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서지혜씨가 공개한 ㄱ씨와의 대화. 성관계를 하자며 집 앞에 오겠다는 ㄱ씨를 만류하는 내용이다. 전광준 기자
유명 정신과 의사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당했다고 피해를 폭로했던 교사가 가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고 학교를 옮길 처지에 놓였다. 교육청 쪽은 적법한 절차에 따랐다고 주장하지만 여성단체 등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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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북 김천교육지원청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해당 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서지혜(가명·38)씨는 지난 4월 “교육공무원 신분으로서 품위유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견책(경징계) 처분을 받고 ‘비정기전보 대상자’가 됐다. 서씨는 앞서 <한겨레>를 통해 정신과 치료 과정에서 의사 ㄱ(44)씨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성폭력 피해자인 서씨는 왜 되레 교육청의 ‘징계’를 받게 된 걸까. 가해자인 ㄱ씨가 앞서 명예훼손 혐의로 서씨를 고소하고, 검찰이 벌금 100만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려서다. 검찰이 이같은 사실을 해당 교육청에 통보한 뒤 김천교육청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서씨를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김천교육청 관계자는 “서씨가 받은 검찰 처분은 징계 사유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씨는 비정기전보 대상자에 올라, 본인의 희망과 상관없이 전직 및 전보를 당할 수 있게 됐다.
경북교육청 인사담당자는 “전보 대상자에게 11월 하순 관련 서류를 받아 새해 1월 중순 경북교육청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친다. 심의 결과,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대로 둘 수도 있다. 해당 건은 좀 더 심각하게 서류 검토와 심의를 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교육청 쪽은 ‘공무원 비위사건 처리기준’에 따라 징계한 것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고소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게 여성 단체의 지적이다. 김정순 대구여성의 전화 대표는 “해당 사건의 경우 ㄱ씨가 6월 고소를 취하해 징계 사유가 사라졌음에도 징계는 철회되지 않았다. 교육청이 피해자를 보호는 못해줄 망정 두 번, 세 번 죽이는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징계 및 전보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이 기관 내에 광범위하게 알려지는 것도 문제지만, 공무원의 경우 이처럼 성폭력 피해를 알려 고소를 당하면 징계를 받게 돼 피해자가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며 이와 관련해 예외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징계 철회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청심사 등 정식 절차에 따라 결정돼야 철회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징계 결과가 나온 뒤 이의가 있을 경우 30일 이내 소청심사를 제기할 수 있다. 해당 제도를 알지 못해 소청심사를 제기 못했다는 서씨는 “공소가 기각되거나 고소를 취하하면 자동으로 징계가 취소되는 줄 알았다”며 “징계에 대해 행정소송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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