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26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오는 30일까지 자회사 고용을 제안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아무개(45)씨는 2013년부터 강원도 원주톨게이트에서 일하고 있다.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톨게이트 수납 일을 시작하게 됐다. 톨게이트에서 일한다고 해서 고속도로 이용료 수납 업무만 하는 게 아니었다.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는 화장실과 사무실 청소, 부스 청소, 도로 쓸기, 풀 뽑기 등 온갖 잡일도 함께 시켰다. 하이패스 미납처리 등에 대해 순위를 매겨서 실적이 나쁘면 휴무를 반납하게 하고 벌 근무를 시키기도 했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월급은 연장근무 등을 뛰어서 겨우 월 150만원 정도 받았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가 있다. 박씨는 자신이 속한 용역업체가 도로공사에 속해 있는 줄 알았다. 모든 업무 지시를 도로공사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1심과 2심 법원도 박씨 같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 노동자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을 거부하고 자회사 입사를 요구하고 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은 2013년 시작했다. 노동자 500여명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고, 2015년 1월 1심에서 승소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15부(재판장 김종문)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소속임에도 실제로는 도로공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한 점을 인정하고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파견법에 따라 일한 지 2년이 지난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에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하고, 2년이 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을 해야 한다. 도로공사는 항소했으나 2심 법원은 2017년 2월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판단을 미루면서, 도로공사는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하고 다음달 1일부터 통행료 수납 업무를 이곳에 모두 이관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도로공사 직접 고용을 주장하며 자회사에 입사하지 않은 박씨 같은 노동자 1500여명이 오는 30일자로 해고된다.
도로공사의 ‘정규직 전환 교육자료’를 보면, 도로공사는 자회사 입사를 거부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도로정비, 환경정비(졸음쉼터, 버스정류장), 조무원, 시설관리 등 임시·기간제 업무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적고 있다. 자회사를 선택한 ㄱ씨는 “도로공사 쪽에서 자회사로 가야만 요금 수납 업무를 할 수 있고, 그게 아니면 허드렛일을 하는 임시직밖에 할 수 없다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자회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체 톨게이트 노동자의 3분의 2가량인 4500여명이 자회사 입사를 택했다. 하지만 박씨는 “1~2심 판결처럼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로 일하고 싶다. 여기서 해고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회사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총파업투쟁본부는 2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로공사는 직접 고용에 대한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요금 수납원은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라는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둔 노동자들에게 자회사를 강요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직접 고용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노조도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자회사로 전환한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한국노총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노조 주최로 열린 ‘톨게이트수납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대법원 판결 촉구 대회’ 모습. 지난 6월1일자, 6월15일자로 이미 해고된 노동자들이 앞쪽에 상복을 입고 누워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오는 30일 1박2일로 서울톨게이트에서 대량해고를 규탄하는 투쟁을 진행하고, 다음달 1일부터는 청와대 앞에서 농성투쟁을 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도로공사는 “해고가 아니라 외주업체와 해오던 요금수납업무 계약이 끝난 것 뿐이다. 대법원에서 하급심과 같은 판단이 나오면 도로공사는 자회사로 가지 않은 분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이다”며 “다만 요금수납업무는 자회사에서 전담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관리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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