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체육단체 및 기관종사자 성폭력 등 실태조사 중 ‘직장 내 괴롭힘’ 유형 피해 경험률. 인권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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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좀 해’, ‘회사 왜 다녀? 시집이나 가서 골프나 치러 다녀’, ‘남자친구 있냐’, 아침에 피곤해 보이면 ‘어제 남자친구랑 뭐했냐’ 등을 말하곤 했습니다.” (30대 여성, 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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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이나 식사 자리에서 어른이 숟가락 놓기 전에 먼저 놓지 말라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합니다. 심지어 최고 윗사람이라는 분은 본인은 모르는지 아는지 어깨를 주무르고 등 허리춤을 쓰다듬으며 성희롱도 합니다.” (20대 여성, 비정규직)
지난해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대한체육회와 대한장애인체육회 등 체육 관련 단체나 기관에서 일하는 여성 종사자의 절반가량이 직장에서 성폭력 등 괴롭힘 피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5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체육관련 단체·기관 종사자 성폭력 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2019년 대한체육회와 대한장애인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체육관련 단체와 기관에 종사하는 137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하고 이 가운데 21명은 심층면접 조사를 진행했다. 체육선수나 지도자를 제외하고 종사자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결과, 응답자 가운데 34.1%(470명)가 ‘최근 1년 이내 직장 내 괴롭힘을 한 번이라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종사자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5.5%(246명), 남성은 26.8%가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직별로는 공공기관이 39.1%로 가장 많았고 시·도 체육회(37.9%), 시·도 장애인체육회(36.2%) 순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유형별로는 ‘회식참여 강요’가 16.7%,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이 16.2%, ‘욕설 및 위협적인 언행’이 13.4%로 많았다.
성폭력 피해도 심각한 수준으로 조사됐다. ‘최근 1년 이내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10%로 여성이 21.1%, 남성이 2.9%로 집계됐다. 유형별로 ‘불쾌감을 주는 성적인 농담’(6.2%), ‘회식자리 등 옆에 앉혀 술을 따르도록 강요’(4.5%), ‘포옹, 손잡기, 신체밀착, 안마, 입맞춤 등 신체 접촉’(3.3%) 순으로 높은 비율은 보였다. 또한 ‘성관계를 전제로 승진·임금인상 등을 제안’하거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무단으로 유포·판매한 행위’ 등 심각한 피해도 각각 0.3%를 차지했다.
하지만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가운데 내·외부 기관을 통해 신고하거나 절차를 밟는 경우는 10.2%에 불과했다. 피해자 중 28.2%는 신고는 물론 주변 동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주변 동료들에게만 알린 경우도 22.5%에 그쳤다. 피해를 주변에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52.2%가 “구설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인권위 심층 조사에서 한 30대 비정규직 여성은 “아이도 키우고 맞벌이 가정이다 보니까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고, 제 나이에 직장을 들어오는 게 쉽지가 않으니까 그냥 참아내고 감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인권위는 “2018년 여성가족부가 전국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체를 대상으로 시행한 정례조사에서 여성의 14.2%가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피해 경험률이 다소 높게 나타났다”며 “체육 관련 기관이나 단체가 보다 권위적이고 위계적이며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권위는 관계기관과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 체육 관련 종사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권고할 예정이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