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딸인 하진이는 공주 목소리와 아줌마 목소리를, 아저씨 목소리와 괴물 목소리를 모두 내며 동화책을 읽어주는 나를 굉장히 좋아한다. 김비씨 제공
아직 채 잠이 깨지 않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한 번도 그 시간에 전화가 울린 적 없어 반쯤 감긴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낯선 이름이 떴다. 신랑의 여자 사람 친구인 소라의 남편 백선씨.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으니, 차분하고 조용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죄송한데, 오늘 소라가 몸이 안 좋아 한의원에 다녀와야 해서, 딸아이를 잠시 봐줄 수 있느냐는 이야기.
하 수상한 시절이라서인지, 단순히 감기라고 말했을 뿐인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가야겠다고 마음먹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자신이 집에 있어야 하는데 하필 교사로 재직 중인 학교에서 1박2일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고, 그래서 퇴근하고 아내와 아이를 돌봐줄 수 없으니 대신 좀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이었다. 게다가 소라는 둘째를 임신 중이라, 남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잔뜩 묻었다.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서, 소라에게 연락했다. 그녀와 상의도 없이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소라는 남편이 전화까지 했느냐고 되물었다. 오후에 잠시 한의원에 다녀와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서둘러 신랑과 소라의 집에 도착하니,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곧장 한의원으로 향했고, 현관문 안쪽에서 두 사람의 딸, 하진이가 우릴 맞았다.
꽃 블록에 별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모! 땀똔!”
이제 27개월이 된 하진이는 말이 조금 늦었는데, 지금은 쉬운 음절의 두 글자의 말만 반복하는 중이다. 그래도 아기 적부터 자주 만난 덕분인지, 엄마가 없는 와중에도 ‘이모’인 나와, ‘땀똔’인 나의 신랑을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자 하진이는 내 손을 붙들어, 중고로 얻은 장난감 집과 그 집 안에 쌓인 장난감들을 모두 끌어내 자랑했다. 그중에 꽃 모양과 별 모양, 하트 모양의 플라스틱 블록을 앞에 놓고 열심히 맞췄는데, 밑이 쑥 빠지는 것이 단순히 조립을 위한 블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도 하진이는 꽃 모양 틀에 꽃을 끼워넣고, 별 모양 틀에 별을 끼워넣느라 열심이었다. 이따금 꽃 모양에 별을 끼워넣거나, 하트 모양에 꽃을 끼워넣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칭얼거리며 “안 돼”를 반복했다. 꽃 모양에 별 모양을 끼워넣으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꽃 모양에 왜 별은 들어가지 않느냐고 투정부리는 중이었다. 다시 꽃에 꽃을 맞춰주고, 별에 별을 맞춰줬지만, 아이는 계속 꽃에 별을 넣고 싶어했다. 물론 꽃 블록에 별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아이의 재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장난감 집에 들어 있던 동화책들을 주르르 끌고 나와 내 앞에 펼쳐 놓았다. 내가 동화책 읽어주는 것을 하진이는 특히 좋아했는데, 그럴 때면 내 품이나 무릎 위에 올라와 앉아서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집중했다. 나는 단순히 읽어주는 게 아니라, 동화책 속 그림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주는 편인데, 공주 목소리와 아줌마 목소리를, 아저씨 목소리와 괴물 목소리를 모두 낼 수 있는 나를 하진이는 굉장히 좋아했다.
동화책은 늑대가 어느 샘 속에 자신의 본성인 ‘토끼’가 비친다는 것을 알고서, 다른 동물들에게 자신의 실제 모습을 들킬까 샘 속에 비친 토끼를 없애기 위해 애쓰는 내용이었다. 샘을 없앤다고 자신의 본래 모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샘을 모두 마셔 없애겠다고 하고 다른 동물들이 볼까 전전긍긍하는 늑대 이야기.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집착하고 지키려고 하는 어리석은 늑대와 다른 동물들의 이야기.
딩동. 엄마가 돌아오면 같이 먹기로 한 치킨이 도착하자, 여느 아이가 그렇듯 하진이는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값을 치르고 치킨을 식탁에 놓고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했더니, 놀랍게도 하진이는 향기로운 냄새에 이끌리면서도 다시 또 동화책 앞에 와 앉았다. 전에 보았을 때에는 칭얼거리고 고집부리며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매번 난리를 치더니, 오늘은 너무도 얌전하게 우리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언어가 있다는 것이, 한 사람을 이리도 변화시키는 걸까?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것.
