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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쟁 국회’ 끝내고 ‘경쟁 국회’ 시작해야

등록 2020-02-01 09:31수정 2020-02-02 16:56

[토요판] 표창원의 여의도 프로파일링
②‘국회 전쟁’은 왜 일어나나

몸싸움, 보이콧, 장외투쟁, 고소고발
극단적 대치한 20대는 ‘전쟁 국회’
‘패스트트랙 고지전’ 싱겁게 끝나

기원 오래돼 종전 해법도 어려워
모두 끝내자고 하지만 결국 상대 탓
언론 등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들

전쟁 국회는 젊은 의원들 불출마 배경
21대 국회는 정상적 모습 회복해야
지난해 4월29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공수처법안 저지 등을 위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농성하고 있다. 20대 국회는 끝없는 대치로 이어져 ‘전쟁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동취재사진단
지난해 4월29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공수처법안 저지 등을 위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농성하고 있다. 20대 국회는 끝없는 대치로 이어져 ‘전쟁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동취재사진단

우리 국토를 초토화하고 수백만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한국전쟁, 전세계를 파괴와 살상의 참극으로 몰아넣은 양차 세계대전, 지금도 미국과 이란 간에 형성된 불길한 전쟁의 기운 등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 전쟁과 내전을 피하고 막을 수 있었다면 인류와 지구는 더 행복하고 지속가능해졌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군사학 교과서로 꼽히는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다’(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강조하고 있다.

전쟁의 가장 큰 해악은, 의도적인 목표인 군인 또는 군사시설 장비의 살상·파괴보다 의도하지 않은 대상인 민간인과 주거·문화 시설의 살상·파괴 등 소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훨씬 더 크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최근엔 이란군(혁명수비대)이 우크라이나 민간 여객기를 미사일로 격추한 참사, 시리아·레바논·팔레스타인 등에서 폭격으로 숨지거나 중상을 입은 어린이들의 처참한 모습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러다 보니 미국 독립 및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류 역사상 결코 ‘좋은 전쟁’이란 있어본 적이 없고 ‘나쁜 평화’도 있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물론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 연맹의 반인륜 침략전쟁을 막기 위한 연합군의 참전 등 명분과 필요성이 명확한 전쟁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전쟁은 다 나름의 명분과 필요성을 내세우고 시작한다는 문제가 있다. 설사 역사와 시대가 명분과 필요성을 인정하는 전쟁이라 하더라도 외교적 협상과 정치적 노력 등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쟁보다는 늘 옳다는 것이 인류의 역사적 깨달음이다.

머나먼 ‘전쟁 국회’의 기원

실제 전쟁뿐 아니라 정당 간의 정치, 기업 간의 경쟁 혹은 개인 간의 관계 역시 ‘전쟁’의 방식과 태도, 심리로 임한다면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20대 국회를 ‘전쟁 국회’라 칭하는 데 반대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시작부터 4년 내내 극단적 대치와 보이콧, 합의 파기, 몸싸움, 장외 집회, 고소·고발 남발, 장외 투쟁, 단식, 삭발 등 상대를 ‘적’으로 설정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에게 가능한 한 큰 해를 입혀서 짓밟고 승리를 쟁취해내기 위한 ‘전투’가 계속되어왔다.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최대 격전지는 당연히 ‘패스트트랙 고지전’이었다.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 유치원 3법 등 민주당 중심의 ‘4+1 연합군’과 ‘자유한국당’이 사활을 걸고 맞붙은 전투는 2020년 1월13일 월요일 저녁 8시,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너무 싱거운 승리였다. 무제한 반대토론(필리버스터)을 신청하며 끝까지 항전을 선언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표결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투를 포기하고 퇴장해 국회 본회의장 오른쪽 좌석은 모두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전투’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지휘부를 포함한 23명의 의원이 기소되고 37명은 ‘기소유예’ 처분되는 등 처참한 상처와 패전의 아픔을 안아야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전투가 진행 중인 조국 재판, 유재수 사건, 울산시장 선거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기회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고, ‘총선’이라는 다음 전투에서 전세를 뒤집기 위해 총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역전극을 만들기 위한 비장의 승부수인 ‘보수 대통합’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명확한 ‘적화야욕에 사로잡힌 북한 공산당 세력의 비겁하고 잔인한 남침’인 한국전쟁의 시작에 대해, 북한과 그 동조세력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미국-이란 폭격전의 시작도 서로 상대방의 공격 혹은 공격 시도에 대응한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한다. 제20대 국회 ‘전쟁’의 원인과 시작, 책임에 대해서도 여야의 입장차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가깝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뒤이은 ‘적폐 수사’의 정당성·적절성·책임 등을 둘러싼 시각차, 멀게는 이승만 정권부터 군사정권 시절까지 민주화운동과 탄압을 둘러싼 논쟁, 더 멀게는 일제강점기 평가와 항일 운동가들의 이념 지향에 이르는 ‘역사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국회 초선 의원들이 지나친 정쟁에 지쳐 상대 당 의원들에게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느냐’고 물으면 재선 이상 상대 당 의원들은 ‘당신들 당 선배 의원들은 과거에 더 심했다’고 답하곤 했다.

