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구에서는 한강(위 사진 가운데·왼쪽 물길)과 임진강(위 사진 오른쪽 물길)이 몸을 섞고, 남과 북의 경계가 물속으로 사라진다. 한강대교·철교 부근 63빌딩과 아파트가 물에 비친 한강의 모습(아래 작은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르포/분단과 개발로 굽이친 한강을 따라
한반도 한가운데를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은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듯 대한민국 개발의 상징이다.
그러나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한강은 뱃길을 막는 두 군데의 거대한 수중보, 강과 땅의 공존을 막는 콘크리트 강변 등 숱한 생채기를 안고 있다. 물길도 분단으로 막힌 채 50년 이상을 답답하게 흐르고 있다.
자연이 살아 숨쉬고, 그 속에 사는 물고기와 사람들이 물길 따라 맘대로 오가는 평화와 상생의 한강!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하필 날을 잘못 골랐다. 지난달 19일 아침 광나루에서 배를 띄웠다. 영하 12℃의 맹추위에 한강에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직후였다. 두두둑 두두둑, 얼음이 뱃머리에 부딪혀 잘려나갔다.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서울로 흘러드는 한강은 우리 눈엔 한줄기 흐르는 물이지만 실제론 잠실과 신곡 두 곳에 있는 수중보에 의해 동강나 있다. 높이가 11.2~12.2m에 이르는 잠실수중보 상류엔 사리 때도 그 하류 한강물이나 서해의 바닷물이 밀려오지 못한다. 암사·풍납·성남·자양·구의 취수장 등 서울과 수도권 일대 시민들이 마실 수돗물 원수를 퍼올리는 것도 잠실수중보 상류에서 이뤄진다.
상수원보호구역이라 개발행위가 제한돼 있어 아파트로 뒤덮이지 않은 강변을 바라보면 눈이 시원해진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 광나루지구 이병원 주임은 “건물과 차량이 내뿜는 열기가 적어 하류에 비해 2℃ 정도 기온이 낮고 민물이기 때문에 1~2월이면 얼음이 한달 내내 꽁꽁 언다”고 말했다.
한강은 서해로 흐르며 여러번 물줄기를 뒤튼다. 남·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난 뒤 예봉산과 남한산을 연결하는 산지의 좁은 계곡을 급류로 가로지르다 팔당 근처 평평한 땅에 이르면 당정섬·미사리섬 등을 빚어 놓으며 잠시 몸을 푼다. 이곳 광나루지구에 오면 편마·화강암 위주의 아차산에 부딪히며 남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처럼 강은 봉우리와 평지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구불거리며 흐르고 때로는 강 남쪽에(당정·미사리·잠실·여의), 때로는 강 북쪽에(난지·저자) 섬을 떨궈놓았다.
