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영 기자
27일 오전 경찰청 브리핑룸에 허준영 경찰청장이 들어섰다. 그는 농민 전용철·홍덕표씨 사망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은 통감한다”면서도 “물러나야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4·19는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군의 주검이 도화선이 됐다.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을 때는 바로 다음날 내무부 장관이 옷을 벗었다.
그런데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의 농민이 숨진 이 사건에 대해, 허 경찰청장은 애초 “경찰의 직접적인 가격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책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는 분위기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고 책임질 것처럼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그 책임진다는 것이 ‘부하 목 자르기’로 드러났다.
허 청장은 이날 발표에서 “평화적 시위 문화”를 수차례 언급했다.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시위대가 과격한 게 사건의 발단’이라는 논리로 가리려는 듯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민에게 사과한 뒤 허 청장 문책과 관련해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문맥이었다. 이에 대해 허 청장은 “내 직분을 열심히 하면 임기제 청장으로서 대통령에 대한 국가공무원의 충성이고 국민에 대한 충성”이라고 딴청을 부렸다. “대통령 위에 경찰청장”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
최근 근속승진 범위를 경위로까지 확대한 경찰공무원법은 다른 기관 공무원들과의 형평성을 도외시한 조직이기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국회에서 열린 수사권 조정 관련 공청회에 경찰관 1천여명이 무더기로 몰려가 세를 과시한 일도 있었다. 총수가 이러니 조직이 온전하겠는가?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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