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15살 소년 기타리스트’ 김준희군
“아, 저런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왜 통기타만 배우게 할까?”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기훈(56)씨는 2015년 가을 전남 장흥군 용산면 귀농인 장터 ‘마실길’에 나갔다가 통기타를 치는 한 소년에게 눈길이 쏠렸다. 망가진 몸을 치유하기 위해 장흥에 머물렀던 그는 마실길 축하잔치 무대에서 범상치 않은 기타 음색을 듣고 깜짝 놀랐다. 1991년 봄 분신한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해줬다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건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24년만인 2015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젊은 시절 독학으로 연주법을 익혀 무대에 설 정도의 수준급 클래식 기타 연주자다. 다큐멘터리 <1991, 봄>(2017)은 무죄 이후 암세포만 남은 그가 말하기를 멈추고 기타의 여섯줄 현에 몰두하며 살고 있는 이유를 담은 작품이다. 강씨는 “시골에서 썩히기 아까운 재능이라고 혼자 구시렁거렸는데 마침 그 소년의 아버지가 내 옆에 서 계셨다”고 말했다.
전남 장흥 귀농한 부모와 홈스쿨링
11살때부터 장터에서 ‘통기타’ 연주
‘간암 요양중’ 강기훈씨 듣고 ‘추천’
정상급 서만재 교수에게 3년째 ‘사사’ “스스로 치유하는 느낌이 재미있다”
마드리드왕립학교 입학 ‘후원’ 기대
소년 기타리스트 김준희(15)군은 길거리 공연도 스스럼 없이 나갔다. 2010년 장흥으로 귀농해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는 아버지 김병순(48)씨는 아들을 자유롭게 키웠다. 김군은 초등학교 4학년 과정부터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았다. 11살 때 장흥 ‘필소굿’이라는 라이브 카페의 주인이 꾸린 밴드 동아리에 참여하면서 드럼을 먼저 배우다가 기타를 만났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핑거스타일 기타 연주법을 보고 혼자 익히면서 기타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전남도교육청 공무원인 어머니 한수정(46)씨는 “준희가 혼자 집에서 기타를 가지고 노는 시간이 많았다. 남편이나 저는 음악에 무지해 그냥 아이가 기타를 즐기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군은 강씨의 소개로 서만재(64) 한국교원대 객원교수에게 클래식 기타 연주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 교수는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 출신의 국내 정상급 연주자로 광주가톨릭대 평생교육원에서 일주일 두 차례 강습을 한다. 강씨는 3년 전부터 매주 한 차례 서 교수를 찾아 다니며 음악을 공부하고 있다.
서 교수는 강씨의 소개로 김군을 만난 뒤 전남 진도의 ‘깡촌’에서 소몰이를 하면서 형들한테 배운 통기타에 혼이 나갈 정도로 빠져들었던 자신의 어린시절이 생각이 났다. “‘딴따라’가 될까봐 걱정하던 아버지가 기타를 아궁에 넣어 홀랑 태워 버렸어요. 재가 된 기타를 보며 많이 울었지요.” 하지만 예술적 ‘끼’가 잡아 끄는 힘은 어쩔 수 없었다. 고교에서 밴드부를 하고 서울로 가 전자기타를 치며 보컬활동을 했던 서 교수는 1976년 독일 기타리스트 지그프리트 베렌트의 독주회를 본 뒤 클래식 기타의 멋에 매료됐다. 그리고 고교 졸업 후 10년만인 1986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기타 학과가 있는 평택대에 입학해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 스페인으로 가 마드리드 왕립음악원과 그라나다 왕립음악원을 졸업했다. 서 교수는 “준희는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자연적인 감수성이 뛰어나다. 음악적인 뉘앙스가 굉장히 좋고, 습득하는 게 굉장히 빠르다”고 말했다.
김군은 2년 3개월째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광주로 가 서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한국공연예술협회가 주관하는 ‘벨라스 아르테스 기타 콩쿨’에서 ‘관현악부 중등 고전기타 부문’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빠르게 재능을 발휘했다.
“클래식 기타를 치는 게 재미있다. 나 스스로를 치유하는 느낌이 든다”는 김군은 스페인 그라나다 시립음악원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한달짜리 기타 강좌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6일 출국했다. 서 교수는 “지난해 처음 스페인 단기 강좌에 함께 갔는데 스페인 클래식 기타 연주자들이 김군의 재능을 보고 놀라워 하더라”고 전했다.
김군은 클래식 기타의 본고장인 스페인으로 유학해 깊이 있게 음악공부를 하는 게 꿈이다. 김군의 부모도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게 뿌듯하다. 김군은 “서 교수님처럼 스페인 왕립음악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스페인어도 독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군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강씨는 “스페인으로 유학을 가 제대로 공부하면 세계적 수준의 클래식 기타 연주자 될 것 같은데 여건이 여의치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전남 장흥에 사는 김준희군이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김준희군 제공
11살때부터 장터에서 ‘통기타’ 연주
‘간암 요양중’ 강기훈씨 듣고 ‘추천’
정상급 서만재 교수에게 3년째 ‘사사’ “스스로 치유하는 느낌이 재미있다”
마드리드왕립학교 입학 ‘후원’ 기대
독학으로 연주법을 익혀 무대에 설 수준인 강기훈씨가 클래식 기타를 연습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 6월30일 열린 공연에서 합주를 하고 있는 스승 서만재(왼쪽) 교수와 제자 김준희(오른쪽)군. 사진 서만재 교수 제공
지난 6월21일 전남 장흥에서 장흥문화공작소 주최로 김준희군의 클래식 기타 독주회 ‘잊을만 하니까 음악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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