광나루 배 띄워 뒤틀고 빚어내고
옛적 물길은 사라진 ‘물의 공원’
황복-숭어 만나고 풀씨 춤추네
이젠 남북이 오가는 물길 될 차례 잠실수중보를 배가 통과할 수 없어 잠실나루터에서 배를 갈아타고 하류로 향했다. 강 북단은 강변북로의 거대한 고가구조물이, 남단은 아파트숲이 장벽처럼 강변을 막고 서있다. 한강의 모습이 오늘처럼 변한 것은 1·2차에 걸쳐 이뤄진 한강종합개발사업 때문이다. 1966년에 시작된 1차 한강종합개발은 여의도에 제방을 쌓고 잠실섬을 육지와 연결해 대규모 상업지·택지를 조성했으며, 남북 한강변에 자동차용 제방도로를 새로 닦았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1982~86년 4년에 걸쳐 이뤄진 한강종합개발 사업은 한강의 전체 모습을 바꾸는 대사업으로서 그 기본 개념은 ‘물의 공원’이었다. 이전엔 공장폐수와 도시하수가 한강에 그대로 쏟아져나왔고 무분별한 골재 채취로 곳곳에 웅덩이가 패어 있었다. ‘물의 공원’이란 강 양쪽의 하수관로·하수처리장·준설 등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고, 수중보를 만들어 물을 가둬둠으로써 맑고 푸른 물이 ‘항상’ 담겨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둔치에는 공원과 체육시설을 만들었고(한강시민공원 12곳) 기존의 강북강변도로 외에 자동차용 도시고속도로를 남쪽에도 만들어 김포공항에서 잠실올림픽경기장까지 멈춤없이 주행하도록 했다(올림픽대로). 가뭄 때엔 거대한 백사장을 드러내며 굽이쳐 흐르고 홍수 때는 무섭게 수위가 높아졌던 한강은 그때부터 늘 같은 표정의 호수로 변했다. 백사장과 갈대밭이 넓게 펼쳐졌던 한강가가 물로 뒤덮였다. 어릴 때 뚝섬 백사장에서 뛰놀며 자랐던 노수홍 교수(연세대 환경학과)의 표현을 빌자면 “쓰레기와 악취를 내뿜던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은 것과 마찬가지로 한강도 물로 ‘복개’한 것”이었다. 물의 공원은 만들어졌으되 진짜 물길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한강종합개발사업 이후 요트나 관광유람선이 한강에 등장했다고 해도 이는 충청·강원·평안·전라 각지로부터 사람과 물자를 실어날랐던 예전의 물길은 아니었다. 한강대교에 이르자 노들섬 때문에 물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유속이 좀더 빨라진다. 배는 수련처럼 떠있는 얼음조각들을 헤치며 천천히 나아갔다. 숭례문이 서울의 제1관문인 것처럼 한강대교는 한강의 제1다리다. ‘한강에 얼음이 얼었다’고 하면 측정소가 있는 한강대교 일대가 언 것이고, 홍수 때 수위가 얼마 얼마로 높아졌다고 하면 역시 한강대교 교각의 눈금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물의 공원’이라고 해서 배가 멋대로 다니는 것은 아니다. 한강종합개발사업 때 대대적인 정비를 했다고 하지만 자연은 절대 만만치 않다. 예전에 백사장 등 범람원이 넓게 형성됐던 지역에는 지금도 물길이 부지런히 퇴적층을 옮겨놓는다. 이런 곳은 수심이 낮아 배가 다니기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한강 다리를 유심히 살펴보면 교각 사이에 빨간 삼각형과 초록 사각형 딱지가 붙어있음을 알 수 있다. 항로 표시다. 항해사들은 반드시 초록 딱지 아래로 지나가야 한다. 뭍과 마찬가지로 물에서도 우측통행이 원칙이다. 우리는 한강이 서해로 흘러나감을 알고 있으면서도 강과 바다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서해에 사리가 되면 한강에도 짠물이 밀려온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 여의도지구 우동현 주임은 “서해에 폭풍주의보가 내리면 한강 배들도 단속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닻을 단단히 내리고 밧줄을 보강해야 바다의 폭풍을 강에서도 견딜 수 있다. 성산대교 아래부터는 얼음이 단단해 모터보트의 뱃머리로는 깨고 나아갈 수 없었다. 