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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8 09:18 수정 : 2020.01.18 10:02

<한국방송>(KBS) 스포츠예능 <씨름의 희열>에 출연하는 두 선수가 모래판 위에서 서로 샅바를 잡고 힘을 겨루고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슬로모션 화면들이 씨름의 묘미를 제대로 전달해준다. 방송화면 갈무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한국방송>(KBS) 스포츠예능 <씨름의 희열>
씨름의 부활 꿈꾸는 16인의 선수
‘기술씨름’ 경량급 천하장사 도전기
조명받지 못하던 이들을 위한 무대

촬영·편집으로 씨름의 정수 뽑아내
수싸움 등 지적인 스포츠 면모 전달
씨름 모르는 시청자도 승부에 매료

<한국방송>(KBS) 스포츠예능 <씨름의 희열>에 출연하는 두 선수가 모래판 위에서 서로 샅바를 잡고 힘을 겨루고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슬로모션 화면들이 씨름의 묘미를 제대로 전달해준다. 방송화면 갈무리

이제 웬만해선 남자들만 우르르 몰려다니는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방송>(KBS)이 지난해 말 선보인 씨름 토너먼트 예능 <씨름의 희열>만큼은 이상하게 너그러워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주변에 티브이 좀 본다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남녀노소 너나 할 것 없이 <씨름의 희열>이 얼마나 잘 만든 프로그램이며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지 공감대가 형성된다. 아직 시청률은 2~3%대에 머물러 있지만, 온라인 버즈(인터넷에서 정보가 언급되는 양)만 놓고 보면 한국방송 프로그램 사상 최고 수준이란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씨름의 희열>에 매료되는 걸까? 어떤 이들은 황찬섭, 허선행 등 꽃미남 스타 선수들을 향한 20~30대 여성 시청자들의 환호를 이야기하고, 어떤 이들은 <제이티비시>(JTBC) <뭉쳐야 찬다> 등 스포츠 예능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최근의 방송가 분위기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글쎄, 잘 모르겠다. 20~30대 여성 시청자들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잘생긴 사람이 무더기로 나온다는 이유로 잠시 흥미를 가질 수는 있어도, 오직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미없는 프로그램을 계속 참고 시청하는 사람은 없다. 잘생긴 아이돌 연습생이 무더기로 출연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던 일련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생각해보면 답은 자명하지 않은가? 출연하는 사람들의 스타성도, 결국엔 그 빛을 발할 만한 무대가 잘 만들어져 있어야 먹히는 법이다. <씨름의 희열>에 대한 초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꽃미남 스타플레이어들의 힘이 작용했을지는 몰라도, 그 관심을 충성도로 바꾼 건 프로그램 자체의 힘이다.

여타 스포츠 예능들과 <씨름의 희열>을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다소 의아한 일이다. <뭉쳐야 찬다>는 타 종목에서 전설이 되었던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이 축구라는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며 생기는 일들을 다룬 프로그램으로,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스포츠 스타들이 전혀 다른 종목에 도전하며 바닥부터 천천히 기본기를 다지며 올라오는 성장 드라마가 주 동력이다. <뭉쳐야 찬다> 성공 이후 등장한 각종 스포츠 예능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본업이 따로 있는 연예인이나 셀러브리티들이 모여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현역 선수들이 자신이 평생 몸 바쳐 온 종목을 갖고 진검승부를 펼치는 <씨름의 희열>과의 공통점이라고는 ‘스포츠’라는 한 단어밖에 없다. <씨름의 희열>은 더 정밀하게 분석될 필요가 있다.

<뭉쳐야 찬다>와의 차별성은?

