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점검을 하던 중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고객이 갑자기 끌어안았어요. 고객이 사과해서 일단락됐지만, 트라우마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어 사직했습니다.”
“‘도시가스 점검’이라고 인사하니 ‘잠자는데 시끄럽다’며 욕을 하고 뛰어나오려 해서 위층으로 도망쳤어요.”
6일 방문서비스노동자 안전보건사업기획단이 공개한 도시가스 점검원 피해 실태조사 결과의 일부다. 고객에게 폭언과 성추행 등 피해를 당하는 도시가스 점검원을 위해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들처럼 ‘방문노동’을 하는 서비스노동자 10명 중 9명이 고객에게 폭언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획단 쪽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어 지난 9월11~27일 설치·수리 현장 기사, 재가요양보호사, 도시가스 점검·검침원, 정신건강복지센터 노동자, 학습지 교사, 국민연금·건강보험 방문상담원, 방문간호사 등 방문서비스노동자 747명을 상대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92.2%는 ‘고객에게 모욕적인 비난이나 고함,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특히 11.1%는 이런 경험이 ‘매우 자주 있다’고 응답했다.
증언자로 나선 재가요양보호사 이건복씨는 “보호자 등에게 요양보호사의 업무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할 때는 가사 지원 등 과도한 일까지 요구받는다. 호칭도 ‘야’ ‘너’ ‘어이’ ‘아줌마’ 등으로 불리며 반말도 많이 듣는다”고 증언했다. 한 도시가스 점검원도 “대문에 ‘노크하세요’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못 보고 벨을 누르자, 여러차례 사과를 했는데도 고객이 아이 앞에서 ‘한글을 읽을 줄 모르냐’고 모욕을 줬다”고 전했다.
논란이 됐던 가스 점검원의 성희롱 피해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여성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6%는 ‘고객으로부터 성적인 신체 접촉이나 성희롱을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업종별로 보면, 가스 점검·검침원(74.5%)의 피해가 가장 컸다. 도시가스 점검원들은 조사에서 “야한 동영상을 크게 틀어 놓고 내 반응이 어떤지 보고 있었다”거나 “고객이 ‘저녁에 술 한잔 살 테니 몇시에 끝나냐’며 저질스러운 말을 계속 했다”고 호소했다.
‘구타 등 폭행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이도 15.1%나 됐다. 응답자들은 ‘고객에게 머리채를 잡히거나, 흉기로 위협당하거나, 개에게 물려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현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안전보건실 국장은 “직장에서의 폭행이 일상적이지 않은 현상임을 생각하면 매우 높은 수준의 위험한 상황에서 방문서비스 노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은 회사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응답자 10명 중 8명에 해당하는 79.2%는 피해가 생길 경우 ‘참고 넘어간다’(37.5%), ‘동료나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해소한다’(40.2%), ‘혼자 처리한다’(1.5%)고 했다.
노동계는 ‘방문노동의 특성을 고려한 적극적인 감정노동 보호규제 실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현정 국장은 “사용자의 노동자 보호 책임을 강화하고, ‘산업재해’ 수준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어도 노동자 스스로 업무를 중단할 권리를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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