진 권력의 산실로 바라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이 그려냈듯, 서울대는 피라미드 꼭대기를 향한 욕망의 대상이다. 그 어느 쪽이라 해도 서울대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울대와 관련해 ‘부끄러운’ 소식이 많아졌다. 성폭력, 표절, 횡령, 논문저자에 자녀 끼워넣기, 가짜학회 참가 같은 뉴스가 잇달았다. 참여정부 시절 제기됐던 ‘서울대 폐지론’ 같은 외부의 충격보다 어쩌면 지금 이런 내부 모습이 더 크고 심각한 위기일지 모른다. 국회의원 배지를 반납하고 지난해 가을 서울대 총장선거에 세번째로 도전해 올해 2월 취임한 오세정 총장은 “학생대표도 참여시켜 강력한 인권규범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13일 서울대 본관 총장실에서 만났고 이후 전화로 보충질문을 했다.
- 최근 대학원생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서어서문학과 교수의 파면요구안이 학생총회에서 의결되는 등 반발이 심하다. 지난해 사회학과 교수 사건 등 그동안 쌓인 구조적 문제가 배경으로 지적된다. 가짜학회 참여나 논문저자에 자녀를 넣은 건수도 가장 많다. 도대체 왜 이러나?
“답답하고 자괴감이 든다. ‘다른 대학 교수 10명보다 서울대 교수 1명 삭발이 더 기사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같은 행위라도 서울대라 더 도드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짜학회도 연구비를 많이 받는 대학이 더 많이 걸린 측면도 있다. 그래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이런저런 제도를 마련 중이지만, 근본적으론 지식인으로서 역할과 책무를 망각한다는 게 문제고 창피한 일이다. 더 이상 그런 일이 없길 바라면서도 교수만 2천명이 넘다 보니 또 발생할 개연성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조직의 능력은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빨리, 엄정하게 대응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그 규정을 제도적으로 만들겠다.”
- 사건 자체만큼이나 교수들의 침묵이 문제라고 느껴진다. 11일 서울대민주화교수협의회가 밝혔듯 교수들이 엘리트 의식과 패거리문화에 젖은 건 아닌가?
“조금씩 변하고는 있다. 민교협이 발표한 날, 단과대 학장 및 전문대학원장들이 찾아와 본부에 선제적이고 적극적 대응을 위한 규정과 절차를 강화하고 교원들이 일종의 ‘윤리서약’을 시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평교수가 아니라 단과대를 책임지는 학장들의 말은 무게가 다르다. 의미가 적잖다고 본다. 서울대는 공공적 목적을 갖는 집단이고 막대한 정부지원도 받는다. 그러면 일반 국민의 시각이나 기대치가 뭔지 알아야 하는데 그동안 외부의 견제나 피드백을 받는 데는 많이 부족했다. 징계위에도 외부인들을 포함시켰고, 내부논리에만 함몰되지 않도록 하려 한다.”
- 구체적인 제도개선 내용은?
“서문과 교수의 경우 성폭력 외에도 연구비리 문제가 제기돼 병합심리를 하다 보니 징계 결론이 늦어졌다.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인원을 늘리고 기간을 단축하겠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학생대표의 징계위 참여는 법률상 불가능하지만, 피해자가 관련 정보 및 결과 확인 등을 요청하면 징계위 의결을 거쳐 고지하도록 추진 중이다. 법적 논리를 들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피해자의 알 권리라 여겼다. 또 그동안 교수 징계에 사립학교 규정을 원용하다 보니, 정직 3개월 다음엔 파면·해고밖에 없어 징계수위가 약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를 12개월까지 늘리기로 했다. 학생들을 대할 때 해도 될 것과 안 될 것을 세세히 규정하는 ‘행동수칙’을 만들자는 논의도 나온다. 무엇보다 서울대 공동체 전반에 인권 가치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구성원들의 권리와 책임을 천명하는 인권규범을 제정, 선포하겠다. 더 논의해봐야겠지만 상징적 의미를 넘어 강력한 처벌의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권 관련 교수들뿐 아니라 총학생회, 대학원총학생회 학생까지 참여하는 인권규범 제정 연구를 며칠 전 발주했다.”
- 총장 취임 직후 터진 시설관리노조 파업은 합의점을 찾았다. 최근 대학가에선 처음으로 한국어학당 강사들을 무기계약직화했다. 사회적 난제기도 한 비정규직 문제, 강사 문제에 서울대가 좀 더 적극 나설 계획은 없나?
“먼저 시설관리노조의 도서관 난방 파업에 학교가 밀렸다는 이들도 있던데, 그건 아니다. 들여다보니 실제 다른 대학에 비해 이들의 임금과 처우가 열악했다. 학교의 능력 범위 안에서 처우개선에 합의했다. 강사 문제도 적어도 서울대에서 강사법 때문에 대량해고 같은 건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고민이 많다. 현재 교수를 제외한 직원 중 법인직원인 정규직은 1천명이고, 단과대나 연구소가 자체고용해 ‘자체직원’이라 불리는 2천명이 있다. 이들의 고용계약은 천차만별이다. 적어도 앞으로 신규 고용은 단과대나 연구소 채용이더라도 본부 차원에서 근로계약서를 점검하고 감독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단과대별로 재정 상태가 다 다른 상황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바꾸는 건 장기 과제다.”
