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배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한 참가자들이 9월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대교 아래 한강에서 헤엄치고 있다. 유속이 빨라 상당수 참가자가 수영을 포기하고 부표에 매달리거나 구조를 요청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구조!”
9월29일 아침 7시50분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대교 인근에서 열리던 철인3종 표준거리(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 경기 참가자 수십 명이 동시에 손을 들어 구조를 요청했다. 강물 흐름과 수직이던 수영 코스는 전날 오후 강물 방향으로 변경됐다. 운영진은 입수 직전 “월드컵대교 인근에 유속이 빠르니 주의하고, 수영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손을 들어 구조를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경기를 포기하고 동시에 손을 드는 상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수십m 간격으로 한 대씩 드문드문 떠 있는 카약과 노 젓는 구조대로는 대응할 수 없었다.
‘방송 유명세’ 1300명 등록… 베테랑도 포기 속출
이 대회는 지난해 배우 성훈이 참가해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녹화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서울에서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매년 1천 명 넘게 참가했고, 올해도 1300명 가까이 선수로 등록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가한 대회는 경기 시작 10분 만에 공포영화가 됐다. 선수로 참가한 <한겨레21> 기자도 월드컵대교 아래 반환점을 돌고 앞으로 나가려 했으나 조금도 앞으로 갈 수 없었다.
수차례 팔을 저어도 월드컵대교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바닷물이 빠른 속도로 밀려 올라오는 ‘사리’ 때와 겹쳤던 당시,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은 어려웠다. 기자는 지난여름 한강을 건너는 수영대회를 완주했고, 철인3종 경기를 위해 2㎞를 30분대에 완주하도록 수영 연습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앞으로 나가는 사람은 없는데 뒤따르는 선수들이 밀려들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물길이 좁아져 물살이 셌던 월드컵대교 아래에는 좁은 공간에 수많은 선수가 적체돼 제자리 수영을 했다. 기자는 자유형을 포기하고 평영으로 자세를 바꿔 적체 구간만이라도 벗어나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앞으로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 계속 부딪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따르던 누군가가 기자의 다리를 잡았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몇 차례 물을 먹고, 몸을 뒤집어 생존수영으로 전환했다.
여기저기서 탄식과 구조를 요청하는 외침이 들렸다. 우선 인파에서 조금 멀어진 뒤 반환점으로 되돌아가 노란 부표를 향해 헤엄쳤다. 이미 경기를 포기한 여러 명이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친 숨을 가다듬고 몇 분 뒤 다가온 모터보트에 올라탔다. 보트에는 오르지 못한 선수들이 매달려 있었다. 유속이 빠르고 매달린 선수가 많아 보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몇몇 선수는 더 멀리까지 떠내려갔다가 구조돼 올라오는 게 보였다. 잠시 뒤 인근 선착장에 있던 작은 유람선이 왔고, 다른 선수들을 구해야 하니 옮겨 타라고 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먼저 구조된 선수들이 있었다. 몇 명은 탈진한 듯 보였고, 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9월29일 아침 7시52분 서울 마포구 철인3종 경기 대회 현장. 시합이 시작되고 12분 뒤의 사진을 보면 선두 그룹 선수 대부분이 가이드라인을 붙잡고 앞으로 나가고 있다. 독자 제공
사망자는 체대 출신 철인3종 유경험자
출발 지점에선 다른 참가자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주최 쪽은 “물살이 세 수영 경기가 취소됐고, 수영 경기를 시작했던 20∼40대 남성 표준거리 참가자 외에는 듀애슬론(사이클과 달리기)으로 바꿔 경기를 계속한다. 수영 경기를 중도 포기한 참가자들도 다음 경기를 계속하면 된다”고 했다. 완주를 목표로 1년 동안 준비한 대회여서 사이클과 달리기를 계속하면서도 기자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참가자 모두가 무사할까?’
대회에서 실종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건 이튿날 출근길에 “어제 대회에서 실종자가 발생했다던데 괜찮냐”는 인사를 받고서였다. 뉴스를 검색해 노아무개(35)씨가 대회에 참가한 뒤 실종됐고 오후 2시께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틀에 걸친 수색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노씨는 수영 코스인 월드컵대교 인근에서 10월1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마포경찰서는 “정확한 사망 원인 규명을 위해 노씨에 대해 부검을 실시하고, 대회 주최 측의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씨의 가족과 친구들은 대회를 주최한 철인3종협회의 졸속 운영으로 노씨가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노씨와 같은 동호회 소속으로 대회에 참가했던 장아무개(33)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협회가 유속을 측정한 자료를 갖고 있었지만 당일 오전에 해당 구간에서 측정한 내용은 없었다”며 대회를 강행한 문제를 지적했다. “수영 경기를 취소했으면 입수자가 모두 나왔는지 인원이라도 제대로 파악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아 신고가 늦게 이뤄졌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주최 쪽은 ‘규정대로 진행했다’는 태도를 보인다. 대회에 심판으로 참가한 한 관계자는 “유속이 그렇게 세지 않았고 선두 그룹은 모두 완주했다. 초보자나 처음 도전한 분들을 포함해 100여 명이 구조됐다. 구조대원도 평소보다 많이 동원됐다”고 했다. 그러나 숨진 노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의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한 경험이 있었다. 노씨의 한 대학 동기는 노씨에 대해 “입학시험이 어렵기로 유명한 체육학과 동기 중에서도 가장 체력이 좋은 친구였다”고 설명했다. 인명 피해를 단순히 참가자의 운동능력 부족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 참석한 한 40대 남성은 “철인대회 13번째인데 최악의 물살이었고, 처음으로 포기했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그는 킹코스(3.8㎞, 180㎞, 42.195㎞)를 완주한 적 있는 베테랑이었다.
당시 월드컵대교 위에서 대회를 지켜봤던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온전하게 수영으로 경기를 마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90년대부터 철인대회에 참가했고 이번 대회에 소속팀 서포터로 나왔다는 한 동호인은 이렇게 말했다. “다리 위에서 수영 경기를 지켜보다 옆의 심판에게 ‘사람 죽겠다, 경기를 취소하라’고 했으나 무전기가 없다고 했다. 우리 팀에서 순위권에 들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도 모두 가이드라인을 잡고 겨우 빠져나왔다고 했다. 위에서 봤는데 정상적으로 수영만 해서 수영 경기를 마친 선수는 거의 없었다. 50대 이상이나 여성들까지 대상으로 대회를 진행했으면 더 큰 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익스트림 대중화 추세… ‘졸속 운영’ 대회 많아
전문가들은 철인3종 경기 같은 역사가 짧은 익스트림스포츠 대회가 최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참가자들이 안전 문제를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문현 충남대 교수(스포츠과학과)는 “신생 익스트림스포츠 대회는 운영진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고 돌발 상황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 주최 쪽은 규정에 따라 안전요원을 배치했다고 하겠지만 유속이 빠른 그 시간에 경기를 강행한 자체가 문제이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또 “대회 참가자들이 운영진에 신뢰를 갖고 안전 문제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주최 쪽은 운영비 등의 문제로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므로, 참가자들이 더 주체적으로 안전 문제를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불안한 부분이 있으면 경기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이번 대회에서 숨진 노씨의 인스타그램에 적힌 소개글입니다. 같은 대회에 참가해 같은 목표를 바라봤던 동료로서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