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베트남 박닌 시내 ‘한국인 거리’
익숙한 한글 간판 단 가라오케, 마사지업소들
“여기선 한국 사람들만 하죠” 한국말로 흥정
“형님, 풍선 부실거죠?” 불법 마약 해피벌룬도
관광지 아닌 ‘대공장 가라오케촌’ 성업중
차를 타고 온 베트남 여성이 가라오케로 들어서고 있다. 박닌/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그래서 어디로 갈 거야?”
“○○?”
“거기는 비싼데 애들이 ×같아. 지난주에 갔었어.”
지난 5월17일, 밤 9시. 익숙한 한국말이 들려오는 이곳은 박닌,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북동쪽으로 40여㎞ 떨어져 있는 기업도시다. 2000년대 후반, 삼성의 대규모 투자를 기점으로 현재는 16개 공업단지가 들어선 베트남 경제의 핵심 거점이다. 박닌은 ‘리틀 코리아’로 불린다. 박닌 중심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한국인은 “박닌 시내에 한국 식당만 100개가 넘는다. 여기는 한국화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한국이다. 모든 게 한국식”이라고 말했다.
박닌 중심가에 1.5㎞쯤 이어져 있는 이른바 ‘한국인 거리’에는 한국식 인테리어에, 한국 지명을 따 이름을 지은 한국 식당 40~50곳이 늘어서 있다. 거기선 한국 남자들만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제주도 흑돼지와 광주식 한상차림을 즐기는 익숙한 차림의 한국 직장인들이다. 식당들 사이로 한국적 ‘감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간판들이 불야성을 이룬다. 저녁 8시가 넘어서면 ‘가라오케’와 ‘노래방’ 글씨가 선명한 한글 간판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온다.
그 밤거리를 취한 한국 남성들과 베트남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풀 메이크업’을 한 현지 여성들이 배회했다. 삼삼오오 모여드는 여성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베트남 남성들이 한 가라오케 앞에서 대기하던 여성들을 오토바이에 태워 날랐다. 한번에 서너명이 이동해야 할 때는 차량이 동원됐다. 그 가라오케 앞에선 한국 남자들이 한국말로 흥정하고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한국 기업이 만든 경제도시 ‘리틀 코리아’ 박닌에는 ‘밥-유흥주점-2차 성매매’로 이어지는 한국 유흥가 풍경이 그대로 이식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타이(태국)와 필리핀 등 관광지에서 성행했던 한국식 성매매 문화가 베트남의 대공장 지대에서도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르포] 베트남 박린 공장 인근 ‘한국식 성매매’ 실태 “여기선 한국 사람들만 하죠”
한글 간판을 단 한 가라오케에 들어가 ‘누가 여기에 오느냐’고 물었다. 짧은 원피스 차림으로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보던 베트남 여성은 “한국 사람만 받아요, 왜요?”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오빠 접대?” 꼭 필요한 단어만 또렷하게 끊어 발음했다. 대화가 길어지자 그는 한국인 사장과 전화를 연결해줬다. 그에게도 누가 여기에 오느냐고 물었다. 한국 사장은 “그런 걸 뭐…. 가슴에 써 붙이고 오는 건 아니지만 거의 삼성 직원이나 하청업체 직원들이죠. 우리 가게는 골목 안쪽이라 차에서 내리기 좋고 접대하기 좋아서 한국 사람들 많이 와요.” 베트남 사람도 오는지 물었다. “아니, 베트남 사람은 안 받죠. 그럼 누가 좋아하나요. 여기선 한국 사람들만 하죠. 다 잘 놉니다”라고 말했다.
이곳 박닌 ‘한국인 거리’에만 한글 간판을 단 가라오케 20여곳이 성업 중이다. 한글 간판 마사지 가게도 20곳 정도 된다. 이런 유흥시설이 밀집한 박닌 시내는 박닌 공단에서 차로 15분 남짓 거리다. 박닌 시내에는 한국 기준의 임금에 체류비까지 지원받는 주재원과 한국 직원들이 산다. 박닌 공단 주변에는 현지 임금 기준으로 월급을 받는 베트남 생산직 직원들이 모여 산다. 박닌 시내 풍경은 베트남이라기보다는 흡사 분당이나 판교의 어느 거리가 떠오를 정도다. 하노이에서도 흔히 보기 어려운 세련미였는데, 그 공간의 질감을 만든 건 다름 아닌 호텔들이었다. 박닌 시내를 관통하는 대로 한쪽으론 한국 새도시 유흥가들이 그렇듯 모텔 같은 호텔들이 늘어서 있다. 한 호텔 직원은 “주로 한국에서 출장 온 직원들이 묵는다”고 했다. 그런 호텔들에는 예외 없이 ‘마사지’ 간판이 달려 있었다.
박닌 한국인 거리 네온사인 간판. 상호는 모자이크 처리. 박닌/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형님, 재밌으려면 풍선 부셔야죠”
박닌 시내에서도 한국 남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가던 한 가라오케에 들어가 손님인 척 가격 흥정을 해봤다. 강남의 댄스 클럽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건장한 한국 청년이 말을 받았다. “형님, 첫날이세요? 원하시면 숙소까지 다 있습니다. 일단 메뉴판 갖고 올게요.” 그는 일행이 몇 명이냐고 묻곤 ‘소주 세트, 맥주 세트’가 있다고 설명했다. 룸 하나당 기본 메뉴는 180만동(우리 돈 약 9만2천원)부터였다. “아가씨 피(요금)는 50만동(약 2만5천원). 풍선(해피벌룬) 부실 거죠?” 풍선을 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그는 ‘정말 숙맥이냐’는 투로 “형님, 여기선 재밌으려면 풍선 불어야죠. 여기 메뉴 보시면 30만동(약 1만5천원)이에요. 알아서 다 세팅해드립니다. 2차는 숏타임은 150만동이고요. 롱타임은 시간제한 없고요”라고 말했다.
