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노동자들 폭염 무방비
한여름 활주로 50도 웃돌아도
수하물 운송 등 지상조업자들
뙤약볕 피할 곳 마땅히 없어
일하다 쓰러지거나 퇴사 속출
인천국제공항 지상조업 노동자가 활주로에 주차된 차량 아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여름휴가 극성수기인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한 이는 모두 33만1231명이다. 하루 평균 11만명이 외국으로 떠났다. 이들이 타고 떠나는 비행기 아래 활주로에서, 뙤약볕과 엔진 열기에 시달리며 비지땀을 흘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공항에선 지상조업 노동자라고 부른다. 지상조업 노동자는 비행기 이·착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4~5명이 한 조가 되어 ‘비행기 주차장’인 주기장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한다. 비행기를 고정하고 수하물·화물을 내리고 다음 물건을 싣는다. 비행기가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활주로로 견인하는 일도 맡는다. 이렇게 비행기 1대를 지원하는데 비행기 크기에 따라 최소 45분에서 최대 2시간이 소요된다.
여름의 활주로와 계류장은 지열과 비행기 엔진 열기로 체감 온도가 “50도 이상”에 이른다. 활주로에는 마땅히 볕을 피할 곳이 없다. 지상조업 노동자들이 작업 중간 틈틈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그늘은 비행기 날개 밑과 운송 차량 밑이다. 인천공항 1터미널 계류장에서 일하는 김진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샤프항공지부장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라도 여기보다 나을 것 같다”며 “쉴 곳은 비행기 날개 그늘뿐”이라고 털어놨다. 김 지부장은 “수화물을 내릴 때면 비행기 안에 들어가 그늘에서 일하는 것 같지만,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기종이 많다”며 “그럴 땐 한증막에서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지상조업 노동자가 비행기 날개 밑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인천국제공항 지상조업 노동자가 비행기 날개 밑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인천국제공항 지상조업 노동자가 비행기 날개 밑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한여름 무더위에 적절한 쉼터를 확보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항공운수전략조직사업단이 지난 6월 인천공항 노동자 113명을 대상으로 여름철 근무 때 가장 힘든 점에 대해 설문한 결과, 응답자(복수 응답)의 45.1%(51명)가 ‘휴게 공간 없음’, 37.1%(42명)가 ‘폭염 무방비’를 꼽았다.
지난해 인천공항에서 일하던 지상조업 노동자 4명은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기도 했다. 올해는 아직 그런 일이 없지만,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김 지부장은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우리 업체 소속 지상조업 노동자가 약 300명인데, 지난달에만 10명 이상이 퇴사했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인천공항공사 쪽은 최근 “이동형 휴게시설 11대를 도입,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버스나 캠핑카 등에 마련한 휴게시설이다. 하지만 이 시설은 인천공항공사가 마련한 게 아니다. 대한항공과 진에어 등 항공사나 한국공항 등 지상조업 하청업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인천공항 안전협의체 2차 회의’ 자료에 나온 ‘휴게시설 개선 운영계획’에도 항공사나 지상조업 하청업체의 개선 방안이 있을 뿐, 인천공항공사 자체 계획은 없다. 이 때문에 같은 지상조업 노동자라도 소속 업체가 어디냐에 따라 휴게 조건에도 격차가 발생한다. 김 지부장은 “이런 휴게실들은 각 회사에 소속된 노동자만 이용할 수 있는데, 영세한 업체는 휴게실을 운영할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지상조업 노동자인 이경호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국장은 “휴게 공간에 노동자들 누구나 들어가서 쉴 수 있게 하려면 개별 업체가 아니라 인천공항공사가 1차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지상조업 노동자가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지상조업 노동자뿐만 아니다. 인천공항에는 보안초소가 11곳 있다. 인천공항 특수경비대(특경대)는 초소에서 관재시설 관계자와 기내식 차량, 지상조업 노동자 등이 출입할 때 보안 검색과 경비 업무를 담당한다. 여름 성수기가 되면 운항하는 비행기 대수가 늘어나고, 그에 맞춰 오가는 기내식 차량 수도 늘어난다. 하지만 초소에는 외벽에 뜨거운 바람을 내보내는 선풍기 한 대만 달랑 달려있을 뿐이다. 지난 2일 인천공항에서 만난 특경대원 ㄱ씨는 “검색 거울로 차량 하부를 살피고, 기내식 차량처럼 큰 탑차의 경우에는 차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차량 내부 선반까지 모두 살펴야 한다”며 “외부에서 차량 검색 등으로 잠시만 일하다 보면 속옷까지 전부 땀으로 젖는다”고 말했다. 권오성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특경대 지회장은 “특히 비행기가 유턴하는 곳 바로 옆 초소에는 비행기 후폭풍과 매연, 먼지에 그대로 노출되는 등 노동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며 “인천공항공사 쪽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요지부동”이라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ㄴ씨가 일하는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장기주차장 P3 구역. 이주빈 기자
인천공항 장기주차장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도 더위에 시달린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장기주차장 구역 P1~P4와 택시주차장 구역에는 모두 1만5000대가량의 차를 주차할 수 있다. 여름휴가 시즌이면 주차면이 대부분 가득 차지만, 이곳을 겨우 청소노동자 6명이 나눠서 청소한다. 지난 2일 선크림과 땀이 섞여 하얗게 변한 땀을 줄줄 흘리며 인천공항 장기주차장 P3 구역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ㄴ씨는 아이스 조끼가 절실하다고 했다. “쏟아지는 햇볕에 눈이 너무 아픈데도 ‘건방지다’는 말을 들을까 봐 선글라스도 못 쓰고 있어요. 업체에서 더위를 막으라고 토시를 줬는데, 비가 오니 염료가 흘러나와 팔에 물드는 바람에 자비로 다른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한 언론에서 인천공항 주차장에 쓰레기가 많다고 보도하면서, 쓰레기통 수가 이전보다 5배 이상 늘어났어요. 인천공항공사가 언론을 신경 쓰는 만큼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상조업 노동자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항공사와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휴게 공간도 항공사에서 마련해야 한다”며 “저희는 보조적인 수단만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