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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성 공포심 노린 유튜브 마케팅…신림동 피에로 도둑 영상은 ‘자작’

등록 2019-07-25 10:53수정 2019-07-26 10:59

서울 관악경찰서, 25일 새벽 게시자 검거
택배 대리수령 회사 광고하려 ‘공포 마케팅’
누리꾼들 “범죄를 광고로 소비하냐” 비난 쏟아져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갈무리
피에로 가면을 쓴 채 원룸에 침입하려고 시도하는 듯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해당 영상은 실제가 아니라 남성이 운영하는 택배 대리수령 회사를 광고하기 위해 만든 조작 영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유튜브에 ‘신림동, 소름 돋는 사이코패스 도둑 시시티브이(CCTV) 실제상황’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린 최아무개(34)씨를 25일 0시15분께 최씨가 거주하는 원룸에서 검거했다고 이날 밝혔다.

영상은 23일 유튜브에 올라왔다. 지난 5월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CCTV 영상’ 사건으로 범죄에 취약한 1인 여성 가구의 두려움이 커진 가운데 해당 영상은 순식간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퍼졌다. 1분29초 분량의 영상을 보면, 피에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성이 원룸 복도로 보이는 곳에서 출입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집어 들고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누르다가 택배를 들고 자리를 뜬다. 영상은 남성이 사라지고 10여초 뒤 집 안에 있던 누군가가 문을 살짝 열고 바깥 상황을 살피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피의자 조아무개씨의 범행 당시 모습. 조씨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영상 갈무리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피의자 조아무개씨의 범행 당시 모습. 조씨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영상 갈무리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영상은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뉴스를 통해 영상 속 건물이 자신이 관리하는 건물임을 알아본 관악구 신림동의 원룸 관리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시시티브이 등을 확인해 이 원룸 거주자 가운데 한 명인 최씨를 찾아냈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실제 도난 피해는 없었다. 내가 운영하는 택배 대리수령 회사 광고 영상을 만들어 올린 것”이라며 “뉴스로 논란이 된 것을 알고 해명 영상을 올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에 대해 어떤 법률을 적용해 처벌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날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유튜브에 사과문을 올렸다. 자신을 1인 스타트업을 하는 청년이라고 소개한 최씨는 “최근 신림동에서 주거침입 영상이 충격파를 던져준 것을 기억하고 시시티브이 구도로 영상을 촬영했다”며 “영상만 봐도 섬뜩한 공포로 느껴졌을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최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피에로 가면을 쓴 남성과 집 안에 있던 남성 모두 최씨이며 최씨는 혼자 촬영한 두 개의 영상을 하나로 합쳐서 유튜브에 올렸다. 최씨는 이를 “공포를 극대화하는 극적 장치였다”고 설명했다.

누리꾼들은 조작된 영상을 실제인 것처럼 올린 것도 문제지만, 여성 대상 범죄를 가볍게 여기고 이를 광고에 이용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범죄를 광고로 소비한다? 공감 능력이 얼마나 부족하면 저런 생각을 하나”(@sewo****), “실제로 여성들이 매일 겪는 공포를 이용해서 마케팅을 하다니, 어쭙잖은 노이즈 마케팅은 브랜드 자살행위”(@Sallysay****)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다음은 최씨의 사과문 전문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이코패스 삐에로 택배 도둑’입니다. 불미스러운 일을 접한 모든 네티즌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리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경위를 설명 드리려 합니다.

공중파 3사의 메인 뉴스를 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불쾌함과 섬뜩함을 동시에 느끼셨을 많은 분들에게 먼저 정중히 사죄드립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모든 것이 저의 잘못입니다.

