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경기장에 들어선 성화주자들이 마지막 성화주자들에게 토치키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
“야 이 XX야, XXX야, XX XX야, 죽을래, 그따위로 할 거야? 미쳤어? 나가! 너 뭐 하는 거야? 장난해?”, “집중 안 해 XX야, 너 하기 싫냐? 너 나올래? XX야?”(구기 종목)
#2.
“XX 놈들 XX들인가? 나가 뒈져야 된다.” “XXX가 이기려는 의지가 없어.”(투기 종목)
국내 스포츠 대회 가운데 최고의 위상을 지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욕설과 폭언은 물론 성희롱까지 난무했던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인권위는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전의 14개 주요 종목에서 고등학교 학생 선수를 중심으로 언어·신체·성폭력 등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 과열 경쟁과 권위주의적 문화로 인한 인권침해 상황이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인권위 조사 결과, 구기 종목의 한 남자 지도자는 경기 내내 여성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화를 내고 욕설을 하는 것에 더해 선수를 마치 물건 다루듯 툭툭 밀치기도 했다. 당시 지도자의 폭언을 들은 관중들은 “저게 감독이냐” “욕하지 마라” “도대체 뭘 배우겠냐”라고 현장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투기 종목의 한 지도자는 경기장 복도 한쪽에 남성 고등학교 선수들을 열중쉬어 상태로 세워두고 “야, 너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왜 그따위로 한 거야”라고 호통을 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경기장 안 성희롱도 목격됐다. 한 심판은 경기장 안내 여성 직원에게 “야 딱 내가 좋아하는 몸매야. 저런 스타일은 내가 들고 업을 수 있지”라고 발언했고, 일부 종목에서는 작전 타임에 남성 코치가 여성 선수의 목덜미를 주무르고 만지는 장면도 확인됐다. 특히 일부 여성 선수나 자원봉사자들이 단상에 좌석이 마련된 종목단체 임원 등에게 다과 수발을 하는 등 성차별적인 의전을 하는 장면이 많은 경기장에서 빈번하게 목격되기도 했다.
관중들도 특정 지역을 비하하거나 성희롱 등의 발언을 했다. 일부 관중은 “시골 애들이 거세”라고 말하거나, 타 지역에 대한 야유를 보냈다. 남성 관중들이 여성 선수에게 “나한테 시집와라, 시집와”,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네. 좀 더 벗으면 좋으련만” 등의 발언을 했다.
학생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기장에서 탈의실과 대기실, 훈련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선수들은 관중석과 복도에서 본인들이 가지고 온 간이 매트를 깔고 관중들과 섞인 채로 쉬고 훈련하고 몸을 풀었다. 흡연 장소가 학생 선수 출전 대기실 바로 옆에 있어 담배 연기가 고스란히 학생 선수들에게 전해진 곳도 있었다. 인권위는 “높은 단상에 앉아 어린 여성들의 차 심부름을 당연한 듯이 받는 구시대적 단상 문화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며 “스포츠 과정에서 신체접촉은 훈련과 교육, 격려 행위와 혼동될 수 있는 특징이 있으며, 이를 빙자한 성폭력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어 스포츠 분야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인권 가이드라인에 따르고 위와 같은 인권침해와 권위주의적인 문화는 개선할 의무가 있다”고 전국체전 주최 쪽과 종목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에 권고했다.
제100회 전국체육대회는 대한체육회 주최로 지난 4일∼10일 동안 서울 송파구 잠실주경기장 등 72개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47개 종목에 전국 고등부·대학부·일반부 등 3만여명이 참가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