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끌려갔다 영주 귀국한 징용 피해자들이 “외교부가 일본 정부와의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부작위 위헌 확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재가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7일 한아무개씨 등 사할린 징용 피해자 2296명이 낸 부작위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에서 이런 결정을 선고하며 헌법소원 대상으로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외교부가 ‘작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며 작위 의무 불이행을 전제로 위헌임을 주장하는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각하는 헌법소원 청구가 헌재의 심판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내리는 처분이다.
이 사건은 7년 전인 2012년 11월 헌재에 접수된 장기미제 사건이었다. 청구인들은 당시 무국적자 신분으로 사할린 탄광 등에 끌려가 고된 일을 하면서도 우편예금 59만 구좌(당시 약 1억8천만엔)와 간이생명보험 22만건(약 7천만엔)을 지급받지 못했다. 이들은 귀국 후 일본 정부에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며 응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일협정 대상에 사할린 동포는 국민으로 포함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이들의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청구인들은 임금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청구인들은 분쟁 해결을 위한 양국 협상이 불가능할 경우, 한·일 협정에 따라 한·일 정부와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열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헌재는 외교부의 노력을 인정했다. 헌재는 2013년 6월 외교부가 한·일 외교당국간 협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했고, 2014~2016년 간부 면담과 실무 협의를 통해 앞서 제안한 협의 요청에 대해 성의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등 지금까지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분쟁해결 절차를 언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외교행위의 특성상 피청구인에게 상당한 재량이 인정된다”며 “가시적인 성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자신에게 부여된 작위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짚었다.
청구인들을 대리한 법무법인 인앤인의 경수근 변호사는 “정부의 형식적인 노력을 헌재는 인정했다. 7년 동안 심리했는데 각하 결정을 내려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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