제20대 ‘국회 전쟁’의 기원이 매우 오래된 것이다 보니 ‘종전’을 위한 해법 찾기도 쉽지 않다. 보수·진보의 이념 차이나 여야 간 선거 유불리 등 ‘쟁점’이 없는 소위 ‘비쟁점 민생법안’까지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걸고 의사일정을 방해하는 기이한 일이 발생할 정도니, 차이를 인정한 상태에서 ‘공통점’을 찾아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전통적인 시도와 접근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의원들은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사사건건 충돌하고 공격하고 싸우는 데 지치고 질리고 너무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논의가 ‘어떻게’ 끝내야 할지에 이르면, ‘상대방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잘못된 과거 일을 되돌려야 한다’며 또다시 날을 세운다. 모두가 끝내고 싶고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도대체 끝나기는 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국회 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는 자들

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는데 반대로 행하는 이들이 있다. 초등학생 중에도 이간질하고 싸움을 붙이는 아이들이 있고, 군대·회사·동호회·이웃에도 그런 이들이 꼭 있다. 재미 삼아 그러기도 하고 이익을 위해서인 경우도 있다. ‘국회 전쟁’을 부추기는 이들 중 첫번째로 꼽아야 할 대상은 ‘언론’일 것이다. 각 당 대변인들은 수시로 기자들로부터 ‘상대 당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뭐라 대응하시겠어요?’라고 묻는 전화를 받는다. 무대응하면 일방적으로 상대방 얘기만 보도될 테니 여론전에서 불리할 것이란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당연히 ‘강한 대응’이 나오게 되고 한동안 후속 기사거리가 될 ‘싸움판’ 하나가 만들어진다. 방송의 정치 대담 프로그램도 아예 대놓고 논쟁적 주제로 양 진영 정치인, 논객을 불러 싸움을 붙이고 구경꾼을 모은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 회의장에서는 전날 혹은 당일에 보도된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거론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발언과 날 선 역공이 가해지고, 그날의 안건인 법안 심사 등은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 채 정회나 파행으로 이르는 일이 다반사다. 그 과정과 결과는 다시 언론에 보도되고 험악한 표정과 전투적 표현은 그날의 뉴스 화면을 장식한다. 순조롭게 이루어진 회의,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마련한 민생법안 같은 ‘정상적인 정치’ ‘정상적인 국회’ 모습은 어지간해선 언론에 등장하지 않거나 단신으로 처리되고 만다. 대기업이나 특정 산업, 직능 단체 등 이익집단들이 자기편 정치인들에게 ‘싸워라’ ‘공격해라’ ‘밥값 해라’ 요구하며 ‘국회 전쟁’을 조장하기도 한다. 정상적인 정치, 국회 일정이 진행되면 통과될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입법이나 정책, 혹은 수사 등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각 당이나 주요 정치인의 적극 지지자들 역시 ‘정치 전쟁’을 요구하고 부추긴다. 조용하고 차분한 대화와 토론, 타협과 협상이 이뤄지면 ‘사악한’ 상대측에게 말려들어 피해를 당할 것이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최근에는 유튜브 등에서 ‘정치 전쟁 중계’ ‘편파 해설’ ‘용병 역할’ 등을 하면서 이익을 올리는 ‘정치 군수업자’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들과 ‘공익적 목적’ ‘선한 의지’로 민주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적극적 정치 참여를 하는 행동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필요하다.

