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 개혁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8일 모처럼 의미 있는 말을 했다.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는 얘기가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취임 뒤 첫 당정협의에서 검찰개혁을 강조하면서다.
맞는 말이다. 멀리 서양사를 훑을 필요도 없다. ‘역성혁명’의 이름으로 수많은 왕조가 명멸한 중국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한 기사를 보면, 중국에는 한나라 이후 크고 작은 왕조가 모두 60개나 세워졌는데, 개별 왕조의 평균 존속 기간이 64.77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중국 왕조의 평균 수명은 얼마일까, <오마이뉴스>) 대부분 왕조가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했다가 또 다른 혁명으로 무너졌다.
반면 개혁은 거개가 실패했다. 전 중국 역사를 통틀어 성공한 개혁으로는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에 딱 두 차례, 진(秦)나라 효공 때 상앙의 ‘변법개혁’과 조(趙)나라 무령왕의 ‘호복(胡服) 개혁’을 꼽는 역사가들이 많다. 흔히 진나라를 부국으로 만들어 훗날 천하 통일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변법개혁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남문에다 믿음을 세우니 법령이 시행되었다.” (차이위치우,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개혁 주체와 개혁 의지에 대한 신뢰가 성패를 갈랐다는 말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상군(상앙)열전’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법령은 이미 갖추어졌으나 백성이 새 법령을 믿지 않을까 염려하여 아직 널리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세 길이나 되는 나무를 도성 저잣거리의 남쪽 문에 세우고 백성을 불러 모아 말하길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놓는 자에게는 십금(十金)을 주겠다’ 했다. 그러나 백성은 이것을 이상히 여겨 아무도 옮기지 않았다. 다시 말하길 ‘이것을 옮기는 자에겐 오십금을 주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옮겨놓자 즉시 그에게 오십금을 주어, 나라에서 백성을 속이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고 나서 새 법령을 널리 알렸다.” (김원중 역, <사기열전>)
상앙은 누구보다 솔선해야 할 태자가 법을 어기자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며 처벌하려 했다. 그러나 차세대 군주에게 직접 칼을 대기는 난망한 일인지라, 결국 태자의 스승과 비서에게 혹독한 벌을 내렸다. 그것이 즉효를 발했다. “그 다음 날부터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 새로운 법령을 지켰다.” 개혁 추진에 필요한 동력은 국민의 신뢰에 기반을 둔 도덕적 권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 기록은 보여준다. 생살여탈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전제군주 시대에조차 요란한 구호와 강압으로 성공한 개혁은 없었다.
고전여행은 이쯤에서 접고, 현실을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며 “저를 보좌하여 저와 함께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매진했고, 성과를 보여준 조국 장관에게 그 마무리를 맡기고자 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 장관은 취임 당일인 지난 9일부터 거의 매일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지시’라는 것을 쏟아내고 있다.
굵직한 것만 추려도 검찰 직접수사(특별수사) 축소, 검찰 조직문화와 교육·승진 문화 제도 개선, 형사사건 공개 금지 훈령 제정 추진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8일 국회 당정협의에선 법무부 검찰국장·기획조정실장 자리에 검사 배제, 법무부 장관의 검사 인사권 실질화, 법무부의 검찰청 직접 감사 강화 등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검찰개혁은 지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조국에게 검찰개혁을 이끌어 갈 도덕적 권위가 남아 있을까. 이 의문은 ‘조국이 아니면 검찰개혁이 어렵다’는 식으로 그를 두둔·옹호하는 여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조로남불’이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된 조 장관의 ‘언행 불일치’는 이미 충분히 알려졌다. 그간 다양한 소셜미디어, 기고문, 저서, 논문, 강연 등에서 내놓은 조국의 ‘정의’와 ‘공정’은, 놀라울 만큼 그의 삶과 괴리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2일 기자 간담회,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 발언이 하나둘 검찰 수사에서 뒤집히고 있다. “전혀 알지 못했다”, “저와 제 가족은 관계가 없다”고 했던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의 설립부터 투자, 운용까지 아내 정경심 교수가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딸이 고려대 입시 때 제출하지 않았다”던 단국대 제1저자 의학논문은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또다시 “나는 몰랐다”를 탈출구로 삼을까. 말을 믿을 수 없으면 신뢰도 없다.
