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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항감옥’ 287일…마침내 문이 열렸다

등록 2019-10-11 18:15수정 2019-10-15 10:29

앙골라 박해 피해온 루렌도 가족
환승편의시설서 9개월 숙식하다
난민 심사 길 열려 한국땅 밟아
“아이 학교 보내고 일하고 싶다”
콩고 출신 앙골라인으로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며 난민 신청을 했다가 287일간 인천공항에 억류되었던 루렌도 은쿠카 가족 여섯명이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로 공항 밖으로 나온 11일 오후 인천공항 1터미널 입국장에서 기다리던 환영객들이 꽃바구니를 건네자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인천공항/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콩고 출신 앙골라인으로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며 난민 신청을 했다가 287일간 인천공항에 억류되었던 루렌도 은쿠카 가족 여섯명이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로 공항 밖으로 나온 11일 오후 인천공항 1터미널 입국장에서 기다리던 환영객들이 꽃바구니를 건네자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인천공항/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인천공항 입국장 입구가 열리자 수줍은 웃음과 함께 네 아이가 쭈뼛거리며 걸어 나왔다. 뒤이어 루렌도 은쿠카와 아내 보베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렌도!” “헬로!” 입구에서 기다리던 이들이 환영의 박수를 쏟아냈다. 제일 먼저 루렌도에게 달려간 이는 난민 인권 운동가인 홍주민 한국디아코니아 목사다. 홍 목사의 품에 안긴 루렌도가 눈물을 쏟아냈다. 입국장 난간에 선 활동가들이 펼침막을 흔들었다. ‘Welcome Lulendo family! 공항에서 벗어나 우리 품으로 온 난민 루렌도 가족을 환영합니다’

꼭 287일 만이다. 지난해 12월28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루렌도 부부는 11일 오후 4시 출국장으로 나오기까지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공항 면세구역 환승 편의시설 한쪽에서 먹고 잤다. 콩고 출신 앙골라인인 이들은 콩고 출신자에 대한 앙골라 정부의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왔다. 루렌도 부부는 앙골라 경찰에게 구금과 고문을 당했지만 한국의 출입국사무소는 ‘난민으로 인정할 사유가 없다’며 난민으로 인정받을 심사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울 땅을 찾아 이곳까지 왔지만, 루렌도 가족은 공항이라는 새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들을 도운 한국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항에서 지내는 동안 ‘루렌도 가족과 함께하는 사람들’ 모임 활동가들이 음식과 생필품을 지원했다. 그러나 ‘난민촌’처럼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잘 곳이 없어 복도 한쪽에 소파를 붙여두고 생활했고, 10살도 채 안 된 네 자녀는 9개월여 동안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루렌도 가족을 도와온 최윤도 두리미디어 편집장은 “부인은 치통이 심하지만 정식 치료를 받지 못해 진통제만 복용해왔다”고 말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검진하니 가족 모두 건강 상태가 ‘응급 상황’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들이 공항을 ‘탈출’할 수 있게 된 건 지난달 27일 법원이 루렌도 가족의 절박한 손을 들어줘서다. 루렌도 가족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청구를 기각했던 원심을 깨고 “앙골라 정부로부터 박해를 피하려는 급박한 상황으로 볼 여지도 있다”며 난민 심사를 받을 길을 열어줬다. 덕분에 이들 가족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기까지 일시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 입국장에 선 루렌도는 “아이는 학교에 보내고 (저는) 다른 사람처럼 일하고 싶다. 한국에서 우리를 도와주신 분께 감사드린다”며 미소를 지었다. 당장 지낼 곳이 마땅찮은 루렌도 가족은 입국 뒤 경기도 안산 이주민결핵환자쉼터에서 한달가량 거주하기로 했다. 인도적 이유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허용되지만, 아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구직 활동을 할 수는 없는 만큼 생계는 ‘난민공동행동’의 모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온 지 9개월여 만에 한국의 풍경을 처음 보게 된 루렌도 가족의 이날 첫 행선지는 ‘삼겹살집’이었다. 김어진 ‘난민과 손잡고’ 대표는 “공항에 있는 동안 루렌도 가족은 제대로 된 단백질 섭취를 못 했다. 루렌도 가족이 공항 안에 있을 때 통삼겹살구이를 먹고 싶다고 해 근방에 있는 고깃집을 예약했다”며 웃었다.

인천공항/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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