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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7 05:01 수정 : 2020.01.17 15:38

1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오른쪽)씨와 고 문중원씨 부인 오은주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마사회 비리’ 폭로 문중원 기수 49재
‘동병상련’ 오은주-김미숙 인터뷰


공기업 횡포 죽음으로 내몰고선 사과는커녕 책임회피 급급
진실규명 위해 찾아간 마사회선 경찰이 발로 차고 목 조르며 제지
애끊는 고통 수습 전에 ‘투사’로…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또 다른 죽음이 나올 거예요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합니다.”

1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오른쪽)씨와 고 문중원씨 부인 오은주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첫 화두는 꿈이었다. 만나자마자 김미숙(52)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오은주(37)씨에게 자연스레 안부를 물었다. “혹시, 그 사람 꿈 꾼 적이 있나요?” 김 이사장의 말에 오씨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한국마사회의 비리를 고발한 뒤 세상을 떠난 경마기수 문중원씨의 아내인 오씨는 아직 한번도 남편을 꿈에라도 만난 일이 없다. “매일 자기 전에 한번만 나타나달라고, 빌고 자요. 이제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으니까요.” 아들 김용균을 잃고 꿈에라도 나타나달라고 기도했던 날들이 기억나는 듯 김 이사장이 오씨의 손을 꼭 잡았다.

김 이사장과 오씨가 살아온 궤적은 다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온 김 이사장이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였던 아들 김용균을 잃고 절망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봤을 때 오씨는 두 아이를 돌보는 평범한 주부였다. 지난해 11월 남편 문중원 기수가 세상을 떠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난 15일 <한겨레>의 주선으로 정부서울청사 앞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에서 만난 김 이사장과 오씨는 오랜 지인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 영혼에 새겨진 고통의 무늬는 데칼코마니처럼 겹쳤다.

두 사람은 다 “영안실 서랍장”에서 아들과 남편의 모습을 마주했다. 얼굴 만지는 걸 꺼린 아들의 생전 모습이 기억나 김 이사장은 손바닥 대신 손등으로 아들의 얼굴을 쓸어봤다고 했다. 오씨는 유난히 남편의 귀가 말랑말랑해 잘 들어줄 것 같아 “일어나”라고 수십차례 외쳤다. “피부가 차가운 것만 빼고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어요.” 오씨의 말에 김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과 아들의 주검을 봤을 때만 해도 둘은 싸울 생각도, 이 죽음을 알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한국마사회의 승부조작 등 비리 행태를 고발하고 숨진 경마 기수 문중원씨의 49재가 1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렸다. 49재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고인의 죽음에 대한 한국마사회의 공식 사과와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러나 애끊는 고통을 미처 추스르기도 전에 두 사람은 모두 ‘투사’가 되어야 했다. 두 사람에게서 사랑하는 이를 앗아간 것은 단순한 사고도, 운명도 아니었다. 시장의 탐욕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죽음의 책임도 부정했다. 사기업도 아닌, 정부가 소유한 공기업들의 횡포였다. 싸우지 않고선, 사랑하는 이들의 넋을 위로할 길이 없었다.

아들 용균의 장례식장에서 “용균이가 고집이 세서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는 사쪽의 말을 듣고 “용균이한테 책임을 전가하고 있구나” 하며 분노했던 김 이사장처럼, 오씨에게도 ‘존재론적 전환’에 이른 시점이 있다. “남편이 유서에 마사회의 부조리를 다 고발하고 갔는데도 감히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선뜻 들지 않았어요. 그 정도로 무서운 곳이어서….” 하지만 남편이 숨진 뒤 찾아간 마사회 부산경남지역본부에서 사과를 받기는커녕 굳게 닫힌 철문을 보며 오씨는 절망했다. 지금까지 마사회의 누구도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 사과하지 않았다.

김낙순 한국마사회장에게 책임을 물으려 지난달 21일 찾은 과천 마사회 본사에서도 오씨는 철문보다 단단한 경찰의 제지에 발이 묶였다. “바닥을 기어서라도 들어가려 했는데 경찰이 발로 차고 목까지 졸랐어요.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만이라도 회장에게 듣고 싶었는데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오씨가 끝까지 싸워야겠다 생각한 순간이다.

김용균의 엄마에서, 김용균재단의 이사장으로 거듭난 김 이사장처럼 오씨는 “기득권의 벽” 앞에서 싸움을 다짐하고 있다. 오씨와 유가족들은 6일부터 청와대를 향해 ‘헛상여’를 들고 행진한다. 지난달 31일부터 오씨는 날마다 문재인 대통령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장문의 메시지도 보내고 있다. 아직 답은 오지 않았다. 마사회와 13일부터 교섭에 들어갔지만 속도는 “100개 중 1개만 놓고 따질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1월 한국마사회의 승부조작 등 비리 행태를 고발하고 숨진 경마 기수 문중원씨의 49재가 1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렸다. 49재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한국마사회의 공식 사과와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했다. 문 씨의 아내 오은주 씨가 행진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17일은 문중원 기수가 숨진 지 50일째를 맞는 날이다. 김 이사장이 모든 ‘위험의 외주화’에 반대해 싸우듯, 이제 오씨는 남편의 죽음을 넘어 한국마사회의 횡포에 스러진 모든 경마기수를 대신해 싸운다. “마필관리사 두명이 이미 2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마사회는 그때 했던 합의를 하나도 지키지 않았어요. 그래서 또 다른 죽음이 나왔고 그게 제 남편이에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또 다른 죽음이 나올 거예요.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합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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