도덕적 권위만이 전부가 아니다. 검찰의 정식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장관에, 그것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사례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비상식적 상황이다. 수사를 받기 전에, 또는 의혹만으로도 그만뒀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과거 공직을 수사 방패막이로 삼는 고위직을 향해 누구보다 날 선 비판을 가했던 사람이다. “도대체 조윤선은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는 것인가. 우병우도 민정수석 자리에서 내려와 수사를 받았다”(2017년 1월11일)는 그의 트윗은 상식인의 관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여기서도 문제는 언행 불일치다.
“과거의 다른 후보자들이라면 그중 한 가지 정도의 의혹만으로도 사퇴했을 겁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변호사 개업 후 수임료가 과다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퇴했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교회에서 장로 신분으로 강연한 내용이 국민감정을 자극했다는 이유로 사퇴했고요. 박희태 법무부 장관은 딸의 편법입학 의혹만으로 장관직을 내려놓았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조 후보자가 민정수석 시절 인사검증을 담당해 장관 후보자가 되었다 사퇴한 분들 가운데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조 후보자보다 더 무거운 의혹을 받았던 분들은 없습니다. 아니, 그분들에게 쏠렸던 의혹들을 모두 합해도 조 후보자 혼자 야기한 의혹보다는 가벼울 것 같습니다.” (조 장관의 서울법대 동기(82학번)인 임무영 서울고검 검사가 검찰 게시판에 올린 글)
조 장관에게 개혁을 추진할 권위나 동력이 희박하다는 사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입증된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5~6명은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20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조국씨가 법무부 장관으로 적절한 인물이라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부적절’ 의견이 54%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50%대를 넘어 53%를 기록했는데, 부정 평가자들이 꼽은 1번 사유가 조 장관 ‘인사문제’(29%)다.
지난 17일 공개된 MBC-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조 장관 임명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응답자의 57.1%나 됐다. 14일 SBS-칸타코리아 여론조사에서는 조 장관 임명 반대 의견이 53.0%로 나타났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의혹이 해소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0.1%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향후 검찰개혁 전망을 묻는 질문에서는 “조국 장관이 검찰개혁 적임자여서 잘 될 것”이라는 응답이 18.9%에 그친 반면, “가족 기소 등 조국 장관에게 흠결이 많아 잘 안 될 것”이라는 의견(35.9%)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기에 야당 반발로 잘 안 될 것이라는 응답자 비율 19.9%를 보태면 부정적 전망을 가진 이가 55.8%에 달했다. 조 장관을 검찰개혁의 적격자로 보지 않는 여론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며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에 성과를 보여줬다”고 했다. 그를 ‘법무부 장관 적임자’로 꼽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는 의문이다.
조 장관은 검찰개혁의 요체로 엉뚱한 곳을 짚었다. 막강한 검찰 권력의 힘을 뺄 ‘삼손의 머리카락’이 무엇인지를 놓고,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을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선택했다. (지금 국회에 가 있는 이른바 검찰개혁 법안은 이를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검찰의 직접수사 권한은 건드리지 않았다. 적폐수사라는 ‘현실적 필요’를 이유로 들면서다.
조국과 달리 법조계와 법학계에선 검찰 직접수사의 폐지 혹은 대폭축소를 검찰의 ‘급소’로 꼽았다. 막강한 검찰 권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보다 전직 특수부 검사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를 검찰 권력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했다. 특수통 출신 검찰 수장이 스스로 폐단을 인정하고 그 ‘권력’을 내려놓겠다고도 했다. 전임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3월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저희 검찰이 의문을 받는 부분은 주로 특별수사, 인지수사라고 생각합니다. (…) 상당히 축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없을 기회였다.
● “자기가 찾아냈든, 하명을 받았든. 최초에 범죄 단서를 인지한 검사가 수사를 개시하고, 조사도 직접 하고, 공소장도 자기가 쓰고, 나중에 재판까지 들어간다. 이 ‘일관 공정’이 문제다. 특히 기소권을 가진 검사가 심문까지 직접 한다는 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다른 눈을 가지고 제동을 걸거나 ‘검수’하는 절차가 없다. 이러면 통제가 안 된다. 지금까지 검찰사에서 문제를 일으킨 수사는 99% 직접수사였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거나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검찰이 개혁된다.” (한 전직 검찰총장)
● “검찰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면 직접 수사권을 제한해야 한다. 검찰이 가진 실질적 권력은 직접수사와 인지수사에서 발휘된다.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거의 그대로 둔 채 수사지휘권과 수사종결권을 일부 제한하는 것은 칼을 뺏어야 하는데 칼집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검찰총장은 검찰의 직접수사를 최소한으로 제한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사권 조정 법안의 문제점과 수사구조 개혁의 방향’, 2019년 7월9일 대한변협 주최 심포지엄 발표문)
그러나 ‘조국 민정수석’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알려져 있다. 문 전 총장과 몇 차례 만남에서도 그는 “‘현실적 (수사) 수요’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중요 수사가 이어진 정권 초는 어쩔 수 없었다 해도 그 뒤 판단은 달랐어야 했다.
