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조서를 고친 결과로 피의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았을 경우 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9일, 성폭력 혐의로 구속된 뒤 추가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10대 청소년 4명이 ‘수사기관이 진술 증거를 조작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경찰은 지난 2010년 지적장애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했다.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경찰은 당시 10대였던 ㄱ씨 등 4명을 구속 수사했다. 이들 중 일부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자백했다가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검찰은 “사건 관계자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의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4명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ㄱ씨 등 피의자 4명과 가족들은 2013년 “경찰이 조사 중 질문과 답변을 바꾸고 유리한 진술을 누락하는 등의 방법으로 진술증거를 조작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피의자 1인당 3천만원씩 모두 1억64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은 모두 “수사기관의 질문에 대해 단답형으로 한 대답이 대다수임에도 문답의 내용을 바꿔 기재함으로써 마치 피의자로부터 자발적으로 구체적인 진술이 나오게 된 것처럼 조서를 작성해 조서의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직무상 과실이 있다”며 피의자 1명당 300만원 등 모두 16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도 “(수사기관이) 고의 또는 과실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함으로써 피의자의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됐다고 인정된다면, 국가는 그로 인해 피의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피의자가 소년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에는 수사 과정에서 방어권 행사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게 배려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조서 작성과 관련해 손해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다. 대법원 관계자는 “경찰관이 범죄수사 등 직무를 수행할 때에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공정하여야 하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의무가 있다는 종전의 법리를 재차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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