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보안사 수사관이 경찰 대신 수사…검찰·법정서 자백했어도 무죄”
박정희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육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 체포돼 징역 15년을 확정받은 80대 남성이 재심을 통해 45년 만에 무죄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보안사가 일반인을 불법으로 체포해 경찰 대신 수사했다면, 이후 경찰수사 단계에서 수집된 증거는 물론 검찰과 법정에서 한 자백까지도 증거능력이 없다고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15년을 확정받은 정 모(81)씨의 재심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정씨는 1973년 반국가단체인 '재일조선인유학생동맹중앙본부'에 가입해 북한노동당 지령에 따라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보안사에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에서 수사를 받은 것처럼 꾸며졌지만, 실상은 경찰 대신 보안사 소속 수사관이 직접 수사하는 방식이었다.
1974년 4월 징역 15년을 확정받고 수감됐다가 출소한 정씨는 2016년 9월 "불법수사로 유죄를 받았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이 2018년 4월 재심 개시를 최종 결정했다.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일반인이 피고인에 대해 수사권한이 없는 보안사 소속 수사관이 실제로 한 경찰 수사는 절차 위반 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수집된 증거가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정씨가 검찰 수사에서 자백한 것에 대해서도 "압박이나 정신적 강압상태에서 경찰 수사 단계와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검찰에서도 한 것이라고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한 진술을 한 점도 "수사기관에서의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법정 단계에 이르기까지 지속돼 공소사실 대부분을 허위로 자백했다고 의심된다"며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원심 판결에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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