조 장관은 오히려 민정수석으로 있는 동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팽창을 용인했고, 특수통으로 널리 알려진 윤석열을 기어이 검찰총장으로 만들었다. 이어진 지난 7월 말 검찰 간부 인사에선 특수 전공인 ‘윤석열 사단’을 거의 모든 요직에 배치하며 전대미문의 ‘특수 전성시대’를 열어줬다. 직접수사의 축소가 아니라 정반대 편인 극대화 쪽으로 내달린 것이다.
이면에선 자신이 만든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하며 검찰 직접수사의 폐단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을 한직인 법무연수원 교수로 좌천시켰다. 청와대발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비판한 문 전 총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던 대검 간부 검사는 서울고검으로 날렸다.
그랬던 그가 180도 변신했다.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갑자기 검찰 특별수사부 대폭축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답변한 것이다. 장관 취임 뒤인 11일 내놓은 ‘2호 지시’에도 검찰 특수부 축소가 들어 있다. 그사이 바뀐 것이라곤 그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피의자로 입건됐다는 사실뿐이다. 이건 ‘법무부 장관 조국’의 정당한 지시일까, ‘피의자 조국’의 방어권 행사일까.
그의 지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검사의 인지수사를 직무권한으로 규정한 형사소송법이 살아 있는데, 그보다 하위인 대통령령이나 법무부 훈령를 고쳐 “불가역적이고 신속한 검찰개혁 완수”(법무부 당정협의 ‘회의자료’)가 가능할까. 바뀐 정권이 대통령령이나 훈령을 다시 고치면 그만이다. ‘검사의 수사’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 직접수사 권한의 근거를 없애려면 이 조항의 폐지나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장관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 장관이 모를 리 없다.
무엇보다 그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사이 ‘개혁의 골든타임’이라는 집권 초 2년 반이 흘러갔다. 오진의 결과다. 그것만으로도 조국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안타까운 건 권력기관 개혁은 정권 초기에 해야 하는데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조 장관은 (특수부 축소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했는데, 촛불 혁명으로 잡은 정권 초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과연 언제가 가능한 시점이겠나. 그게 아쉽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일보> 2019년 9월18일 인터뷰)
조 장관과 그 일가가 검찰 특수부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조 장관의 존재 자체가 검찰개혁을 지체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검찰을 겨냥한 그의 모든 언행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조 장관이 느닷없이 들고나온 ‘피의사실 공표 금지’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피의자 신분이다. 아내인 정경심 교수는 이미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또 다른 혐의에 대한 정 교수의 소환 조사도 임박했다. 여론에 부담을 느낀 여당은 지난 18일 당정협의 결과를 알리면서 특수부 축소는 언급하지도 못했다. 논란만 부른 피의사실 공표 금지 추진도 결국 ‘조국 수사’ 이후로 미뤘다.
지금의 문제는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정 교수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돼도 조 장관은 자리를 지킬까. 아내가 구속되면? 마침내 조 장관 자신이 검찰의 출석 요구를 받는 상황이 온다면? ‘현직’ 신분으로 조사받을 것인가? 기소되면 그 다음은? 문 대통령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그를 직위해제할까, 아니면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결정을 미룰까. 이 모든 불가측성이 검찰개혁 역시 유동적으로 만든다. 개혁 저항세력이 검찰 안에 있다면, 그들의 시간을 대신 벌어주고 있는 셈이다.
조 장관의 혐의가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어떤 검찰개혁도 그가 주도하면 검찰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온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이번 수사의 주체인 특수부 축소는 더욱 그렇다.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다고 끝이 아니다. 야당은 검찰이 면죄부 수사를 했다며 특검 카드를 들고나올 것이다. 그는 또다시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검찰개혁이 가능할까.
요즘 법조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 검찰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이 조국밖에 없나?”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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