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0년 동안 회삿돈 500여억원을 횡령해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한 광고회사의 50대 재무담당 직원이 징역 12년과 벌금 150억원 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조병규)는 2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임아무개(51)씨에게 징역 12년에 벌금 150억원 형을 선고했다.
1995년 한 광고회사의 재무담당 부서에 입사한 임씨는 1999년부터 지난 4월8일까지 20년 동안 이 회사에서 모두 2022회에 걸쳐 회삿돈 502억7800만원을 빼돌려 유흥비 등으로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의 설명을 보면, 임씨는 1999년께 실수로 거래처에 대금을 더 많이 지급하고 허위 매입채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긴 뒤 초과로 지급한 대금을 따로 입금하지 않았다. 임씨는 이러한 수법이 회사에서 적발되지 않자 그때부터 같은 방식으로 횡령을 시도해도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범행을 결심했다. 이후 임씨는 2000년 2월께 회계전산 시스템에 허위 매입채무를 생성한 뒤 이를 지급한 것처럼 가장해 내부결재를 받은 다음 회삿돈 300만원을 빼돌린 것을 포함해 20년 동안 비슷한 수법의 범행을 반복했다. 임씨는 이런 식으로 횡령한 돈을 대부분 유흥비나 개인 용도로 썼고, 올해 감사에서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자 자신 명의의 증권계좌 예수금을 인출해 국외 도주를 시도했고, 이 가운데 수억원은 대구 동성로 거리에서 분실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금 집행 등을 하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19년이 넘게 회사의 자금을 횡령했다”며 “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500억가량이 유출됐고 회사의 채권자와 모회사의 채권자, 투자자가 피해를 부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임씨의 범행을) 단순한 횡령 범행으로 치부할 수 없고 회사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를 위협하는 범죄로서 비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수억원 분실 등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했고, 금액을 은닉했을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 쪽이 환수한 금액도 모두 더해봐도 8억여원으로 전체 피해액의 1.7%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벌금 150억원을 납입하지 않으면 1500만원을 1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한다”고 밝혔다.
임씨의 변호인은 “피해 회사의 지출 업무와 출납 업무가 구분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나 부실한 감사 제도 등이 범행의 발생과 확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점이 유리하게 참작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회사의 소유인이나 경영인이 감시·감독 비용을 충분히 들이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수는 없다”며 “회사에 문제가 있으니 본인의 책임을 경감해달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 피해 변제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다짐을 한 점, 범행 이전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양형 조건으로 고려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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