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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물품도 체력도 바닥” 대구 간호사의 악전고투 24시

등록 2020-03-09 05:00수정 2020-03-09 07:05

[유연화씨 근무일지로 본 격리병동 현장]

병원은 며칠 전부터 ‘물품 전쟁’
“아껴 써라” 시시각각 새 지침
“간호사실 청소도 소독티슈 한 장으로”

보름째 못 쉬어…80kg 환자 옮기니 땀범벅
새 방호복 6분 만에 갈아입고 다른 병실로
오전 9시 지나 벽 보며 컵라면 아침

간호사들 “하루가 며칠 같아…
마스크도 부족해지는데 어떡하지”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간호사 유씨가 지난 7일 음압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입은 채 환자 식사와 약을 들고 병실로 향하고 있다. 유씨 제공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간호사 유씨가 지난 7일 음압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입은 채 환자 식사와 약을 들고 병실로 향하고 있다. 유씨 제공

“쌤, 수술복 사이즈 M 없는데요.”

“다른 거 입어. 그리고 소독 티슈 좀 아껴 써라. 안 들어온다.”

지난 5일 오전 6시20분. 코로나19 확진자 10명을 돌보는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음압격리병동. 출근하자마자 새벽부터 오가는 날 선 얘기들을 뒤로하고 간호사 유연화(29)씨는 가장 작은 사이즈(XS)의 수술복을 집어 들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길어지자 병원은 며칠 전부터 ‘물품 전쟁’에 접어들었다. 지침은 시시각각 바뀐다. 의료진이 모인 단톡방에는 날마다 새로운 공지가 내려온다. 이틀 전엔 ‘앞으로 병실 청소할 때는 N95(의료용 마스크) 대신 KF94(일반용)를 쓰라’고 했다.

이날은 ‘확진자 환자복은 이제 버리지 말고 세탁해서 쓸 것. 환자복은 소독액 분무기로 처리한 다음 가지고 나오면 된다’고 했다. 감염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는 내용이지만 보호장비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유씨는 수술복을 갈아입으면서 휴대전화 메모장에 ‘세탁물 문제 수쌤(수간호사 선생님)과 얘기할 것’이라고 적었다.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비상 상황에 맞닥뜨린 대구 의료현장은 확진자가 나온 지 3주가 지나며 전환점을 맞았다. 유씨는 “이제부터는 정말 장기전이라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0일부터 음압격리병동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을 전담하고 있다. 보름 넘는 기간 동안 이곳은 과거 모습을 찾기 힘들 만큼 변했다. 간호사실은 그새 자리를 두번 옮겼다. 비좁은 탈의실은 의료진 식사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병동 어딘가에선 항상 공사 소리가 들린다.

최근에는 병원의 코로나19 대응 지침도 공사에 들어갔다. 사태 초기의 자원을 아끼지 않는 ‘전력투구’식 대응은 2주 만에 끝났다. 장기전에 접어들면서 물품과 예산이 부족해지자 매뉴얼이 시시각각 바뀌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지침 사이사이에 공백이 생겼다. <한겨레>는 간호사 유씨가 매일 적어 내려간 근무일지와 전화인터뷰로 코로나에 맞서 싸우는 최전선을 재구성했다.

■ 오전 5시40분 알람 소리에 깨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유씨는 지난 보름 동안 한번도 24시간 연속 쉰 적이 없다. “제 근무표는 인터벌(휴식) 생각하지 않고 짜도 된다”고 병원에 말해놓은 탓이다. 코로나 사태 초반엔 8년차 간호사로서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주차에 접어드니 체력이 달린다. 집을 떠나 병원 숙소 생활을 하면서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알람을 두번이나 5분 뒤로 미루고 나서야 일어난 유씨는 결국 고양이 세수만 하고 숙소를 나섰다.

오전 7시 출근 뒤 인수인계가 끝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물품보관함에서 소독 티슈를 꺼낸다. 간호사실을 소독하기 위해서다. 전화기·키보드·마우스·문고리·바코드스캐너에서 의자까지…. 손이 닿는 모든 것이 소독 대상이지만 티슈를 많이 쓰진 못한다. 이 또한 ‘물품 전쟁’의 영향이다. “이번주부터는 간호사실 소독할 때는 각자 티슈 한장만 쓰고 있어요.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죠.”

■ 오전 7시40분 “어, 저러면 안 되는데. 쌤!”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던 간호사가 벌떡 일어났다. 화면 속 1호실 환자는 산소공급용 콧줄을 벗은 채 일어서 있었다. 환자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기도 떼어버린 채였다. “어떡하죠? 아직 식사 안 왔는데….” 방호복은 재사용이 불가능한 탓에 간호사들은 배식을 위해 병실에 들어갈 때 필요한 케어를 한꺼번에 하는 방식으로 방호복을 아껴왔다. 게다가 이날은 물품 아끼라는 말을 한번 더 들은 터다. “혹시 산소포화도가 60~70% 아래로 떨어진 거면 큰일인데….” 갈등하던 유씨는 일단 방호복을 입기 시작했다.

