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잡다 싸움→합의 조사경찰 직권남용 고소하자
검찰이 진정사건으로 처리, 재정신청 길 막혀…
재판부 “검찰 잘못 때문에 판단받을 기회 박탈”
검찰이 진정사건으로 처리, 재정신청 길 막혀…
재판부 “검찰 잘못 때문에 판단받을 기회 박탈”
한 시민이 9차례 고소 끝에 검찰의 부당한 사건처리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서울고법 민사7부(재판장 조병현)는 나아무개(40)씨가 “검찰이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고 5일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나씨의 친구 주아무개씨는 2003년 6월 새벽 서울 구로구에서 택시를 잡다 새치기하는 시민과 싸움을 벌였다. 얼굴을 때린 주씨는 구로경찰서에서 20만원을 주고 합의했고, 서울남부지청은 주씨에게 기소유예 결정을 했다.
나씨는 2004년 2월 “당시 사건을 조사한 김아무개 형사가 친구 주씨에게 합의를 강요하는 직권남용을 범했고, 재조사를 요구하는 나에게 폭언과 협박을 했으므로 엄벌하라”는 고소장을 서울남부지청에 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진정 사건으로 접수해 조사한 뒤 ‘혐의 없음’ 결정을 했다. 나씨는 곧바로 재정신청을 했으나 검찰은 이 역시 진정서로 접수하고 “진정 사건의 처분은 재정신청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정신청은 직권남용 등 공무원의 범죄에 대해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했을 때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이다. 고소와 진정은 둘 다 수사의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진정 사건에 대해서는 재정신청을 할 수 없다.
나씨는 서울남부지청 차장검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남부지청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차장검사의 처분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나씨는 같은해 8월 형사와 차장검사를 각각 협박과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남부지청에 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관에게는 ‘혐의 없음’, 차장검사에 대해서는 ‘각하’ 결정을 했다. 나씨는 지난해 3월 “잘못을 저지른 형사와 검사에 대한 불기소처분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합하면 나씨가 낸 고소와 소송 등은 모두 9건에 이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서울남부지청이 나씨의 고소장을 진정 사건으로 처리한 것은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41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가 그 처리 결과에 대해 불복할 수 없게 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검찰 사건사무규칙 141조 3항은 “검사는 고소·고발로 제출된 서류라도 △내용이 불분명하고 구체적 사실이 없는 경우 △피고소인에 대한 처벌 의사가 없는 경우 △같은 사실에 대해 이중으로 고소·고발이 있는 경우 등엔 진정 사건으로 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서울남부지청이 나씨의 고소장을 진정 사건으로 수리한 것은 이 항목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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