25일 0시 강력계 형사님 세 분이 오셔서 임의동행으로 관악경찰서 강력계에 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참고인 조사를 마친 후 사건 경위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옳을 것 같아 정리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 22일 새벽 3:30~4:00 사이 인적이 드문 틈을 타 삐에로 가면을 쓴 택배 도둑인 것처럼 영상을 촬영하고 23일 유튜브에 업로드 했습니다. 삐에로 와 슈렉 가면을 구입했는데 삐에로가 더 무섭고 네이밍 하기에도 좋아보여서 삐에로 가면을 쓴 영상을 업로드 했습니다.

제 방 문 앞에 있는 박스를 훔쳐가는 것처럼 촬영하고, 뒷부분에는 방 안에 사람이 있는 척 방문을 열었습니다. 혼자 촬영했고 두 개의 영상을 더한 것입니다. 공포를 극대화하는 극적 장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멍청하고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어떻게 하면 사이코패스처럼 보일까 고민했습니다. 진심으로 바보 같았습니다. 다신 이런 생각도 못하게 꾸짖고 혼내주십시오.

멍청함, 짧은 생각이 변명이 될 수 없음을 압니다. 어떤 책임이든 지겠습니다. 놀랐을 네티즌들의 마음을 짧은 사과문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영상만 봐도 섬뜩한 공포로 느껴졌을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거듭하여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저는 1인 스타트업을 하는 청년입니다. 새로운 검색을 만들어보겠다고 구글, 네이버에 덤볐다가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시작한 가난한 스타트업입니다.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짜리 미니원룸에 살고 있습니다. 재창업자금을 지원받으려면 경찰, 검찰에서 각각 신원조회를 받는 데만 4개월이 걸릴 만큼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효과적인 홍보가 필요했고 곧장 유튜브 컨텐츠를 떠올렸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이때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택배 배송지 공유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혼자 사는 여성들이 택배 받는 게 두려워 ‘곽두팔’이라는 센 남성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오죽하면 여성들이 남자 이름으로 택배를 받는지 안타까웠습니다. 저도 1인 가구여서 부재중에 택배 받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불안감과 1인가구의 부재중 택배 수령을 배송지 공유로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가게에 택배를 보내고 찾아갈 때 1천 원 정도를 주면 택배 기사, 택배 고객, 자영업자 모두가 좋겠다고 생각해서 신림동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최근 신림동에서 주거 침입 영상이 충격파를 던져준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CCTV 구도로 택배를 훔쳐가는 영상 촬영을 했고, 오늘은 비소식이 있어 검은 레인코트 입은 삐에로를 지인의 자동차 블랙박스를 이용해서 촬영할 계획이었습니다. 무서운 영상으로 “이런 무서운 택배 도둑은 없어야 한다!”는 식의 영상 컨텐츠를 제작하려고 했습니다.

저의 멍청함으로 더 큰 파장을 멈추게 해준 많은 네티즌 분들께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루 만에 여기서 멈추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채찍질로 혼내주시고, 혼내주신 후에는 왜 이런 영상을 만들게 됐는지 약 발라주듯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여성이나 1인 가구는 배송 속도보다 ‘제3의 배송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곽두팔이라는 센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여성 안심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루 동안 유튜브 동영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저의 잘못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많은 분들을 불편하게 해드렸습니다. 많이 놀라셨을 네티즌 분들과 저 하나 때문에 밤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신 강력계 형사님들과 관악경찰서 관계자 분들, 놀라셨을 신림동 주민 분들께도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전합니다.

허락 없이 건물에서 이상한 촬영했다는 것을 안 집주인께서 계약기간과 상관 없이 바로 집을 비워달라는 연락을 하셨는데 저로 인해 화가 나신 많은 분들에게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바로 삭제하는 것보다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을 알린 후 추후 삭제하도록 하겠으며 사과문도 동시에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섭고 섬뜩한 혹은 이상하고 멍청하게 보이는 영상으로 많은 분들에게 분노, 불쾌함을 드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경찰 수사 후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처벌을 달게 받고 반성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진심을 다해 죄송한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무지한 행동을 더욱 꾸짖어주시고 모든 분들께 깊이 사죄드린다는 말로 갈음하겠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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