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들이 22일 국회 앞에서 5대 민생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요즘 백화점 지하를 가보면 어떤가요? 대형마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백화점·복합쇼핑몰 등에서 일하는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마트 노동자와 다릅니다. 유통산업발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해 의무휴업하는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20대 국회가 이번 주부터 마지막 정기국회 일정을 시작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노동자와 소비자, 소상공인의 권리를 강화하고 기업을 견제하는 ‘5대 민생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나섰다. 12월1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4월 총선을 감안할 때 ‘일하는 국회’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지적이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전국민주노총조합총연맹,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전국대리점살리기협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등은 22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5대 민생법안과 유사한 법안만 84개가 국회에 상정돼 있다. 이번에 처리되지 않으면 이 법안들은 폐기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말하는 5대 민생법안은 △서비스노동자 건강권 보호와 골목상권 상생을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법’ △일감몰아주기 등 총수일가의 사익 추구를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고 점주단체 대항력을 강화하는 ‘가맹사업법’과 ‘대리점법’ △소비자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고 기업 책임을 강화하는 ‘소비자 집단소송법’ 등이다.
이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들을 처리하라고 주장했다. 이성종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기획실장은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상 영업시간이나 의무휴업 제한이 있는 대형마트와는 달리 백화점·복합 쇼핑몰 등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이에 백화점은 휴업일이 일정하지 않아 서비스 노동자들의 휴식권과 노동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모든 대형유통 매장에 의무휴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특수고용 노동자과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도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기업을 견제할 법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남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가습기 살균제, 라돈 침대, 베엠베(BMW) 화재 등 소비자들이 집단적 피해를 입고 심하게는 사망하는 사고들이 있었다. 기업들은 돈에 민감하다. 집단소송법을 개정해 사고가 났을 때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가맹점주는 10년이 지나면 본사가 잘라도 저항할 수 없다. 대리점은 이런 계약갱신 요구권조차 없이 1년마다 재계약을 하며 하루살이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어 “가맹점과 대리점의 불공정한 계약구조를 안정적으로 바꿔야 골목상권 상인들이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가맹사업법과 대리점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보다 직접적으로 재벌 총수의 사익 추구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노동팀장은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만을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어 총수 일가가 간접 지배하고 있는 회사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이런 회사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포함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되어 있다. 국회는 조속히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사진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