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무개(76)씨 부부가 지난 1일 서울역다시서기센터에서 39년 전 잃어버린 셋째 딸(파란 스웨터 입은 이)과 상봉하는 장면. 서울 수서경찰서 제공
지난달 31일 오후 8시 서울역 2번 출구 앞. 서울역다시서기센터 직원이 역 앞에서 배회하고 있는 김아무개씨(47)를 발견했다. 까만 손가방을 들고, 파란 스웨터와 까만 바지, 점퍼를 입은 상태였다. 다시서기센터 직원이 노숙인인 김씨를 눈여겨본 건, 이날 오후 5시40분께 서울 수서경찰서 현병오 경위가 보내온 김씨의 얼굴 사진 때문이었다. 현 경위는 김씨가 8살 때인 1980년 12월24일 충남 천안의 집에서 실종됐던 인물이라며, 김씨를 발견하면 꼭 붙잡아두라고 다시서기센터 직원에게 부탁했다.
처음엔 다시서기센터 직원의 말에 의구심을 보이며 다시 거리로 나가려던 김씨도 서울역 파출소 직원들이 “부모님을 만나게 해준다”고 얘기하자 솔깃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아버지 김씨(76)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마음이 녹아내렸다. 아버지와 셋째딸은 서로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통화가 끝난 뒤 현 경위의 손에 얼굴을 비비고 뽀뽀하면서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0시30분, 천안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온 부모와 39년 동안 헤어져 있던 셋째딸이 마침내 재회했다. 김씨는 “엄마 아빠 오랜만에 보는데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그 사이에 다시서기센터에서 샤워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와 셋째딸은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11일 수서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딸 김씨는 8살 때 실종된 이후 서울시여성보호센터와 고시원, 다시서기센터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 김씨는 딸을 찾기 위해 주변 고아원 등 시설을 다 뒤지고, 경찰에 미아신고도 했으나 딸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유전자 등록이었다. 아버지 김씨가 최근 천안 동남경찰서 관계자한테 “혹시 모르니 유전자를 등록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지난 6월 유전자를 채취해 경찰에 등록한 것. 김씨의 유전자를 조사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지난 9월 “김씨의 유전자가 서울시여성보호센터에서 2006년 채취한 딸 김씨의 유전자와 친자 관계가 배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딸 김씨는 1991년부터 2017년까지 26년 동안 서울시여성보호센터에 살다가, 자진 퇴소한 상태였다. 이후 수서경찰서는 다시서기센터에 딸 김씨에 대해 문의했고, 김씨가 서울 중림동 주민센터에서 장애인 수급을 받아 중구 소재 고시원에 거주하다 퇴소한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현 경위가 지난달 31일 딸 김씨 사진을 다시서기센터에 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까만 손가방에 담긴 일기장을 보면, 딸 김씨는 고시원 퇴소 이후 서울역과 용산역, 종로3가와 영등포역, 동부이촌동 등을 도보로 돌아다니며 노숙했다.
아버지 김씨는 “딸을 보자마자 통곡했다. 딸은 손톱을 깨무는 버릇, 양손잡이 등 어렸을 때의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며 “딸이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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