배에서 내려 차를 타고 한강 하구로 향했다. ‘물의 공원’으로 바뀌기 이전 진짜배기 한강을 보고 싶어서였다. 김포대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산들은 뒤로 물러서고 넓은 들이 좌악 펼쳐진다. 한강·금강·낙동강·영산강 등 남한 4대 강 가운데 하구가 간척사업이나 하구둑 등으로 변하지 않은 곳은 한강이 유일하다. 군사분계선이 하구를 가르기 때문에 남북 어느쪽도 손을 대지 못한 탓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올랐다. 한강과 임진강의 물이 만나 몸을 섞는 장관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민물이 얼어 생긴 얼음조각에 바닷물의 소금결정이 뒤엉켜 하얀 해빙을 이루었다. 해빙이 천천히 움직여 김포·개풍·연백·강화를 거치며 서해로 나아간다. 여기선 사람 이외의 것은 모두 만난다. 민물과 짠물, 임진강의 황복과 한강의 숭어가 왕래하고, 장단면과 개풍군의 풀씨가 바람에 날려 남북 땅에 섞인다. 분단을 넘어서는 것은 사람의 길을 뚫는 것일 터이다. 철길을 놓고 육로를 잇고 그리고 이곳에 물길을 뚫는 일이다. 풍경에 젖어 상상에 잠겼다. 돌아갈 것 없이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냄비가 임진강·한강을 통과해 남대문시장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이 상암나루터에서 남포행 여객선에 오른다. 칭다오·텐진에서 출발한 배가 연평도·볼음도·석모도·교동도를 지나 한강 깊숙이 들어오면 여인의 눈썹처럼 길쯤하게 솟은 봉우리들이 반겨줄 것이다. 석류포·마금포·전류리포·유산리포·이산포 등 한강 하구의 옛 포구들도 웃음을 흘리겠지. 개발과 분단의 시대를 거치며 바다와 만났던 한강은 고립된 강으로 변했다. 그러나, 한강은 서해로 흐르고 저 멀리 태평양과 이어져 세계와 만나는 탯줄이다. 그 탯줄에 달린 서울은 역시 항구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광나루 배 띄워 뒤틀고 빚어내고
옛적 물길은 사라진 ‘물의 공원’
황복-숭어 만나고 풀씨 춤추네
이젠 남북이 오가는 물길 될 차례 잠실수중보를 배가 통과할 수 없어 잠실나루터에서 배를 갈아타고 하류로 향했다. 강 북단은 강변북로의 거대한 고가구조물이, 남단은 아파트숲이 장벽처럼 강변을 막고 서있다. 한강의 모습이 오늘처럼 변한 것은 1·2차에 걸쳐 이뤄진 한강종합개발사업 때문이다. 1966년에 시작된 1차 한강종합개발은 여의도에 제방을 쌓고 잠실섬을 육지와 연결해 대규모 상업지·택지를 조성했으며, 남북 한강변에 자동차용 제방도로를 새로 닦았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1982~86년 4년에 걸쳐 이뤄진 한강종합개발 사업은 한강의 전체 모습을 바꾸는 대사업으로서 그 기본 개념은 ‘물의 공원’이었다. 이전엔 공장폐수와 도시하수가 한강에 그대로 쏟아져나왔고 무분별한 골재 채취로 곳곳에 웅덩이가 패어 있었다. ‘물의 공원’이란 강 양쪽의 하수관로·하수처리장·준설 등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고, 수중보를 만들어 물을 가둬둠으로써 맑고 푸른 물이 ‘항상’ 담겨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둔치에는 공원과 체육시설을 만들었고(한강시민공원 12곳) 기존의 강북강변도로 외에 자동차용 도시고속도로를 남쪽에도 만들어 김포공항에서 잠실올림픽경기장까지 멈춤없이 주행하도록 했다(올림픽대로). 가뭄 때엔 거대한 백사장을 드러내며 굽이쳐 흐르고 홍수 때는 무섭게 수위가 높아졌던 한강은 그때부터 늘 같은 표정의 호수로 변했다. 백사장과 갈대밭이 넓게 펼쳐졌던 한강가가 물로 뒤덮였다. 어릴 때 뚝섬 백사장에서 뛰놀며 자랐던 노수홍 교수(연세대 환경학과)의 표현을 빌자면 “쓰레기와 악취를 내뿜던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은 것과 마찬가지로 한강도 물로 ‘복개’한 것”이었다. 