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전경. 선관위 누리집
미국에서 가족들과 9년째 이민생활 중인 유소영(가명·38)씨는 지난달 ‘재외선거 신고·신청 접수요원’ 면접에 응시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미국에서 재외선거인 등록을 홍보하고 접수하는 일에 지원한 유씨가 면접관인 재외선거관 이아무개 영사로부터 처음 들은 질문은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영사는 또 “아이는 몇명이냐”, “아이가 4살이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것 아니냐”, “첫째 아이는 학교에 누가 데려다주냐” 등을 질문했다. 유씨는 5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면접 초반부터 업무와는 관련 없는 질문들이 이어져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일하는 데 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 것인지 부담도 느꼈다”고 말했다.
성차별적인 발언도 이어졌다. 유씨의 말을 들어보면, 이 영사는 유씨에게 “장점이 뭐냐”고 질문했고, 유씨가 “어르신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이 있다”고 답하자 이 영사는 “나도 젊은 여자들이 좋아해 주면 좋겠지만 아줌마들한테 인기가 많다. 그래서 아쉽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씨는 “재외선거관은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고,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고 말했다.
이 영사는 재외선거 지원 업무를 ‘호객행위’로 폄하하기도 했다. 면접장에서 업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영사가 “솔직히 말할게요, ‘삐끼’ 노릇 한다고 보면 됩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유씨가 지원한 재외선거 지원 업무에는 한인들이 자주 다니는 슈퍼마켓 등에 재외선거인 등록 관련 포스터를 붙이는 등 재외선거인 등록 홍보 활동이 포함된다. 이 밖에도 유씨가 “급여에 대한 과세는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질문하자 이 영사는 “어떻게 할 수가 없고 그것으로 미국 정부가 문제 삼아도 대사관이나 선관위 혹은 정부가 보호해줄 수 없으니 알아서 단도리를 잘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유씨는 “현재 비자로는 미국에서 일할 수가 없는데, 나중에 이 일을 한 것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 합격했지만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이에 대해 “면접 과정 중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한 점을 인정한다”며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는 “확인 결과, 해당 재외선거관은 미국의 경우 통근 거리가 멀어 아이를 돌보는 일이 업무에 지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물은 것”이라며 “‘삐끼’라는 표현은 홍보물 배포 같은 일을 실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재외선거관들이 멀리 가서 총선 준비에 잘 대비해보자는 과정에서 용어 사용이 부적절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 등에 더 신경 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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