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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거리의 만찬’ 김용민 하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등록 2020-02-07 22:24수정 2020-02-08 02:31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한국방송>(KBS) <거리의 만찬>

새 진행자 김용민 고집하다 된서리
정봉주 성추행 옹호 ‘문제적 인물’
‘여성 시선’ 호평 프로에 왜 남성?

KBS, 김용민 지키려 거짓과 기만
제작진 “새로운 시도 필요성 제기”
‘대체 어디를 봐서 새로운 시도인가’
방송인 박미선과 가수 양희은·이지혜가 진행하는 &lt;거리의 만찬&gt;은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사라는 차별성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진행자 세명이 기차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lt;거리의 만찬&gt; 방송 화면 갈무리
방송인 박미선과 가수 양희은·이지혜가 진행하는 <거리의 만찬>은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사라는 차별성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진행자 세명이 기차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거리의 만찬> 방송 화면 갈무리

<거리의 만찬>은 한국 시사프로그램에서는 드물게 전원 여성이 진행하는 시사 토크 프로그램이었다. 파일럿부터 시즌1 종영까지 진행석을 지킨 박미선을 중심으로 가수 양희은과 이지혜가 탄탄한 호흡으로 함께했으며, 지금껏 정치학 박사 김지윤, 국회의원 이정미, 방송인 김소영 등이 진행자 자리를 거쳐 갔다.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사’라는 점은 <거리의 만찬>의 핵심 정체성이었고, 수많은 사람이 지지와 호평을 보낸 이유였다.

그런데 갑작스레 시즌1 종영이라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조금의 시즌 휴지기도 없이 바로 배우 신현준과 시사평론가 김용민을 진행자로 앉힌 시즌2가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용민의 여성 혐오적인 행보로 보았을 때 여성의 시선으로 시사를 다루는 것을 모토로 내세웠던 <거리의 만찬> 진행자로 그를 섭외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에 공감한 수많은 시청자는 <한국방송>(KBS) 인터넷 누리집에 마련된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 진행자 교체에 반대한다는 청원을 올렸다. 시청자 청원 제도는 한달 안에 1천명의 시청자 청원이 모이면 <한국방송>이 공식 입장을 밝히게 되어 있는데, 이번 청원은 시작한 지 3일 만에 1만명을 돌파했다.

수많은 시청자의 항의 전화와 온라인 항의 청원에도 까딱하지 않던 <한국방송>과 김용민은, 양희은이 직접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방적으로 ‘잘렸다’는 입장을 밝힌 뒤에야 꼬리를 내렸다. 김용민은 양희은이 하차한 저간의 사정을 몰랐다며 그걸 알고도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밝히며 자진 하차했다. 그동안 시즌1 진행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하차를 논의했다고 주장했던 <한국방송>은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제작발표회는 취소됐고, 시즌2 제작은 원점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어떤 이들은 ‘만시지탄’이라는 표현을 쓰며 인제야 일이 순리대로 됐다고 이야기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김용민의 하차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과거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을 강간해야 한다고 말했고,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 고발이 나오자 ‘같이 비를 맞겠다’며 가해자로 지목된 자의 편에 섰다.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코너명을 ‘버닝선대인’이라고 지으며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건을 얄팍하게 소비하려고 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여성을 내세워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남성을 앉히는 것부터가 잘못된 행보였고, 그중에서도 김용민의 기용은 악수 중의 악수였다. 그의 하차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당연한 일이었다.

양희은 SNS “잘렸다”

그러니 이번 일은 그의 하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하차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방송>은 김용민을 사회자 자리에 지키기 위해 온갖 거짓말과 시청자 기만을 숨도 쉬지 않고 저질렀다. 우리는 그 거짓과 기만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체 <한국방송>이 왜 그런 무리한 거짓말까지 감수해가며 김용민을 지키려고 했던 건지 따져 묻고,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동참한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차 통보 시점부터 살펴보자. <경향신문> 관련 기사를 보면, 강희중 <한국방송> 시사교양 2국장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마지막회 촬영을 진행하기 이전에 엠시들에게 연락해 충분한 설명과 함께 개편을 알렸다. 촬영장 분위기 등을 고려해 통상 개편을 한달 앞두고 통보한다”고 밝혔다. 이는 거짓말이다. 진행자들이 일방적으로 시즌 종영 통보를 받은 건 마지막 방송 2주 전이었다. 같은 기사에서 인용된 한 관계자는 “촬영장에선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 5년도 같이 갈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마지막 방송 2주 전에 하차 소식이 전해졌다. 다들 황당해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토크쇼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이지혜도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다. “시청률이 5% 이상이 나왔는데 하루아침에 종영 통보를 받았다.” 이런데도 <한국방송>은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항의에도 “시즌1 진행자들과 원활히 소통했다”며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시청자들에게 적당히 거짓을 둘러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 동시에, 부당하게 자리를 잃은 데뷔 49년차 가수와 33년차 코미디언, 22년차 방송인이 모두 입을 닫고 자신들의 거짓말에 동참해줄 거라고 믿은 것이다.

