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시범운영 첫날인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승강장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강릉행 고속버스에 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8일은 장애인 이동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 13년 만에 휠체어 이용자를 태울 수 있는 고속버스가 시범운영을 시작해서다. 그러나 저가 항공사는 물론이고 아시아나 같은 대형 항공사마저 수익 제고를 이유로 교통약자들을 위한 ‘앞좌석 우선 배정제’를 포기하는 등 여전히 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길은 험난한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장애인 인권단체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9월27일부터 국내선 ‘프런트존 에이(A)’ 구역에 대한 유료 사전 예매 제도를 시작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다른 승객보다 먼저 내리기 유리한 이코노미클래스 전면 좌석인 프런트존 에이(1∼3열)” 구역에 포함된 1열 좌석의 경우 사전 예약 단계에선 좌석을 지정할 수 없게 비워뒀다가 탑승 당일 공항 카운터에서 보행약자들을 중심으로 제공해왔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내선은 9천원을 더 내면 비장애인도 1열 좌석을 미리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아시아나 쪽은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의 경우 사전 예약을 통해 프런트 시트(1열)를 무료로 배정해드리고 있다”고 밝혔지만, 보행약자 전용석을 비워두는 것이 아닌 한 ‘공수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장애인 승객이 먼저 1열을 예약해 좌석이 꽉 차면 장애인 승객의 실질적인 비행기 사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희순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1열 좌석이 아니면 휠체어에서 좌석으로 옮겨 타기가 매우 힘들다. 다리가 아예 안 굽혀져 1열 좌석에만 탈 수 있는 장애인도 있는데 장애인 이동권을 제한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저가 항공사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일부 저가 항공사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전문 인력조차 없다.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2년 전 일본행 저가항공을 이용했을 때 직원들이 기내용 휠체어로 나를 옮기는 훈련이 안 돼 있어서 휠체어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 제공 등 관심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장애인전문여행사 ‘두리함께’ 이보교 이사는 “항공사 입장도 이해는 된다. 장애인을 태우면 항공사 수익성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며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항공사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시범운영을 시작한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도 보완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4개 노선 10대의 버스에 2개씩 휠체어 좌석을 두는 것이지만 수동휠체어가 아닌 전동휠체어에만 적용이 되고, 버스 리프트를 다룰 수 있는 인력을 배정해야 하기 때문에 탑승 3일 전엔 예약을 해야 한다. 다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라는 더딘 서사를 돌아본다면, 첫걸음만으로 큰 진전일 수 있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 삶의 근거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본인이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장애인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 보행약자 모두의 인권을 위해 실질적인 장애인 이동권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