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소셜미디어로 꼽히는 ‘유튜브’에서는 이 사건이 어떻게 소비됐을까? 유튜브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과 이주여성을 향한 혐오를 확산시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유튜브 혐오 콘텐츠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23일 누리집에 ‘유튜브 모니터 보고서’를 올리고 “유튜브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폭행 사건에서) 통제불능의 루머 확성기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주여성의 인권 보호가 공론화돼야 할 때 오히려 이주여성의 사생활이 공개되고 공개적인 비난이 쏟아지는 등 인권침해가 벌어졌다는 분석이다.
민언련은 사건이 공론화된 6일부터 15일까지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가운데 ‘베트남 폭행’, ‘이주여성 폭행’, ‘영암 폭행’ 등 3가지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온 영상 129건을 분석했다. 민언련은 유튜브가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는 지적이 계속됨에 따라, 지난 5월부터 성평등과 난민 등에 대한 허위조작 정보를 담은 유튜브 게시물을 시범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이번이 두 번째 보고서다.
민언련의 분석을 보면, 유튜브에는 가해자 남편을 비판하는 영상(26건)보다 피해자인 이주여성을 비방하는 영상(28건)이 더 많았다. 지난 9일 인터넷에 올라온 가해자의 ‘전 부인’이라는 사람이 쓴 글의 영향이 컸다. 전 부인의 글이 올라오기 전에는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그대로 게시하거나 △해당 사건을 소개하는 영상이 대다수였다. 피해자를 비방하는 영상은 1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9일 전 부인의 글이 나오자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을 비방하는 영상이 일주일 동안 27건으로 폭증했다. ‘베트남 여성폭행 충격적인 진실…남편은 피해자였다’와 같은 제목의 영상들은 전 부인의 주장을 ‘진실’로 단정 지은 뒤 피해자를 ‘가정파탄범’이라고 맹비난했다. 27건의 일주일간 조회 수는 모두 20만회가 넘었다. 민언련은 “전 부인의 글은 앞뒤 맥락이 생략된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며, 설사 사실이더라도 이 사건과는 관련 없는 사생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의 핵심은 가정폭력이며, 약자를 향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사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영상의 내용이 피해자 개인에 대한 비난에 그치지 않고 동남아시아 이주여성 전체를 향한 혐오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한 영상은 진단서를 갈무리한 화면을 보여주면서 “베트남 여성들이 일부러 폭행을 유도해 진단서를 받아낸 뒤 ‘기획 이혼’을 시도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영상은 이에 대한 해결책이라며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고립을 유도하는 행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말고, ‘못된 것’을 배울 수 있으니 다문화센터에도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민언련은 일부 유튜버들의 이러한 주장이 결혼이주여성이 처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민언련은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를 인용하며 이주여성들은 ‘기획 이혼’은 커녕 폭행 피해를 알리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주여성의 한국 체류자격이 여전히 남편에게 달린 상황에서 일부 유튜버들이 말하듯이 폭행 사실로 남편을 협박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민언련은 “유튜브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언론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지만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있다”며 “수십만 명의 독자를 향해 정보를 생산하고 여론을 형성하면서도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유튜브 내의 혐오 콘텐츠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유튜브 혐오 콘텐츠 뒤에는 단기간에 조회 수나 구독자 수를 늘려 경제적 이익을 얻겠다는 의도가 있다. 게다가 비슷한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유튜브 알고리즘 특성상 혐오 콘텐츠가 더욱 잘 번진다”며 “지금 유튜브가 일반 매체에는 나갈 수 없는 혐오표현 등이 유통되는 창구가 돼버렸다. 혐오 콘텐츠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최 교수는 혐오 콘텐츠가 게시되면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빠른 시간 안에 삭제하도록 하는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에서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차별과 혐오가 명백한 콘텐츠가 올라오면 해당 기업이 이를 24시간 안에 삭제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125만유로(약 16억5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지난 9일 하원 의회를 통과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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