물의 공원은 만들어졌으되 진짜 물길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한강종합개발사업 이후 요트나 관광유람선이 한강에 등장했다고 해도 이는 충청·강원·평안·전라 각지로부터 사람과 물자를 실어날랐던 예전의 물길은 아니었다. 한강대교에 이르자 노들섬 때문에 물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유속이 좀더 빨라진다. 배는 수련처럼 떠있는 얼음조각들을 헤치며 천천히 나아갔다. 숭례문이 서울의 제1관문인 것처럼 한강대교는 한강의 제1다리다. ‘한강에 얼음이 얼었다’고 하면 측정소가 있는 한강대교 일대가 언 것이고, 홍수 때 수위가 얼마 얼마로 높아졌다고 하면 역시 한강대교 교각의 눈금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물의 공원’이라고 해서 배가 멋대로 다니는 것은 아니다. 한강종합개발사업 때 대대적인 정비를 했다고 하지만 자연은 절대 만만치 않다. 예전에 백사장 등 범람원이 넓게 형성됐던 지역에는 지금도 물길이 부지런히 퇴적층을 옮겨놓는다. 이런 곳은 수심이 낮아 배가 다니기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한강 다리를 유심히 살펴보면 교각 사이에 빨간 삼각형과 초록 사각형 딱지가 붙어있음을 알 수 있다. 항로 표시다. 항해사들은 반드시 초록 딱지 아래로 지나가야 한다. 뭍과 마찬가지로 물에서도 우측통행이 원칙이다. 우리는 한강이 서해로 흘러나감을 알고 있으면서도 강과 바다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서해에 사리가 되면 한강에도 짠물이 밀려온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 여의도지구 우동현 주임은 “서해에 폭풍주의보가 내리면 한강 배들도 단속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닻을 단단히 내리고 밧줄을 보강해야 바다의 폭풍을 강에서도 견딜 수 있다. 성산대교 아래부터는 얼음이 단단해 모터보트의 뱃머리로는 깨고 나아갈 수 없었다. 배에서 내려 차를 타고 한강 하구로 향했다. ‘물의 공원’으로 바뀌기 이전 진짜배기 한강을 보고 싶어서였다. 김포대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산들은 뒤로 물러서고 넓은 들이 좌악 펼쳐진다. 한강·금강·낙동강·영산강 등 남한 4대 강 가운데 하구가 간척사업이나 하구둑 등으로 변하지 않은 곳은 한강이 유일하다. 군사분계선이 하구를 가르기 때문에 남북 어느쪽도 손을 대지 못한 탓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올랐다. 한강과 임진강의 물이 만나 몸을 섞는 장관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민물이 얼어 생긴 얼음조각에 바닷물의 소금결정이 뒤엉켜 하얀 해빙을 이루었다. 해빙이 천천히 움직여 김포·개풍·연백·강화를 거치며 서해로 나아간다. 여기선 사람 이외의 것은 모두 만난다. 민물과 짠물, 임진강의 황복과 한강의 숭어가 왕래하고, 장단면과 개풍군의 풀씨가 바람에 날려 남북 땅에 섞인다. 분단을 넘어서는 것은 사람의 길을 뚫는 것일 터이다. 철길을 놓고 육로를 잇고 그리고 이곳에 물길을 뚫는 일이다. 풍경에 젖어 상상에 잠겼다. 돌아갈 것 없이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냄비가 임진강·한강을 통과해 남대문시장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이 상암나루터에서 남포행 여객선에 오른다. 칭다오·텐진에서 출발한 배가 연평도·볼음도·석모도·교동도를 지나 한강 깊숙이 들어오면 여인의 눈썹처럼 길쯤하게 솟은 봉우리들이 반겨줄 것이다. 석류포·마금포·전류리포·유산리포·이산포 등 한강 하구의 옛 포구들도 웃음을 흘리겠지. 개발과 분단의 시대를 거치며 바다와 만났던 한강은 고립된 강으로 변했다. 그러나, 한강은 서해로 흐르고 저 멀리 태평양과 이어져 세계와 만나는 탯줄이다. 그 탯줄에 달린 서울은 역시 항구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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