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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생충’ 속 허름한 계단길이 감성사진으로 소비되는 불편함

등록 2020-02-21 19:38수정 2020-02-22 02:02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영화 ‘기생충’ 팸투어 논란

소외지역 환경 개선 ‘마을벽화’
관광객이 내던진 소음과 쓰레기
주민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냐”

‘기생충’ 팬들은 촬영지 순례
서울시는 ‘팸투어 기획’ 구상
“가난 상품화하는 건가” 비판
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일대. 연합뉴스
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일대. 연합뉴스

한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던 때가 있었다. 글 쓰는 작업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토해낼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찾은 취미였다. 살던 집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의 초록이나,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위로 길게 늘어진 해 그림자를 손에 쥘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기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글이 안 쓰이는 새벽이면 한밤의 한강으로 나가 끝없이 늘어선 교각들이 수면에 반사되는 걸 찍으며 심중의 짐을 털어버리기도 했다.

즐거운 취미였지만 오래갈 수는 없었다. 사진을 인화하고 들여다보다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단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사진들 속에는 낡은 주택가의 풍경이나, 주인을 잃고 안장도 잃은 채 버려진 녹슨 자전거, 공사장 외벽 주변을 걸어가는 행인 같은 풍경들이 섞여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황량함과 비정함을 고발하는 포토 저널리즘적 의도를 지닌 사진이었다면 찝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곱씹어봐도 내가 그런 의도를 지니고 셔터를 누른 것 같진 않았다. 난 쇠락하는 것들에서 단편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인화하고 결과물을 손에 쥔 뒤 생각해보니 그건 타인의 가난과 불행을 낭만화하는 행위였다. 나는 인화한 사진과 사진기를 서랍 깊숙이 집어넣었고, 그 뒤로 한동안 사진기를 손에 쥐지 않았다.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영화에 나온 주요 촬영지가 팬들의 순례길로 떠오르고 있다. 촬영 현장이었던 ‘돼지쌀슈퍼’ 일대에서 관광객들이 휴대전화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영화에 나온 주요 촬영지가 팬들의 순례길로 떠오르고 있다. 촬영 현장이었던 ‘돼지쌀슈퍼’ 일대에서 관광객들이 휴대전화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실 타인의 가난과 불행을 낭만화하는 시선은 미디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과거를 향수 어린 회고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가진 게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인심만큼은 풍요로웠던 그 시절’로 미화하거나, 저소득층의 거주지를 탐방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라 이야기하는 광경을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거의 따뜻한 인심’은 그 자체로 나름의 진실이겠으나, 그것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상대적 가난이 불러왔던 각종 비극은 은폐된다. ‘고전적인 마을이 지닌 정취’ 또한 나름의 멋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타임머신 운운하는 표현들은 그 지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현실을 졸지에 ‘과거’로 대상화한다. 경제적 풍요를 선취한 이들이 제 조건을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로 규정하고, 잠시 정취를 느끼기 위해 타인의 오늘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과거’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화마을 벽화 ‘붉은 래커’

비슷한 사례는 없을까? 서울 낙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이화마을에 처음으로 벽화가 그려진 건 2006년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사업’을 전개하면서 이화마을 곳곳에 해바라기 그림, 날개 그림을 비롯한 열여섯 점의 벽화가 그려졌다. 벽화는 서서히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입소문을 탔고, 방송을 타고 난 뒤에는 아예 버스째로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각종 카페나 기념품 가게, 책방 등이 생겨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지만, 애초 사업이 목표로 삼았던 ‘쾌적하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의 실현’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역 주민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집과 골목, 계단이 하루아침에 관광상품이 된 탓에, 골목은 관광객들의 목소리와 카메라 셔터음,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2016년 참다못한 일부 주민들이 “주민들이 동물원 원숭이냐”며 분노를 토해냈다. 분노한 주민들은 벽화를 회색 시멘트를 발라 지운 뒤, 그 위에 붉은색 래커로 분노 섞인 구호들을 적어 넣었다.