<씨름의 희열>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한다면, 재료 본연의 맛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씨름이란 종목이 흥미로워서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일 뿐, 제작진이 별로 한 게 없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원래 요리에서 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를 보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드문 법이다. 씨름이란 종목 자체의 매력을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보여주기 위해 고심한 흔적은 프로그램 곳곳에서 보인다. <씨름의 희열>은 씨름이 단순히 덩치로만 하는 싸움이 아니라 치밀한 수싸움과 화려한 기술이 조화를 이룬 지적인 스포츠라는 사실을 새삼 알려준다. 상대의 무게중심을 어떻게 뒤흔들 것인가. 자신보다 한 체급 높은 금강급의 최강자 임태혁을 만난 태백급의 윤필재는 키와 체격의 차이를 속전속결의 앞무릎치기로 극복해낸다. 왼손으로는 샅바를 잡아당기며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른 무릎을 쳐서 다리의 중심을 뺏고, 곧이어 오른발로 바닥을 긁는 차돌리기로 상대의 무게중심을 뒤흔드는 연속 동작이 경기 시작 1초 만에 연결되는 이 어마어마한 승부수 앞에서, 씨름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전율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조별리그 B조 최약체로 손꼽히던 태백급 박정우가 금강급 황재원을 맞이해서 선보인 전략은 또 어떤가. 들배지기와 안다리로 승부를 본다고 알려져 있던 박정우는, 그 전략이 먹히지 않을 상대인 거구의 황재원을 공략하기 위해 호각이 울리자마자 한쪽 샅바를 놓고 몸을 뒤로 뺐다. 당황한 황재원이 팔을 빼서 샅바를 고쳐 잡으려 하는 순간, 박정우는 몸을 비틀어 방어하며 상대의 두 손이 모두 샅바를 놓치도록 유도했다. 상대는 두 팔을 다 놓치고 자신은 한쪽 팔이 살아 있는 상황. 박정우는 상대의 샅바를 당기며 뱅글뱅글 돌아 중심을 무너뜨린 뒤 기습적으로 상대의 오금을 당기며 뒤집기에 성공한다. 자신의 주특기를 공략해올 상대를 맞이해 한 번도 실전에서 선보인 적 없는 전략을 과감하게 선보이는 이 변칙적인 수는 사전에 치밀하게 짠 전략이 없이는 실행 불가능한 것이다.

<한국방송>(KBS) 스포츠예능 <씨름의 희열>에 출연하는 선수들의 프로필 사진.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선수들의 서사가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한다. <한국방송> 누리집 갈무리

물론 씨름을 오래 봐온 이들이라면 이와 같은 기술씨름의 진면모를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씨름의 희열>이 겨냥하는 건 씨름을 꾸준히 사랑해온 팬들이 아니라 씨름에 대해 잘 모르는 평범한 시청자들이다. 그래서 <씨름의 희열>은 이 화려한 기술을 잘 설명해내기 위해 예능이 보유한 모든 자원을 투입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초고속 촬영으로 잡은 슬로모션 장면을 보여주고, 각 기술이 들어가는 순간마다 자막과 효과음을 입혀 어느 대목에서 어떤 기술이 쓰였는지를 단계별로 나누어 설명해준다. 각 선수의 경기 전후 인터뷰 클립들을 중간중간 삽입해가며 각자 이번 판에선 어떤 전략을 구사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선수들의 입으로 직접 설명하고, 경기를 치러보고 난 뒤의 소감을 통해 각 경기가 선수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려준다. 슬로모션 다시보기까지는 일반 씨름 중계에도 동원이 가능한 장치이지만, 각 선수의 입으로 듣는 전략 해설이나 친절하게 자막으로 삽입되는 기술 해설은 이것이 사후 편집한 예능이기에 가능한 장치들이다. 이런 사후적인 장치들 덕분에 씨름을 잘 모르는 우리도 1초 만에 윤필재의 앞무릎치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박정우의 뒤집기 전략이 어떤 맥락을 이용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친 보물들

막상 뜯어놓고 보면 충분히 매력적인 스포츠임에도 아주 오랜 시간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인 비인기 종목이었다는 사실 또한 <씨름의 희열>이 지닌 서사를 배가시킨다.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축구나 농구와 달리, 씨름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인기가 꺾이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정말 ‘보는 사람만 보는’ 스포츠가 되었다. 체격으로 승부를 보는 소위 ‘무게씨름’이 주류가 되며 기술씨름의 명맥이 끊기고, 씨름계의 파벌싸움이 지속되며 씨름은 과거의 위상을 잃었다. 경기장이 텅텅 비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라는 조건과, 체급 차이 때문에 천하장사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탓에 그나마도 주목을 덜 받는다는 태백급·금강급의 조건이 더해지며 <씨름의 희열>은 자연스레 언더독 스토리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열심히 운동을 계속해온 선수 열여섯명의 서사는 그 자체로 보는 이를 설득해내는 힘이 있다.

결국 ‘부당한 이유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던’ 언더독들에게 제 이야기를 펼쳐 보일 무대를 마련해주고, 그들의 매력과 서사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 <씨름의 희열>의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어쩌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모두 다 입을 모아 <씨름의 희열>의 선전을 응원하는 건, 씨름 자체에 대한 애정과 좋은 프로그램에 대한 환호만큼이나 앞으로 방송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았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세상의 주목을 덜 받았던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진면모를 조금이라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만일 <씨름의 희열>이 3% 시청률의 벽을 깨고 더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혹시 아는가. 티브이도 그간 주목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쳐버린 것들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할지.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면 세상은 더 많은 주목과 기회가 필요한 언더독으로 가득하고, 경청해야 할 이야기로 가득하다. 2020년의 티브이가 부디 눈과 귀를 더 크게 열기를 바란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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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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