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외곽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썸밧(가명·26)에겐 요즘 잠자리가 가시방석이다. 고향인 캄보디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지난 18일 한국에 돌아온 썸밧은 지방자치단체가 소개해준 하룻밤 10만원짜리 숙박시설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한국 정부가 모든 입국자에게 14일 격리를 의무화해서다.
18일 입국을 앞두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썸밧은 농장주에게 “휴가를 연장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농장주는 거절했다. 농장 숙소엔 방이 넉넉했지만 농장주는 입국한 썸밧에게 “다른 사람이 감염될 수 있으니 숙소로 오지 말라”며 숙소 사용마저 불허했다. 다행히 지자체가 비용의 절반을 지원해서 썸밧은 14일 동안 70만원의 숙박비를 물게 됐다. 하지만 월급 140만원의 절반은 날린 셈이 됐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정부가 모든 국외 입국자에게 14일간 자가격리 지침을 내렸지만, 국외에서 재입국한 이주노동자를 위한 자가격리 공간이 마땅치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체류 중인 외국인은 3월 기준 26만7천여명인데, 이 중 코로나19 확산 뒤인 1~3월에 비전문취업 비자로 입국한 이들은 4만2천여명이다. 다른 취업비자들을 합하면 2월 이후 6만여명의 이주노동자가 입국한 걸로 추산된다.
정부 방침상 여행 등 90일 이내 단기체류자는 시설격리, 이주노동자와 같은 91일 이상 장기체류자는 자가격리가 원칙이다. 다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가 공용 숙소에서 지내고 있어, 고용주가 숙소 내 자가격리를 거부할 경우 시설격리를 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는 지자체에 부담을 돌리고 지자체는 한정된 재원에서 비용을 일부만 지원하는 상황에서 애꿎은 이주노동자들이 지갑을 털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 쉼터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경남 김해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또 다른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25)도 지난 13일 입국한 뒤 회사가 기숙사 사용을 허용하지 않아 근처 이주노동자 쉼터를 찾았다. 다행히 쉼터에 빈방이 있어 그는 숙박시설로 내몰리지 않고 자가격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 후원으로 유지되는 극소수 쉼터들의 수용 능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대부분의 쉼터들이 통원치료를 할 수 있는 산재 환자들을 내보내고 입국 격리자들을 받은 상태다. 고성현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은 “지난 2월부터 경남 쉼터에서 격리한 외국인 5명 모두 대학이나 회사에서 기숙사 사용을 거부당했다”며 “쉼터에서 수용하는 경우는 공간에 한계가 있어 극히 드물다. 대부분 친구 집을 전전한다”고 말했다. 병원이나 보건소의 도움도 일상적으로 받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하면 격리할 공간을 제때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 자칫 집단감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정부가 알선해서 입국한 경우이므로 격리 책임도 사용자나 정부가 져야 한다”고 짚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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