사람들이 찍고 싶었던 건 벽화일 뿐, 타인의 가난이 아니지 않으냐 되묻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화마을의 벽화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주된 이유는 그 그림이 그려진 곳이 낡고 오래된 주택가 담벼락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들은 ‘낡음에서 피어난 새로운 아름다움’ ‘풍요롭지 않은 곳에서 피워 올린 풍요로운 희망’ 같은 역설을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애초에 소외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그를 통해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벽화의 목적이었지만, 결국 그림을 즐기는 주체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이 아니라 그 역설을 소비하고 싶었던 외부인들이었다는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크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는,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 <트레버 노아: 그 엄마에 그 아들>(Patricia’s Son)에서 백인 친구들과 발리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진짜 발리를 만나는 체험’이라는 가이드의 호들갑과 함께 도착한 곳은 현지 주민이 사는 가정집이었는데, 트레버 노아가 남이 사는 집을 멋대로 구경해도 되는가 싶어 머뭇거리는 동안 그의 백인 친구들은 거리낌 없이 사진을 찍고 낡은 집과 세간살이를 만지며 감탄한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구나!” “지금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누리고 살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돼!” 저개발국가 국민이 일상으로 경험하는 가난을 잠깐의 유희로 소비하는 백인 친구들의 행태에 당황하던 기억을 고백하며 트레버 노아는 농담처럼 덧붙인다. “흑인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가 필요해요. 백인들이 즐기는 건 우리랑 다르더라고요.”

소외지역 주민들의 문화 환경을 조성하려고 벽에 그린 그림의 소비 주체는, 주민이 아니라 잠깐 들러 낭만을 즐기는 관광객으로 변질됐다. 영화 속에서 기우(최우식·오른쪽)와 기정(박소담)이 화장실에서 휴대전화 신호를 잡고 있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소외지역 주민들의 문화 환경을 조성하려고 벽에 그린 그림의 소비 주체는, 주민이 아니라 잠깐 들러 낭만을 즐기는 관광객으로 변질됐다. 영화 속에서 기우(최우식·오른쪽)와 기정(박소담)이 화장실에서 휴대전화 신호를 잡고 있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구경거리로 전락한 일상

트레버 노아의 백인 친구들, 이화마을 벽화를 사진 찍으러 갔던 수많은 관광객들, 그리고 함부로 남의 동네 사진을 찍으며 흐뭇해했던 과거의 내가 공유하는 함정이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부유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잠깐 ‘독특한 체험’을 하기 위해 타인이 경험 중인 매일의 일상을 멋대로 소비한다는 것 말이다. 트레버 노아의 백인 친구들은 잠깐 발리 사람의 세간살이를 만지고 감탄하며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집주인은 자신의 일상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걸 견뎌야 한다. 이화마을 계단에 그려진 소박한 꽃 그림을 보며 ‘감성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행복해하며 귀가하면 되지만, 매일 출퇴근길에 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이들은 자신들에겐 현실인 것이 남에겐 ‘감성 사진’의 배경일 뿐이란 사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에 이어 세계 유수의 시상식을 석권하고 마침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자, 팬들은 영화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가 기념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다. 영화 속 피자집 ‘피자시대’로 등장한 서울의 한 피자 가게, 주인공 기우(최우식)가 친구 민혁(박서준)에게 영어 과외선생 자리를 물려받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 장소인 동네 슈퍼 앞, 기우네 가족들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서 빠져나와 도망칠 때 지나가는 자하문 터널 계단 등은 영화 속 촬영지를 순례하는 열성 팬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사람들이 실제 촬영지를 순례하고 싶어하는 걸 마냥 나무라기는 어렵다. 그러나 박 사장네 집 앞 골목처럼 단정한 부촌 대신, 기우네 가족이 견디는 상대적 가난을 담고 있는 로케이션 장소에만 사람들의 발길이 쏠리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영화가 거둔 성과에 신이 난 서울시는 누리집에 ‘영화 기생충 촬영지 탐방코스’를 올리고 “국내외 영화 팬, 영화 전문 리뷰어(인플루언서) 등과 함께하는 팸투어도 기획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상에서 즉각적으로 ‘가난을 상품화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을 얻어맞은 뒤 화급히 ‘대규모로 진행하려는 것은 아니며 촬영지를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정보 제공의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지만, 이게 과연 규모의 문제인 걸까? 한명이 하나 여러명이 하나, 행위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잘못된 걸 알았다면 조용히 계획안을 서랍 속에 넣고 닫으면 된다. 과거의 내가 사진과 사진기를 서랍 안에 밀어 넣었던 것처럼.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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