- 세번 총장선거에 도전했다. 많은 이가 ‘무슨 미련이 있길래’라며(웃음) 궁금해한다.
“지금 시점에서 난 연구보다 교육개혁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구는 뒷걸음치진 않지만 교육은 퇴보하는 것 같고, 많은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서울대가 바뀜으로 해서 한국의 풍토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 연구자가 될 거라 생각한 이들이 많았을텐데, 왜 교육을 택했나.
“사실 난 그냥 시험을 잘 본 거다. 연구는 독창적인 게 필요하다. 미국 유학을 가 막상 연구에 들어가니, 외국친구들은 항상 자기나름대로 생각이 있더라. 처음엔 교수에게 말이 안된다고 야단만 맞고 내게 묻기만 하던 학생이 6개월, 1년이 지나니 ‘어 그거 말되네, 한번 해보자’ 같은 평가를 받더라. 난 틀릴까봐 ‘아직 공부중이라 그 문제엔 답을 못드리겠습니다’ 늘 이런 식이었고. 그때 한국의 교육시스템으론 정말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판단하고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올해초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졸업식 축사는 화제였다. 오 총장은 그를 초청한 이유에 대해 “졸업생들이 고시나 변호사와 같이 주어진 길만 가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국회의원은 안 만나다’던 방 대표는 처음엔 졸업식 초대도 거절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 사례를 들며 재차 설득한 끝에 승낙을 얻었다.
- 3월 입학식에서 “서울대는 자격증 발행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인재를 원하나?
“과거는 물론 서울대 교육에서 여전히 ‘지식 전수’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남을 쫓아가는 시기엔 정당화될 수 있었는데 그런 시대는 지났다. 우선 주어진 답을 잘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질문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둘째, 서울대 학생들이 굉장히 심한 경쟁을 뚫고 들어오기 때문에 남들과 협동하는 걸 모른다. 남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게 리더에게도 중요한 능력인 시대다. 마지막으로 서울대가 욕먹는 이유가 똑똑한 것 같은데 이기적이라는 거다. 공공성을 생각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학생들이 자기의 아이디어로 연구과제를 개발하는 ‘학생설계전공’이나 한 과목을 인문·사회·자연 교수들이 같이 가르치는 융합과목을 준비하고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다양한 전공이 가르치면 재미있지 않을까. 12년간 초중고에서 정형화된 틀을 1, 2학년 과정에서 깨야 한다. 그래야 전공에 가서도 좀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다.”
- 요즘은 세살부터 사교육을 하는데, 대학 1~2년으로 바뀔까 싶다. 최근 다시 국공립대 네트워크 논의가 제기된다. 학벌체계를 완화한다는 측면뿐 아니라 좀 더 다양한 풀의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검토해볼 생각은 없나?
“국공립 네트워크의 문제의식은 알지만, 학생 선발을 통합으로 바꾸는 건 조심스럽다. 입시제도가 급격하게 바뀌면 사교육에만 유리한 게 지금까지 현실이다. 그런 방안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장기 10년을 내다보며 논의해야지, 임기 4년의 총장이 말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좀 더 가능성을 보고 다양하게 뽑는 노력은 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대 입시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가능한 범위에서 학교의 정상적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내려 한다. 1점이라도 점수 따기 쉬운 과목만 듣다 보니 요즘 물리학과생 절반이 물리2를 안 듣고 들어온다. 그러면 대학에서 힘들다. 2022학년도부터 물리2처럼 어려운 과목을 들은 이들에겐 정시에서도 가산점을 주기로 했는데 우리 나름대로 메시지를 내는 거다.”
- 공교육에 아이비(IB·국제 바칼로레아) 교육을 도입하는 데 총장은 지지 목소리를 내왔다. 자칫 교육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수능이 제일 공정하다는 인식도 사회엔 여전하다.
“지난해 국회의원 시절, 교육부가 주요 대학 정시를 30%까지 늘리려 할 때 학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이해하기 때문에 찬성했다. 서울대도 거기까진 따른다. 하지만 당시에도 김상곤 교육부 장관에게 그 이상을 가려면 수능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오지선다형에 배배 꼬아놓은 문제가 무슨 의미가 있나? 최소한 주관식이라도 도입해 숨통을 틔워야 한다. 솔직히 서울대 교수들은 수시입학생을 더 선호한다. 학과에 대한 애착도 더 크고 입학 뒤 성적도 굳이 보자면 수시-지역균형-정시 차례다. 정시는 오히려 강남 출신들에게 유리하다. 물론 학종의 투명성 확보 노력은 계속할 거다. 이전엔 교사들 상대로만 설명을 했는데 이제 학부모들을 상대로 기출문제나 뽑는 기준에 대한 설명회를 한다. 입시관리에 올해부터 외부인도 넣어 정책을 모니터링하게 했다. 근본적으론 미래인재를 위해선 아이비가 필요하다. 내 주장은 일부 학교가 아니라 국어, 사회 같은 일부 과목이라도 같이 실시하자는 거다.”