기만은 계속된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한국방송>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 기사에서 시즌1에서 여성과 관련된 주제가 많다고 강조를 하셨는데 <거리의 만찬>에서 다룬 주제는 여성 이슈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주제였다. 소외계층을 주로 다뤘고, 시즌2도 같은 주제다. 시즌2에선 현장성을 강화한다. 스튜디오에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현장으로 직접 가고, 예를 들어 어떤 곳에서 파업하면 그 현장에 직접 가겠다. 현장에서 그들과 같이 식사하고 직접 현장을 보여주겠다. 물론 특별한 성별이 현장에 부합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고, 눈에 띄는 변화가 필요했다.”

이는 거짓말이다. 여성과 관련된 주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는 말은 맞지만, 그 이슈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건 <거리의 만찬>의 핵심이었다. 게다가 현장으로 직접 가고 그들과 같이 식사하고 직접 현장을 보여주는 것은 애초에 <거리의 만찬>이 호평을 받은 이유였다. 남성 진행자들이 진행하는 기존 시사프로그램들처럼 남 이야기 하듯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눈으로 현장을 둘러보고 상대의 말을 경청한 뒤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거리의 만찬>이 기존의 시사프로그램과 다른 점이었고, 여성 진행자를 기용한 이유 아니었나?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시즌1이 나올 무렵 <한국방송> 관계자들이 프로그램 설명회를 통해 직접 밝힌 내용이다.

&lt;한국방송&gt;은 &lt;거리의 만찬&gt; 진행자를 시사평론가 김용민으로 교체하려다가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시즌1 진행자 세명의 모습. &lt;거리의 만찬&gt; 방송 화면 갈무리
<한국방송>은 <거리의 만찬> 진행자를 시사평론가 김용민으로 교체하려다가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시즌1 진행자 세명의 모습. <거리의 만찬> 방송 화면 갈무리

거짓말, 시청자 기만

황당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김용민의 하차가 결정되기 전 <뉴시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국방송> 관계자는 “정책상 시청자 청원은 한달 동안 1000명 이상 동의하면 제작진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서도 “최장 기간은 두달이다. 청원 수를 집계하는 데 한달을 잡고, 이후 제작진은 한달 이내에만 입장을 밝히면 된다. <거리의 만찬2> 간담회에서 더욱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진행자 교체 반대 청원이 시작된 것은 2020년 2월4일, 예정되어 있던 <거리의 만찬2> 간담회는 2월12일, 예정되어 있던 첫 방송은 2월16일이었다. 그러니까 관계자의 말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항의를 하더라도, 방송을 내보낸 뒤에 입장을 밝혀도 무방하니 강행하겠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방송>은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진행자 교체 계획은 없다며 김용민이 과거 여성혐오 발언을 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적임자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게 무리하게 거짓을 늘어놓으면서까지 여성 진행자를 몰아내고 남성 진행자를 기용하며, 김용민을 진행자 자리에 앉히려고 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김용민의 하차가 결정된 뒤 제작진은 공식 입장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시청률 경쟁을 비롯한 대내외적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제작진은 오랜 고심 끝에 자체적인 개편안을 마련하였다.” 지금껏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자리에 여성을 기용했던 기존의 시도가 이미 ‘새로운 시도’였다. 그 자리를 이미 수많은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심심찮게 물의를 빚은 전력이 있는 남성 시사평론가에게 맡기는 게 대체 어디를 봐서 ‘새로운 시도’인가?

난 <한국방송>이 김용민을 고집해야 했던 이유를 솔직하게 밝히길 바란다. 아울러 원점에서 논의하는 김에, 기존 진행자 3명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다시 모셔오길 바란다. 2월7일 기준 1만4천여명이 서명한 시청자 청원의 마지막 문장은 단순히 “김용민은 안 됩니다”가 아니라, “양희은님, 박미선님, 이지혜님이 엠시 그대로 진행하게 해주세요”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이처럼 숨도 쉬지 않고 시청자에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기만하라고 <한국방송> 노조의 투쟁을 지지했던 게 아니란 것도 기억해주길 바란다. 당신들의 투쟁에 연대했던 우리의 기억이 왜 환멸과 후회로 남아야 하는가?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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