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씨가 탄 차량이 25일 오 전 서울중앙지검으로 조씨를 송치하기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자, 시민들이 조씨의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한 혐의로 25일 검찰에 송치된 ‘박사’ 조주빈(24)씨가 경찰에 붙잡히기 한달 전까지도 성착취 범행을 저질렀다는 새로운 피해자 진술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한겨레>의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기획 보도 이후 여성들을 중심으로 신고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경찰 수사망이 조여오는 상황에서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을 오가며 잔혹 범죄를 이어간 것이다.
20대 여성 ㄱ씨는 2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달 17일 있었던 조씨의 범행에 대해 털어놨다. 조씨는 지난 16일 경찰에 검거됐다. 조씨는 인스타그램에서 아르바이트 구인 계정을 만들어 ㄱ씨에게 디엠(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왔다. 지난해 9월 ‘박사방’ 운영이 한창일 때는 주로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접근했지만,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을 이용했다. 착취 수법은 비슷했다. 조씨는 ㄱ씨에게 아이디 하나를 알려주며 텔레그램 접속을 유도했고, 급여 지급을 위해 필요하다며 신분증 사진을 요구했다. 이후 조씨는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얼굴과 몸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고, ㄱ씨가 주저할 때마다 “너의 직장에 사진을 유포하겠다” “지금 새로 방을 파서 클릭만 하면 바로 유포된다”며 ㄱ씨를 몰아붙였다. 아울러 ㄱ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을 줄줄 읊었고, 급기야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여성도 있다며 잔혹한 장면이 담긴 사진까지 보내왔다. “아예 틈을 주지 않았어요. 그 사진을 보고 ‘멘탈’이 깨졌죠. 하지만 직접 통화를 하면서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는 친하게 굴었더니 자기 정보를 말해줬어요. 저를 공범으로 만들어야 신고를 안 할 것 같다면서.” ㄱ씨가 경찰서에 도착해 신고하는 순간까지 조씨는 7시간 동안 협박을 이어갔다.
신고 이후에도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 사진과 개인정보가 유출될지 몰라 항상 불안한 상태로 지냈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개명 신청을 했으며,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 절차도 알아보는 중이다. 이사도 생각하고 있다. 수면유도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는 날들도 이어지고 있다. ㄱ씨는 조씨가 검거되고 신상이 공개되면서 “놀랐지만 허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단 나이가 어렸고, 정말 평범하게 생겼더라고요. 저한테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다. 관련 기사 댓글에 ‘피해 여성의 잘못 아니냐’, ‘당해도 싸다’는 글이 보이면서 ㄱ씨는 스스로에게 잘못을 묻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11월 <한겨레>를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한 또 다른 피해자 이은혜(가명)씨도 ㄱ씨와 같은 말을 했다. “‘피해자가 처신을 잘했어야지’와 같은 시선 때문에 제가 나서고 싶어도 너무 겁이 나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유포되는 성착취 영상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ㄱ씨는 경찰 신고 이후에도 혹시 다른 텔레그램방 등에 사진이 유포되지 않았을까 매일 살펴보고, 유포 사실이 확인되면 삭제를 요청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많게는 2만명이 들어간 방에 자신의 사진이 유포된 것을 보는 끔찍한 고통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채증부터 신고, 피해 입증과 2차 피해를 막는 모든 일을 ㄱ씨 혼자 오롯이 떠안고 있다. 이 때문에 조씨를 비롯한 주범 몇명의 검거로 잔혹하고 악질적인 디지털 성범죄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텔레그램방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밖에 나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좋은 사람인 양 행동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검거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몇십년 형을 살 것도 아니잖아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ㄱ씨가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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