길 하나 건너 마사지 가게의 설명은 더 적나라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베트남 여성이 “오빠 혼자? 1코스, 2코스. 어떤 거로?”라며 역시 또박또박 단어로만 물었다. 코스가 어떻게 다른 것이냐고 묻자. 그는 성매매를 가리키는 표현을 쓰며 세부 코스 내용이 한글로 적힌 메뉴판을 내밀었다.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달랐는데, 한국 돈으로 3만원에서 5만원 안팎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복수의 가라오케, 마사지 업체 직원들은 “한국 남자들이 베트남 남자 받는 걸 싫어해 받지 않는다. 여기선 한국 남자만 (성매매를)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구글 등 포털사이트에서 ‘박닌, 가라오케’ 등을 검색하면 박닌에서 성매매를 했다는 인증 글과 이른바 ‘물 좋은 업소’를 안내하는 성매매 호객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해피벌룬’은 불법 마약
‘해피벌룬’은 룸 형태의 가라오케뿐만 아니라 바 형태로 운영되는 개방된 술집에서도 팔고 있었다. 흡입 장면도 쉽게 눈에 띄었다. 해피벌룬은 아산화질소(N₂O)를 충전한 풍선으로, 들이마시면 마취와 환각 효과가 느껴지는 일종의 마약이다. 베트남 사정에 밝은 한 대기업 주재원은 “베트남 여성들은 문화적 차이인지 일반적으로 술을 거의 먹지 않는다. 풍선은 술이 약한 베트남 여성과 빨리 놀기 위해서 부는 것”이라며 “여기 한국 업소들은 거의 단속이 없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약 흡입은 국외에서 했더라도 엄연한 범죄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및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경찰 관계자는 “국외에서 해피벌룬을 흡입했더라도 국내법으로 처벌한다. 해피벌룬도 모발이나 소변을 통해 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베트남처럼 경찰 주재원이 파견되어 있는 나라에선 “흡입 사실만 명확하면 국제 수사 협조 등을 통해 현지 경찰과 수사 공조해 추방 이후 국내에서 바로 검거 가능하다. 국외 체류자의 경우 기소 중지를 한 뒤 입국 이후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도 최근 하노이시를 중심으로 해피벌룬 불법화 조처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인 거리 유흥업소에서는 룸 형태의 가라오케뿐만 아니라 바 형태의 개방된 술집에서도 버젓이 ‘해피벌룬’을 흡입하고 있었다. 박닌/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기지촌에서 ‘대공장 가라오케촌’으로
한국인 거주자가 10만명에 이르지만 하노이는 여전히 ‘평양’에 빗대진다. 일찍부터 개혁개방(도이머이)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한 남부 호찌민에 비해 북부 하노이의 밤은 빨리 어두워지고, 금세 조용해진다. 한국 대기업 하노이 주재원으로 왔다가 현재는 개인사업을 하는 김아무개(33)씨는 “호찌민이 서울이라면 하노이는 평양이다. 하노이는 놀 데가 없어 심심하다. 근데 요새 뜨는 강남은 (하노이 근처의) 박닌이다. 좋은 데는 거기 다 있다”고 했다.
박닌 밤거리는 흥청망청하는 돈의 위력으로 넘실거렸다. 박닌은 베트남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성이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6천달러(약 709만원)로 베트남 평균보다 2.5배 높다. 원래는 전통과 경관이 잘 보존된 전형적인 베트남의 농촌 지역이었던 박닌은 삼성 등 한국 기업이 진출한 2000년대 이후 도시의 얼굴을 싹 바꿨다. 중국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과 싼 인건비에 주목한 한국 기업들은 박닌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박닌에 진출한 크고 작은 한국 기업은 모두 700여개에 이르고, 박닌 공단의 70%가 한국 공장이다. 베트남 직원들의 20배에 이르는 임금을 받는 한국 기업 주재원과 관리자급 한국 직원들은 박닌 거리에 돈을 뿌린다.
베트남 남성들이 대기하던 여성들을 수시로 오토바이에 태워 날랐다. 박닌/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베트남에서 만난 여성단체 활동가 팜티민항은 이를 ‘대공장 가라오케촌’이라고 규정했다. “유독 아시아에 진출한 한국과 일본 대공장 주변에 ‘가라오케촌’이 많다. 아시아 남성들이 돈의 힘으로 아시아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 전 베트남 총리도 박닌 지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개혁개방의 성과로 꼽으면서, 그렇지만 지역의 사회악은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한국 남성들은 가난한 나라에선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긴다”고 비판했다.
미군에 의한 아시아 성 착취를 상징하던 국제적 용어 가운데 ‘기지촌’이란 말이 있었다. 우리가 피해자였던 아픈 역사다. 권력의 위계에 기반해 성을 착취했던 가해국 남성들이 뻔뻔한 태도를 보일 때면 온 국민이 분노했다. 하지만 어느새 한국은 한국식 성매매 문화를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에 이식하는 나라가 됐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국 주재원 등은 자신들을 “아시아에서 일하는 외로운 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르며 성매매와 접대를 정당화했다. 성을 사는 행위에 대해선“그들(베트남 여성들)도 어차피 외화벌이하려는 것 아니냐”며 관행인 듯 말했다. 오늘도 박닌 한국 공장에 불이 꺼지면 가라오케에 불이 켜진다. 해피벌룬이 뜬다.
박닌/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한겨레 라이브] 베트남 삼성 공장 인근에서 번지는 ‘한국식 성매매‘ 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