- 서울대가 정부의 종속에서 벗어나 연구대학으로 위상을 찾겠다며 법인화한 지 8년째다. 하지만 여전히 한해 4천여억원의 지원을 받는 서울대가 뭐가 달라졌는지 국민들은 느끼지 못한다.
“인정한다. 오늘 법인화재정립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법인화 때 목표가 뭐였고 얼마나 이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버넌스를 포함해 근본적으로 논의해, 필요하면 서울대법을 바꾸자는 거다. 외부인도 참여한다.”
- ‘총장 직선제’ 부활도 검토하나?
“논의에 제약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이사회, 본부 집행부, 평의원회의 역할이나 평의원회의 구성도 제대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법인화가 됐는데 이런 모든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요청한 서울대병원의 창동 이전이나 삼성이 요청한 반도체학과 설치는 어떻게 되나?
“사실 서울대병원 이전은 시흥캠퍼스에 연구 기능을 넣은 분원을 만드는 것과 차원이 다른 논의다. 안 그래도 강북에 위치해 강남에 있는 병원들보다 불리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반면 연건캠퍼스가 너무 좁고 얼기설기 기획 없이 만든 건물이다 보니 옮기자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스터디팀은 출범시킨다. 계약학과 설치는 국가 주요 산업분야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한다. 하지만 특정 기업을 위해 학과를 개설하는 건 서울대에 맞지 않는다. 논의 끝에 하이닉스나 다른 팹까지 포함한 반도체협회와 계약학과를 진행하기로 바꿨는데 여전히 대학원이 아닌 학부 설치를 요구해 고민 중이다. 올해 안에 결론 내겠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국회의원, 말할 순 있지만 실제 현실 바꾸긴 어렵더라” 오세정은 누구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인터뷰에 앞서 서울대 기 옆에서 웃음짓고 있다. 김정효 기자
1971년 예비고사와 서울대 본고사 수석, 물리학과 수석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시험 최고점…. 오세정 총장을 언급할 때 늘 따라붙는 이야기다. 자연대학장을 거쳐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한국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표방한 기초과학연구원 원장도 맡았다. 한마디로 ‘실패가 별로 없는’ 삶이었다. 그런 그에게 2014년 두번째 나선 총장 선거에서 총장추천위 1위를 하고도 이사회에서 밀린 사건은 충격 아니었을까.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업무일지에 서울대 총장 건이 메모된 날짜 전날부터 감이 왔다”고 그는 말했다. 기류를 전해주던 청와대 관계자 연락이 뚝 끊긴 것이다. 이사회 전날엔 ‘뒤집혔다’는 확신이 들었다.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그다음엔 교수들 반발이 상당할 텐데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가 고민이더라. 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결국은 ‘최소한 이유는 설명해줘야 한다’는 성명을 내는 데서 멈췄다.”
확실히 그는 ‘싸움꾼’은 아니다. 2016년 국회에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 비례대표로 들어가서도 그의 활동은 ‘정책’에 집중됐다. “가을에 국감에 나가야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웃음), 국회의원 정말 고생하는 자리다. 피감기관일 땐 국회의원 힘이 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말하고 욕할 순 있는데 실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더라. 여당의 중진의원이 되거나 결국은 정부부처와 협력해 추진해야 하는데 야당의 초선의원으로선 힘들었다.” 그는 실험실 사고로 다친 대학원생들이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처럼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자신의 법안이 고용노동부 반대로 무산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1천만원에 불과하던 개인보험 한도가 2억원까지 올랐으니 성공이긴 하지만, 어려움을 절감했다.”
오 총장은 교수들의 ‘공공적 인식’ 부족에 대해선 단호했다. “미국에선 주요 연구 심사의 평가위원으로 불렀는데 몇번 안 오면 공적 마인드가 없다고 그에게 프로젝트를 안 준다고 하더라. 서울대 교수들은 돈도 별로 안 주고 시간 빼앗기는 데는 안 가려고 한다. 고질적 문제다.” 하지만 일부 서울대 학생들의 배타적인 엘리트의식, 내부적으론 입학전형 유형을 갈라 차별하는 양상, 나아가 최근 고 이희호 여사에 대해 차마 옮길 수도 없는 글을 남긴 학부생 사례 등을 묻자 고민이 깊어 보였다. “너무 경쟁으로만 살아온 학생들에게 공동체의식을 어떻게 불어넣을지 답답하다. 최소한 막말을 하는 부분은 신중하게 지적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