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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들 앗아간 ‘군대 내 괴롭힘’…엄마에게도 ‘생지옥’이었다

등록 2019-11-26 18:17수정 2019-11-27 17:51

‘최현진 일병 1주기’ 어머니의 1인 시위

“명문대생이…” “그러다 휴가 잘린다”
일상이 된 조롱·질책 ‘언어폭력’ 탓
말도 못할 정도로 우울증 시달려
마지막 통화 한달 뒤 극단적 선택

군, ‘강한 스트레스’ 신호에도 방치
가해 상관들 폭언은 ‘불기소 처분’
어머니 송씨 “수면제 없인 잠도 못자
군 복무 중 상관의 괴롭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최현진(23)씨의 어머니인 송덕순(51)씨가 현진씨의 사망 1주기인 26일 오전 11시에 현진씨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군 복무 중 상관의 괴롭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최현진(23)씨의 어머니인 송덕순(51)씨가 현진씨의 사망 1주기인 26일 오전 11시에 현진씨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26일, 충남 서산 20 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최현진(23) 일병이 부대 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대 내 괴롭힘이 원인이었다. 순직은 인정받았지만 가혹행위자들의 처벌은 흐지부지됐다. 매질이나 엽기적인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다. 그러나 폐쇄적 병영 내에 일상적으로 만연했던 질책과 언어폭력은 청년을 결국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이후 1년, 아들을 잃은 엄마는 상실의 고통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군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2일부터 현진씨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어머니 송덕순(51)씨를 만나 사건기록들 등을 돌아보며 그의 1년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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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생인데 실망이다”…일상이 된 질책과 조롱

“엄마. 지금 너무 힘들어.” 군 복무 중인 아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어두웠던 건 지난해 10월 어느 날이었다. 예고됐던 휴가가 밀리면서 현진씨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단순히 휴가가 밀려서”만은 아니라고 현진씨는 어머니 송씨에게 말했다. “그냥 (예전엔 휴가가 밀리면) 다음에 나가면 되지 했는데 (요즘엔) 막 힘들고 답답해서 휴가만 보고 살았는데 밀리니까…. 다른 데로 가고 싶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송씨는 통화를 녹음해 뒀다. 그 통화로부터 한달 뒤 현진씨는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사랑하는 아들의 목소리를 ‘증거자료’로 쓰게 되리라고 송씨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자대 배치를 받은 뒤 상관의 질책과 꾸짖음은 행정병인 현진씨의 일상이 됐다. ㄱ소위 등은 지시한 업무를 제대로 해오지 못했다며 현진씨를 자주 꾸짖었다. 동료들은 나중에 현진씨가 숨진 뒤 군 조사에서 “주 10~15회 정도 현진이가 업무 관련 질책을 받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상관은 특히 현진씨가 유명 대학에 다니는 것을 두고 빈정거리거나 휴가를 놓고 그를 압박했다. 군 변사기록에 적힌 동료들의 진술을 보면 ㄱ소위는 그에게 “명문대생인데 실망이다”라거나 “현진이 또 찐빠(제대로 되지 않은 일과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냈네”라고 조롱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휴가 못 나간다”거나 “감점을 주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현진씨는 속상한 마음을 동료들에게 자주 하소연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에도 현진씨는 휴대전화 보관증을 잃어버려 ㄱ소위에게 심하게 질책받았다. “3일 동안 엄청 우울해보이고, 몇 시간씩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동료의 기억이다.

지난해 11월 모처럼 긴 휴가를 마친 뒤 자대에 복귀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현진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곁에는 이런 메모가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요. 삶의 무게를 견뎌낼 수 없네요. 미안하고 사랑해요.” 군대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현진씨는 단 세 문장만을 남긴 채 홀로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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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평정지수 높았지만 무대처…가해자 처벌도 흐지부지

송씨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아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단 사실이다. 현진씨는 지난해 10월~11월에 실시된 부대 내 후반기 스트레스 평정검사에서 “견디기 힘들 정도의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에 2개 항목,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에 6개 항목을 선택했다. 종합 결과에서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군 변사기록을 보면 현진씨의 스트레스 평정지수가 안 좋게 나와 간부들이 걱정했다는 증언이 적혀 있다. 상관인 ㄱ소위는 간부들에게 “병사들의 스트레스 평정지수가 나쁘게 나왔다”며 “병사들 잘 좀 대해달라”고 말했지만, 정작 본인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현진씨는 “스트레스 평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동료에게 하소연했다. 송씨는 “(스트레스 평정이) 아들이 마지막으로 했던 저항이었다”고 돌이켰다. 군은 ‘최일병’의 신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대 내 가혹행위 사건이 대개 그러하듯 가해자 처벌도 흐지부지됐다. 군은 이 사건을 조사한 뒤 “개인적인 원인 등에 의해 사망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잦은 질책 및 언어폭력으로 힘들어 한 상태에서 스트레스,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지었다. 현진씨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지속적인 폭언은 군사법원 법정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군 검찰이 모욕 혐의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해서다. 지난 7월4일 보통군사법원 1심 재판부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협박 혐의를 적용해 ㄱ소위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을 뿐이다. 이를 두고 군 검찰과 ㄱ소위 모두 항소한 상태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에게 정당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믿는 송씨는 지난 4월2일 ㄱ소위의 폭언에 대해 직권남용 가혹행위 혐의 등을 추가해 다시 고소장을 냈다. 하지만 직권남용 가혹행위도 기존 판례상 적용이 어려워 보인다. 군 법무관 출신인 강석민 변호사는 “과거 박찬주 대장 사건도 그렇지만 직권과 남용의 범위에 대해 군사법원이 좁게 해석하고 있어 남용 행사 정황이 모호하고, 수위가 심각하지 않으면 처벌이 거의 되지 않는다. 간부들이 병사를 괴롭히면 병사들은 대응할 방안이 없으니 군대 내 괴롭힘은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엄벌을 처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형남 군 인권센터 팀장은 “최근 발생하는 사고는 명시적인 구타보다 집단 따돌림, 무시 발언 등이 문제가 되는데 가혹행위가 누가 들어도 가혹하다 여길 정도의 엽기적인 수준이 아닌 이상 잘 처벌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엽기적인 수준이 아닌 괴롭힘은 허용해도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국방부는 “법과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외아들인 현진씨가 홀연 곁을 떠나자 송씨의 삶도 무너졌다. 지난해 12월부터 송씨는 공황장애, 우울증을 진단받고 신경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고는 잠들지 못한다. 관련자 처벌을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과 국민신문고, 인권상담센터 등에 문을 두드렸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법이 없자 직접 거리로 나섰다. 지난 22일을 처음으로 현진씨의 1주기인 26일에도 손팻말을 들고 그가 다니던 대학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이유다. “생지옥입니다. 아들이 살려달라고 신호를 보냈는데 눈치를 못 챈 죄책감이 커요. 나라를 믿은 제가 죄인입니다.”

글·사진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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