실제 전쟁이 그렇듯 ‘정치 전쟁’ 역시 수많은 사람과 가정과 사회와 환경을 파괴하는 폐해를 남기지만 일부에게는 엄청난 이득을 안겨준다. 그들은 세력의 확장, 권력의 강화, 막대한 경제적 이익, 내부 분열의 해결, 재앙적 실수나 범죄적 잘못 덮기 등 이익을 얻지만, 그 대가로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엄청나다. 앞서 언급한 물리적인 피해를 제외하고, 소위 ‘전시 체제’로 재편되고 동원되는 사회와 조직은 상명하복의 경직된 문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냉혹한 전체주의, 피해의식과 공격성 분노 등 심리적 위해요인이 가득 찬 ‘위험사회’로 나아가는 데 영향을 준다. 이런 사회에서 자유와 창의는 억눌리고 학술, 문화, 예술, 경제, 스포츠 등 각 분야의 인재가 제 실력을 발휘하기보다 권력과 관계 등에 의해 유린되기 일쑤다.

‘전쟁 국회’ 역시 마찬가지다. 토론과 협상, 연설과 설득, 갈등의 조정과 문제의 해결, 입법과 정책 등 제 기능과 역할은 사라지거나 뒤로 밀려나고 고발과 폭로와 막말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며 충성심과 권력과 관계에 따라 권한, 역할, 지위, 기회가 주어진다.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거나 민사재판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정치인들이 사과나 반성은커녕 반복해서 상대방에 대한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폭로와 인신공격, 막말을 해대는 현실을 보면 자명하다. 국회 패스트트랙 폭력사태 범죄 피고인들에게 공천을 걱정하지 말라는 자유한국당 지도부, 인사청문회장을 비난과 막말로 물들인 의원들에게 표창장을 주고 박수 치는 의원들의 모습은 정상적인 정치 상황이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며 이런 정당은 유권자들의 심판에 의해 소멸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좌우, 진보와 보수, 여야 간 전쟁 중인 한국 정치 상황에선 큰 문제 없이 지나간다. 오히려 전통적인 지지층으로부터 환호와 박수와 응원을 받는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지난해 12월6일 국회 본청 앞에서 계속된 패스트트랙 통과를 위한 국회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지난해 12월6일 국회 본청 앞에서 계속된 패스트트랙 통과를 위한 국회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1대 국회를 ‘경쟁 국회’ 원년으로

‘전쟁 국회’는 제20대 국회 막바지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쟁에 지친’ 40~50대, ‘비교적 젊은’ 국회의원들이 불출마를 선언하게 된 공통된 배경과 원인이다. 민식이, 하준이, 해인이, 태호, 유찬이, 한음이 등 입법과 제도 정책의 미비로 안타깝게 숨진 어린이들의 부모들이 무릎 꿇고 호소해도 입법은 내팽개치고 싸움에만 몰두하던 일그러진 국회의 이유이기도 하다. 부동산 대책, 청년 실업, 교육개혁, 사법개혁, 자영업 위기, 경제 살리기, 북한 핵문제, 한-일 관계, 기후변화 등을 정치권과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통해 이견을 조율하고, 치열한 입법과 정책 경쟁에 몰두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처 등 국가와 국민을 위한 중요 의제에는 초당적 협력을 해내는 ‘정상적인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세계 열강의 갈등과 경쟁,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내야 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지정학적 운명이 ‘정치 전쟁 종식’을 강하게 요구한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민족적 과제는 ‘국회 전쟁’을 당장 끝내라고 엄중하게 채근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도 빈곤과 차별과 결핍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명령은 더욱 긴급하다. 지금부터 4·15 총선까지, ‘전쟁 정치’를 조장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정치꾼들을 솎아내고, 토론과 협상을 통한 갈등 조정, 입법과 정책 능력,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익적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갖춘 참일꾼들을 선출해 제21대 국회를 정상적인 정치, ‘경쟁 국회’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당과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과 시민, 우리 모두의 숙제다. 이제 시작이다.

▶표창원: 국회의원이자 ‘범죄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박사가 의원으로서 보고 듣고 겪은 사실과 언론과 정부, 대중 등 정치 환경, 정치인 언행의 동기와 의도 등을 종합·분석해 독자들에게 보고한다. 한국 정치의 병리현상을 해부하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국회와 정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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