동화책을 다 읽고서, 아이는 가방 자랑도 하고, 가방을 제 자리에 잘 걸 수 있다는 것도 자랑했다. 빨간 물방울무늬 비옷도 자랑하고, 비옷을 입어보려다가 한 팔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자, 나에게 가지고 와 한 마디, “안 돼”. 아이에게 비옷을 잘 입혀주고, 단추까지 채워주니 또 신이 나서 온 거실을 뛰어다녔다. 바깥쪽으로 살짝 굽어 걱정이었던 다리도 이제 예쁘게 곧아졌고, 통통 뛰는 아이의 몸도 더 높이 뛰어올랐다. ‘땀똔’은 아이를 들어 비행기도 태우고, 서울 구경도 시켜주고, 슈퍼 히어로처럼 날게도 했다.
소라는 다행히 단순한 감기 진단을 받고 돌아왔고, 식탁 위에
아직 식지 않은 치킨을 펼치자 하진이가 신이 나서 들썩이다가 콜라 잔 왈칵! 빽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하진이는 가만히 들여다본다. 콜라를 닦아내며 계속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피해, 슬금슬금 내 뒤로 숨어든다. 예전 같으면 벌써 울음을 터뜨렸을 것 같은데, 입만 삐죽이며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얼굴만 빨개진다. “괜찮아, 미안해요, 다음엔 안 그럴게요, 그러면 되는 거야. 괜찮아.” 아이의 등을 토닥이고, 빨개진 얼굴을 쓰다듬고 나서야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콜라를 닦아내며 소라는 요즘은 저게 야단을 칠 때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다며, 그럴 때면 ‘에휴,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인 것 같아 약 올라 죽겠다고 다시 또 씩씩.
둘째를 뱃속에 품은 채로, 아직 채 자라지 않은 아이까지 건사해야 하는 그녀의 일상. 힘들 땐 ‘언제든 불러라, 언제든 연락해라’ 말해놓았지만, 오늘 연락은 처음이다시피 했다. 자동차로 삼십분 넘게 오가야 하는 길이라서였겠지만, 그래도 힘들고 우울해질 때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다시 또 다짐을 받아두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아무래도 신랑이랑 하진이와 방을 따로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 고단함이 눈에 선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모’가 바라는 아이의 미래
밥을 먹고 나자 다시 또 장난감 집에서 뽀로로 스티커북을 들고 나타난 아이.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옷을 입히다가 내가 서로의 옷을 바꿔 입혀놓으니, 소라는 그제야 한 번도 그렇게 바꿔 입히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무릎을 쳤다. 뽀로로는 파랑 옷, 루피는 분홍 옷, 항상 그렇게 스티커를 붙였는데 바꿔 입힐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며, 바로 자신들이 아이의 생각을 가두고 망치는 부모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엄마의 말을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하진이는 하늘 위 비행기 스티커 옆에 통통배 스티커도 붙여 놓았다. 초록색 크롱에게 분홍색 옷을 입히고, 동산 위에 나무에게도 파란 옷을 입히며 신이 났다. 아이의 재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늦은 밤, 엄마의 품에 안겨 나온 하진이는 ‘땀똔’과 ‘이모’에게 ‘선물 뽀뽀’를 해주었다. 문득 아이가 자라 이모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태생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걱정이 되었다. 친구들이 묻고, 혐오 발언들을 장난처럼 하고, ‘남자 이모’라고 놀리기라도 하면, 평생 내가 견디며 살아야 했던 그 폭력적 시간들을 저 어린것이 경험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아이는 다행히 세상의 안전한 관념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성향이었고, 최소한 스스로 힘겨운 삶을 살아낼 필요는 없겠지만, 무지한 세계가 주입하는 편견 가득한 말들로 아이가 불편해지고 혼란스러워하는 건 아닐지.
“또 와!”
배가 불룩한 엄마의 품 속에서, 하진이는 ‘이모’인 나와, ‘땀똔’인 신랑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른들도 편견과 혐오의 말들을 일상적으로 쏟아내는 시대, 약해지지 말고 오히려 더 단단해지기를. 어지러운 길 위에 주저앉지 말고, 오히려 더 자유롭고 존중을 배울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죄짓지 않고서 죄지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모는 그래서 더욱 형편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 너의 강건한 미래를 바라고 또 바란다. 볼 때마다 간절해지는 내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다시 또 그 조그만 입을 벌려 우리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또 와!”
▶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 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