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이씨(KEEC) 구미공장. 한겨레 자료사진
채용 때 여성 노동자에게 가장 낮은 직급을 부여하고, 승격 기회도 제한해 임금을 적게 준 반도체 부품업체 케이이씨(KEC)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차별을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지난 2월 전국금속노동조합 케이이씨(KEC)지회가 인권위에 낸 진정을 바탕으로 한 결과다.
인권위는 케이이씨 구미공장의 생산직군 내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들에 견줘 △평균 등급 △승격까지 걸리는 시간 △임금 부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인권위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케이이씨의 직원은 기술직, 생산직, 영업직, 업무직 등 4개 직군으로 나뉘는데 생산직 노동자 353명 가운데 남성은 202명, 여성은 151명이다. 케이이씨는 노동자들의 등급을 ‘J1, J2, J3, S4, S5, 연봉대상자(M, L1, L2)’로 나누고, 매년 1월1일 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승격 시험을 진행한다. 그런데 여성 151명은 모두 하위 단계인 J등급에 속해 있고, 남성은 202명 가운데 20명(9.9%)만 J등급일 뿐 90.1%에 달하는 182명이 관리자급인 S등급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년 이상 재직자 가운데 가장 낮은 J1 등급으로 입사한 생산직군 근로자 108명 가운데 남성 56명은 모두 S등급 이상으로 승격했지만, 여성 52명은 모두 J등급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이후에는 J1 등급으로 채용된 남성 노동자가 아예 없었다.
승격까지 걸리는 기간도 남녀 간 차이를 보였다. 2010년 이후 신규 채용된 181명의 전체 노동자 가운데 제조 직렬에서 근무하는 남녀 노동자의 승격현황을 보면, 평균 승격 소요기간 또한 남성 노동자는 3.95년, 여성 노동자는 7.12년으로 3년 이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보다 임금도 적게 받았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단체협약에 따라 산정된 2018년도 임금 기준에 따르면, J등급의 등급별 1호봉 기본급은 J1 등급 70만5430원이고, S4 등급의 1호봉 기본급은 88만2500원”이라며 “기본급은 각종 수당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생산직군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별 등급”이라고 밝혔다. 케이이씨에서 생산직군으로 31년 동안 근무 중인 여성 노동자 ㄱ씨는 인권위 조사에서 “‘창고에서 물건을 올리고 내리는 단순 업무를 하는 남성 근로자가 승급됐는데 왜 나는 안 되냐’고 항의했더니 회사가 ‘남자 사원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고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 이해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케이이씨는 인권위 조사에서 이에 대해 “생산직의 제조 업무 중 현미경 검사 등 세밀한 주의를 요하는 업무에는 과거부터 여성 근로자를 많이 채용했는데, 숙련도가 필요하지 않은 단순 반복 작업이므로 가장 낮은 J1 등급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케이이씨는 채용 때 공업고등학교 출신의 남성 노동자의 경우 경정비 능력을 갖추었다고 간주하고 여성 노동자들과는 달리 최초 등급으로 J2 등급을 부여하기도 했다. 케이이씨는 이에 대해 “경정비 업무는 설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며, 설비 부품을 자주 운반해야 하는데 무겁기 때문에 여성 근로자들이 하기 어렵다”며 “관리자의 경우 전체 공정의 이해와 함께 설비에 대한 기본지식이나 경험이 있어야 하므로 S등급 이상으로 승격하려면 경정비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경정비 능력이 남성 근로자보다 여성 근로자들의 승격에서 현저한 차이를 정당화할 정도로 특정한 직무이거나 여성 근로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전문 기술과 노력을 요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케이이씨가 여성 근로자는 ‘숙련도가 필요하지 않은 단순반복 작업에 적합’하거나 ‘위험하고 무거운 부품을 관리하는 업무는 담당하기 어렵다’는 성별 고정관념 및 선입견에 기인해 여성 근로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아울러 “케이이씨의 임금 체계는 등급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최초 등급 부여 때부터 차별을 받은 생산직 여성 근로자들은 근무하는 기간 내내 남성 근로자보다 임금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아왔음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인권위는 케이이씨 대표이사에게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 계획을 수립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진정을 제기한 케이이씨 노조는 이날 입장문을 내어 “인권위가 케이이씨의 오래된 남녀차별에 대해 이제라도 인정한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그러면서도 “금속노조 케이이씨지회는 수년간 이 문제를 바로 잡을 것을 회사에 요구해 왔으나 전혀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인권위 결정을 케이이씨가 이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은 그 자체로 불법이므로 형사처벌을 요구하는 한편 성차별에 따른 임금 차별로 당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임금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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