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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9 17:02 수정 : 2020.01.09 17:38

봄굴비 14마리 ‘엮음’. 신세계백화점 제공

법원, 중국산 참조기 영광굴비로 속여 판 일당 17명에 실형 등 선고
“영광굴비 브랜드에 대한 불신 낳아”…공범 가운데는 ‘굴비 명인’도

봄굴비 14마리 ‘엮음’. 신세계백화점 제공
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304호 법정. 형사12부 이정민 부장판사가 농수산물원산지표시에관한법률위반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17명을 한 명씩 호명했다. 이 가운데 피고 박아무개(49)씨가 재판정에 섰다. 박씨는 사단법인 대한민국명인회가 지정한 ‘영광굴비 명인’이다. 2012년에는 당시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최한 ‘수산물 브랜드 대전’에 입상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저희 업체는) 100% 국산 참조기만 엄선한다. 수시로 신선도와 오염 여부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수산물 가공업계에선 드물게 해섭(HACCP·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 인증 시설까지 갖췄다는 내용도 함께 실렸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그는 주범인 유통업자 박아무개(63)씨와 짜고 중국산 참조기를 국내산 영광굴비로 속이는 데 가담했다가 이날 법정에 서게 됐다. 게다가 그는 더 이상 명인도 아니었다. 대한민국명인회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박씨는 명인회 쪽과 교류가 없어서 명인회에서 제명됐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박씨 등 피고인들에게 “중국산 참조기를 국내산 영광굴비로 가공해 원산지를 거짓 표시한 상태로 전국에 유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영광굴비의 정상적 거래 질서를 무너뜨려 소비자의 신뢰를 져버렸고, 영광굴비에 대한 불신을 낳았으며, 국내산을 취급하는 상장사에 피해를 줬고, 지역 이미지까지 추락시켰다”고 지적했다. 이 부장판사는 “특히 박씨는 굴비 명인임에도 신뢰를 저버리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이날 주범 박씨에게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굴비 명인’ 박씨 등 3명에게도 징역 1년6월∼3년의 실형을 선고했으며, 또 다른 공범인 수산업체 및 유통업체 관계자 9명에게 집행유예, 4명에겐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009년부터 10년 동안 중국산 참조기 5000톤을 국내산 영광굴비로 둔갑시켜 백화점과 대형마트, 홈쇼핑에 유통·판매해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중국산 참조기 250억원어치를 약 3배가량 불린 가격에 팔아 모두 650억원가량의 이익을 얻었는데, ‘가짜 영광굴비’와 관련한 사상 최대 규모 사기 사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날 “비록 (중국산 참조기와 영광굴비는) 조기의 어종이 같고 굴비 가공 자체는 전남 영광에서 이뤄졌으나, 중국산 조기가 국내에 유입되는 유통 거리가 길고, 그 과정을 감독할 수 없어 신선도나 품질, 시장 가격 면에서 국내산과는 차이가 있다”고 사기 혐의를 적용한 이유를 밝혔다.

피고인들은 대부분 범행 사실을 인정했지만, 주범 박씨는 원산지 거짓 표시를 미처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공범에게 범행을 지시한 점 등을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화녹음 등 제출된 증거를 살펴보면 박씨가 공범에게 굴비의 규격과 수량을 알려주고 납품을 지시하며 관여한 정황이 포착된다”고 박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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