■ 오전 8시3분 유씨는 1호실에 들어가자마자 환자를 앉히고 콧줄을 다시 채웠다. “왜 일어나셨어요? 답답해서?” 급한 마음에 다그쳤지만 환자는 반응이 없다. 한번 더 소리 지르듯 물어보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환자의 귀가 안 좋은데다 유씨가 마스크를 끼고 있어 으레 있는 일이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에게 밥을 먹이려면 먼저 침대에 눕힌 뒤 침상 각도를 조절해야 한다. 80㎏이 넘는 환자를 혼자 옮기자니 방호복 안으로 땀이 쏟아진다. 보안경에도 물방울이 맺힌다. 앞이 뿌옇다. 환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 오전 8시49분 땀에 찌든 방호복은 음압병실과 복도 사이 공간인 전실로 나와야 벗을 수 있다. 전실은 아직까지 필요한 만큼 물품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장갑 안 물기로 쭈글쭈글해진 손이 방호복 겉면에 닿을 때마다 소독 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 감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원래 10분 가까이 걸리고, 소독 티슈도 최소 7~8장 쓰는 작업이지만 오늘은 마음이 급하다. 검체 채취가 예정돼 있는 2호실에도 들어가봐야 한다.

■ 오전 8시55분 새 방호복으로 갈아입은 유씨는 2호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긴장했다. 격리 생활을 오래 겪다 보니 우울해진 환자들은 최근 들어 식사가 조금만 늦어도 “식어빠진 밥을 어떻게 먹느냐”고 소리 지른다. “차라리 죽는 약을 달라”는 환자도 있다. 몇몇 환자들은 간호사가 장갑을 여러겹 낀 탓에 정맥을 잘 찾지 못하면 화를 낸다.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간호사 유씨의 숙소 내부 모습. 보름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유씨가 앞서 집에서 가져온 냄비와 반찬 그릇, 일회용품 등이 숙소 한쪽에 쌓여 있다. 유씨 제공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간호사 유씨의 숙소 내부 모습. 보름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유씨가 앞서 집에서 가져온 냄비와 반찬 그릇, 일회용품 등이 숙소 한쪽에 쌓여 있다. 유씨 제공

■ 오전 9시19분 식사 시간이 되면 간호사들은 저마다 탈의실로 모여든다. 탈의실에 있는 4인용 탁자엔 한번에 2명만 앉을 수 있다. 마스크를 끼지 못하는 식사 시간엔 서로 마주 보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 8명의 간호사가 2명씩 교대해가며 식사를 해야 한다. 일한 지 두 달 된 신규 간호사와 벽을 보며 컵라면을 흡입하다시피 했다.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말할 때는 입을 가려야 한다.

■ 오전 10시30분 감염관리실이 주재하는 회의 시간이다. 수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간호사실에 가니 감염관리실장과 팀장 모두 도착해 있었다. 이날은 환자복 세탁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제까지는 확진자 병실 안의 물품은 폐기하는 게 원칙이었는데, 앞으로는 환자복을 세탁해서 다시 쓰라는 공지가 내려온 탓이다. “확진자 환자복을 분무기로 소독하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하면 100% 소독되는 건가요?” “그럼 환자복을 저희가 만져도 감염 위험이 없나요?” 질문이 빗발쳤다.

■ 낮 12시34분 경장영양제와 약 봉투를 들고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유씨는 ‘아차’ 싶었다. 1호실 환자는 이번에도 산소공급용 콧줄을 떼고 있었다. 산소포화도를 보니 70%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수치다.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해도 환자는 “답답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중간에 한번 더 들어와서 체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잠깐이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유씨는 산소공급용 콧줄을 채워준 뒤 환자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 이러시면 안 돼요. 저 믿고 조금만 더 힘내서 집에 가요. 하실 수 있죠?”

■ 오후 1시10분 이날은 주변 식당에서 후원해준 찜닭이 병동에 도착했다. 의료진을 응원한다는 내용의 친필 편지도 함께였다. 유씨는 “이런 걸 보면 그래도 힘이 난다”면서도 제대로 식사하지는 못했다. 24시간 코로나와 싸우는 병동에는 식사 시간이 따로 없다. “환자 얼굴을 볼 방법이 없느냐” “환자에게 과일을 보내도 되느냐”는 등의 보호자 전화를 받다 보면 식사 시간도 훌쩍 지나간다.

■ 오후 2시30분 퇴근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8시간 만에 병동에서 또다시 힘없는 인사가 오갔다. 안색만 봐서는 출근하는 이브닝팀과 퇴근하는 낮팀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옷을 갈아입는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하루가 며칠 같다”는 말이 한숨처럼 터져 나왔다. 유씨는 이브닝팀에게 인수인계 메모를 전달하며 “1호실 환자는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다”고 당부한 뒤 샤워실에 들어갔다. 샤워실 밖에서 “저 환자 또 콧줄 뺐어요”라고 외치는 이브닝팀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후 3시40분 숙소에 도착함으로써 공식 일과는 끝났다. 하지만 유씨의 하루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곧 새로 들어올 룸메이트를 위해 방 청소를 해야 한다. 유씨가 쓰는 방은 1인실이어서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한명이 바닥에서 자야 하지만 투정부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제비뽑기에서 그마저도 배정받지 못한 절반가량의 간호사들은 남은 병동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운 뒤에도 걱정은 계속됐다. ‘마스크도 이제 부족하겠던데 간호사실에서 쓰는 마스크는 하루 하나로 제한해야 하나.’ ‘청소하시는 분들 일반 마스크를 끼고 있던데 누가 말해야 되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밤 11시를 훌쩍 넘긴다. 그래도 유씨는 11시30분이 되자 불을 끄고 휴대전화도 내려놨다. 산소공급용 콧줄을 벗어던지거나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들을 내일도 웃는 얼굴로 상대해야 하니까.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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