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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임신중 업무로 ‘선천성 질환아’ 출산했다면 산재 해당

등록 2020-04-29 15:06수정 2020-04-30 10:24

제주의료원 간호사 위험업무
태아 5명 유산…4명 심장질환
10년 넘게 눈물겨운 소송전

대법 “태아와 모체는 단일체”
유산 동료들은 2012년 인정
소송낸 허씨 “판결 빨리 나왔으면…”
2013년 6월 제주시 아라동 제주의료원 앞에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주의료원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유산과 선천성 장애아 출산에 대한 역학조사를 철저히 할 것 등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6월 제주시 아라동 제주의료원 앞에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주의료원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유산과 선천성 장애아 출산에 대한 역학조사를 철저히 할 것 등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위험한 근무에 노출돼 선천성 질환아를 낳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산재로 인정받기까지는 10년이 더 걸렸다.

지난 2009년 지역 거점 공공병원인 제주의료원에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임신한 15명 간호사 중 5명이 유산하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은 것이다. 2008년 공공의료원 적자 감축을 이유로 인력을 줄이며 1인당 환자 수가 늘어나는 등 다른 의료기관보다 일이 많아진 직후의 일이었다.

2011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역학조사에 나섰고 사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간호사들의 ‘약품 분쇄 작업’이 지목됐다. 당시 간호사들은 중증 고령 환자를 위해 하루에 400~600정의 알약을 빻아 가루로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임신부와 태아에게 치명적인 약품이 54종이나 포함돼 있었다. 임신한 간호사들은 이 작업을 하면서 병원 쪽으로부터 마스크·장갑 등의 보호 장구도 지급받지 못했다. 산학협력단은 “약물 분쇄 과정에서 임신부에게 생식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의약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간호사들이 2012년 산재 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유산한 간호사에게만 산재를 인정했다.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 본인에게만 해당된다“는 이유였다.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 4명은 “임신 중 엄마와 자식은 한 몸이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2014년 서울행정법원 이상덕 판사는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을 배제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를 업무에 내재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이라며 이들의 산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2016년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행정11부, 재판장 김용빈)는 “여성근로자의 업무상 사유로 생긴 태아의 건강손상으로 비롯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태아의 질환은 엄마가 아픈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호사들의 업무상 재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29일 대법원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됐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며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고 밝혔다. 태아의 건강손상이나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도 ‘엄마 노동자’의 산재로 인정할 수 있다는 최초의 판례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태아는 모체인 엄마와 구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엄마인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장에서 모성보호가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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