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5일 만에 전격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으로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하자 ‘검찰개혁’을 촉구해온 시민들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지명한 8월9일부터 67일 동안 한국 사회가 벌여온 논쟁의 쟁점을 놓고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철저히 숙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5일과 12일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서울 서초동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혹스럽고 안타깝다”는 반응을 내놨다. 사진작가 강경식(66)씨는 “많이 당혹스럽다. 뾰족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러 ‘서초동 집회’ 참가자들은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영업을 하는 남궁경(48)씨는 “국민적 열망이 모였고, 조 장관이 직을 내려놓으면서 검찰개혁에 반대할 야당의 명분은 사라졌다”며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성환(43)씨도 “만일 사태가 더 길어졌다면 더 많은 (국론) 분열이 있었을 듯하다”며 “촛불집회에 나섰던 많은 이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검찰개혁을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서초동 집회와 조국 장관 퇴진을 요구한 광화문 집회, 어느 쪽에도 참석하지 않은 이들은 ‘뒤늦은 사퇴’라고 꼬집기도 했다. 대학생 장근욱(27)씨는 “조 장관이 언젠가 사임할 수밖에 없다고 봤는데 (시기가) 좀 늦었다”며 “‘조국 수호냐, 조국 수호 아니냐’는 소모적인 프레임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진짜 논쟁은 이제부터’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두달여 동안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민주 진영과 진보 진영이 나뉘어 격론을 벌이고, 세대 간 상호 비판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 그리고 두곳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었던 이들이 나뉘어 여러 주장을 토해냈다.
“여러 결의 쟁점에서 두루 불신과 적대가 얽혔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금이 간 땅 위를 모두가 불안하게 걷게 됐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조 장관을 둘러싼 지난 두달여의 논란을 이렇게 돌아봤다. 조 장관에 대한 찬반,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 보수 야당과 언론·검찰 등에 대한 태도
가 얽히며 단순히 진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국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 여권이 깊은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는 게 신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국민의 이름으로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두달 동안 잃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사회적 세습’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를 우선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부화뇌동한) 언론의 자성이 필요하다”면서도 “20대들이 상처받은 것이 제일 아쉽다. 기득권 세력이 ‘위법한 게 아니다’라고 해도 20대들은 동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러나 조 장관 임명에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로 갈라져 논쟁하는 동안 이런 의제는 쉽게 묻혔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은 “조 후보자 자녀의 입시와 관련해 불거진 ‘불공정, 정의’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됐다. 그러나 검찰 개입이라는 돌발 변수로 그 구도가 한국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정략 대결로 흘러간 게 제일 아쉬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 특히 여당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촛불’ 때문에 대통령이 됐는데 이런 상황에 이르렀으니 앞으로는 대통령의 몫”이라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국민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임기 초의 자세로 내려와서 진솔하게 국민들과 대화하고 야당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도 “이번 사태로 인한 국론 분열이 워낙 크기 때문에 장관 사퇴로 쉽게 꺼지지 않고 시민들은 또 광장에 나올 것”이라며 “대통령과 정치권이 어떻게 통합적 리더십을 보여줄지, 총선에서 국민적인 화두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엄지원 권지담 오연서 이주빈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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