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피해로 산재인정을 받은 직원의 산재인정(요양승인처분) 취소를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낸 장학재단 남도학숙이 소를 취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이 직장 내 성폭력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긴커녕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는데도 이를 뭉개다가, 최근 법원이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며 소송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뒤늦게 나선 것이다. 남도학숙은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가 공동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학재단이다.
15일 남도학숙 관계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재단은 지난 13일 서울행정법원에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ㄱ씨의 요양승인처분 취소사건에 관해 소 전부를 취하한다는 내용의 소취하서를 냈다. 지난해 11월1일 관련 소송을 접수한 지 1년여 만이다.
행정소송의 발단이 된 ‘남도학숙 성희롱 사건’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남도학숙에 경력직원으로 입사한 ㄱ씨는 2015년 상사 ㄴ씨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인권위는 이듬해 3월 직장 내 성희롱을 인정했다. 그 후 ㄴ씨는 감봉 1개월 징계를 받고 정년퇴직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ㄱ씨의 고통을 계속됐다. ㄱ씨는 독방에서 혼자 근무하도록 배정받거나 폭언을 듣는 등 2차 피해로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었고, 2017년 근로복지공단은 남도학숙 쪽에 ‘(피해자의) 산재를 인정해 치료비 등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남도학숙은 지난해 11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인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에 앞서 감사원에 같은 이유로 심사를 청구하고 감사원이 기각했는데도 소송을 강행한 것이다. 이후 1년이 넘는 소송 기간 동안 피해자는 2차 피해까지 견뎌야 했다. 남도학숙은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에 ㄱ씨의 최근 10년간 건강보험요양급여 및 의료급여 지급 내역, 건강검진 결과표 등 ‘진료기록부 일체’를 제출하도록 요구해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관련 기사 : 성희롱 고발자에게 10년치 의료급여 내역 제출명령한 법원)
‘공공기관이 성희롱 피해자에게 권력남용을 일삼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도 꿈쩍하지 않았던 남도학숙이 뒤늦게 소를 취하한 배경엔 행정소송의 유불리에 대한 계산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ㄱ씨는 성희롱 가해자 및 남도학숙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지난 6월 2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2심 재판부는 “재단이 성폭력 예방교육만으로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다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재단 쪽의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은 피해자와 남도학숙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ㄱ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년여간 피해자를 충분히 괴롭히다가 재판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재단이 소를 취하했다”며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산재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피해자를 괴롭히는 2차 피해가 다른 기관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다경 광주시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은 “법원과 인권위, 공단에서 이미 인정한 피해를 남도학숙에서 4천여만원의 비용을 내면서 1년 동안 왜 소송을 이어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제라도 재단의 공동이사장을 맡은 광주시장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소송은 취하했지만, ㄱ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월 이 재단의 새 원장으로 임명된 정상용 남도학숙 원장은 “공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남도학숙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건 좋은 모양새가 아니고 (민사소송) 2심 결과를 대법원에서 크게 뒤집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행정소송을 취하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향후) 민사소송도 취하해 ㄱ씨가 그동안 앙금을 털고 회사에 복귀해서 지난 일을 잊고 열심히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남도학숙이 지난 13일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요양승인처분취소 사건 소취하서.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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